1월30일과 31일, 이틀 동안 기자․PD․엔지니어 등 500여명이 외치는 소리가 서울 여의도 MBC본사 1층 현관을 가득 매웠지만, 정작 이 울림의 주인공인 김재철 사장님은 MBC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MBC노조의 총파업을 ‘정치파업’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며 무시무시한 엄포를 놓았던 ‘담화문’을 통해서만 사장님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지요.

▲ 김재철 MBC 사장 ⓒMBC
총파업 중인 구성원들에게 잠시나마 얼굴을 보여줄 기회가 한 차례 있었지만 이마저도 사장님은 거부하셨습니다. 당초 31일 오전 10시에 사장님이 직접 나서 MBC 신입사원들에게 사령장을 수여할 예정이셨지만, 안타깝게도 노조 집행부가 ‘손팻말 시위’를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발 바쁘게 수여식을 취소하셨습니다.

참으로 두문불출한 사장님이십니다. 그렇지만 현 상황에 대한 사장님의 인식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MBC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은 꽤 정확히 하고 계신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MBC 회사 쪽은 현 상황을 ‘비상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비상 상황, 맞습니다. MBC노조의 총파업이 시작된 직후, MBC 홍보국 관계자들은 <미디어스>를 비롯한 언론사 기자들과 통화에서 “현 상황은 비상 상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상 상황’을 이유로 기자들의 MBC 출입을 전면 통제했습니다. 심지어 홍보국을 통해 정식 출입을 등록한 기자의 출입증조차도 사용할 수 없도록 조처했습니다. 지난 번, 어떤 기자가 사장실 앞에서 벌어졌던 구성원들의 손팻말 시위 장면을 취재했기 때문에 출입을 불허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만 더 분주해 졌습니다. 정문과 남문을 지키는 안전요원들은 출입저지에 항의하는 기자들을 막아내느라, 1층 안내데스크를 지키는 안내요원들은 기자들의 항의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기자 출입을 둘러싼 실랑이가 있을 때마다 기자들을 데리러 가야하는 노조 관계자도 분주해 졌습니다. 결국, 공식 통로를 통한 MBC출입이 좌절된 기자들은 노조의 도움을 받아 1층에 있는 출입기자실에서 취재를 하곤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30일, 하루 동안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31일 오후, 평소대로 출입기자실의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출입기자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잘못 눌렀나’라는 생각에 다시 눌러봤지만 견고한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언론사 기자가 시도해 봤지만, 역시나 였습니다. MBC홍보국에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관계자는 “비상 상황이라서 (바뀐 비밀번호를) 알려드릴 수 없다”는 입장만을 말하더군요.

▲ 1월30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여의도 MBC본사에서 열린 총파업 출정식에서 노조원들이 '김재철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디어스
총파업 소식을 전하는 기사 하나 하나가 불편하셨던 걸까요, 아니면 “김재철은 물러가라”는 구성원들의 외침을 전하는 기사를 보기 싫으셨던 걸까요. 그도 아니면 아예 ‘김재철’이라는 사장님의 이름이 기사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조차 불편하셨던 걸까요. 하루 아침에 출입기자실조차 폐쇄한 MBC의 이 같은 행보가 그저 황당할 뿐입니다. 공영방송에서 벌이는 행태 치고는 너무나 치졸해서, 이렇게 정색한 표정으로 굳이 기자수첩을 써야 하는 것인지 수없이 고민했을 정도입니다.

취재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결코 아닙니다. 기자실을 출입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분풀이는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다른 곳도 아닌 언론사에서, 언론자유를 그 누구보다 지향해야 할 공영방송에서, ‘비상 사태’를 이유로 언론의 취재 자체를 봉쇄한 이 현상이 그저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MBC는 ‘시청자와 소통한다’는 이유에서 2012년 연중기획을 <通MBC통통 대한민국>으로 정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소통과 화합을 최고의 과제로 여기겠다는 MBC의 포부가 이 문구에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고작 한 달이 지난 지금, MBC는 ‘소통’은 없고 ‘불통’만 가득합니다. 꽉 막힌 MBC 곳곳에 걸린 연중기획 포스터가 참으로 무안할 뿐입니다.

추신: 사장님 덕분에 더 열심히 취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듭니다. 참고로 이 글은 1층 현관에 임시로 마련된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 탁자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지만, 중간 정도 썼을 때 한 아저씨께서 다가오셔서 이제 그만 탁자를 치워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신입사원이 왔는데 탁자가 모자라 가져가야 한다’면서 되레 미안해 하시더군요. 괜찮습니다. 설마 그 넓은 MBC라는 방송사에 노트북 전원 꽂을 곳 하나 없겠습니까. 그런데 이러다가 전기까지 차단할 것 같다는 오싹한 생각이 불현듯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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