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된 말로 ‘냄새’가 좀 났다. 정종환 국토부 장관이 7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와 가진 공동 브리핑에서 ‘수도권 시민들의 출퇴근 시간을 30분 줄이겠다’는 내용의 교통대책을 발표할 때부터 그랬다.

갑자기 수도권 교통대책을 3개 시도 교통 책임자들이 공동으로 발표하는 것부터 좀 이상했고, 실효성 여부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늘자(8일) 아침신문들이 보도한 내용을 정리하면 △내년 1월부터 일부 지점에만 정차하는 광역급행버스 면허제를 도입하고 △광역버스 통합 환승할인제도 시행하며 △경부고속도로 오산IC~서초IC 구간(40.4㎞)의 경우 평일에도 버스 전용차로를 시행한다 등이다.

난데 없이 등장한 수도권 교통대책 … 의심 없이 ‘받아쓰는’ 언론들

이번 대책이 ‘냄새’가 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오늘자(8일) 한겨레가 지적했듯이 “대부분 지난 2월21일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것들로, 수도권 주민들에게 시급히 알려야할 사항이나 새로운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 한겨레 4월8일자 3면.
‘냄새’가 나는 또 다른 이유는 시점이다. 교통대책 특히 수도권 교통대책은 사실 뾰족한 해법이 없다.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는 상황에서 교통대책이라는 게 현실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고 이번 대책 또한 정부가 발표한 만큼의 효과를 거둘 지는 아직 미지수다. 인구의 수도권 밀집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하지 않는 한 교통문제는 영원한 숙제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날 발표된 대책들은 이미 인수위에서 개괄적으로 언급된 내용들이다. 정부가 이번 수도권 교통대책을 위해 투입할 비용은 대략 1조5100억원선 정도. 이 가운데 환승시설에 해당하는 4800억원은 민자로 충당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내실과 실효성을 다져서 발표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총선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 국토부 장관을 비롯한 3개 시도 교통 책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수도권 교통대책이 발표됐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관권선거’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수도권 교통대책 ‘홍보’에 열심인 언론들

하지만 오늘자(8) 대다수 아침신문들은 이 같은 정부 대책과 자료를 열심히 받아쓰기에 바쁜 것 같다. 제목과 기사를 대략 살펴보면 ‘같은 보도자료’를 참고한 것 같은 모습이다. 다음과 같다.

▲ 서울신문 4월8일자 2면.
<서울∼수도권 출퇴근 30분 빨라진다> (경향신문 9면)
<수도권 출퇴근 30분 빨라진다> (국민일보 2면)
<수도권 출퇴근 30분 빨라진다> (동아일보 18면)
<수도권 출퇴근 30분 빨라진다> (서울신문 2면)
<수도권 출퇴근 30분 빨라진다> (세계일보 9면)
<서울가는 길 30분 빨라진다> (조선일보 18면)
<수도권 광역급행버스 내년 1월 운행> (중앙일보 12면)
<인천경기∼서울도심 ‘광역급행버스’ 운행> (한국일보 14면)

정부 대책의 실효성과 검증 이전에 총선을 불과 이틀 앞두고 (인수위와 비교해) 별로 새로운 내용 없는 이런 대책을 서둘러 발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을 가져볼 법도 한데 ‘의심 없이’ 잘 보도해 준다. 유일하게(!) 한겨레가 이를 “국토해양부가 총선을 이틀 앞두고 수도권 교통대책을 갑자기 발표해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은평 뉴타운 방문에 이어, 또 관권선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문제삼았을 뿐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지난 17대 총선은 나름 ‘고품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중립 논란이 불거졌지만 지금과 비교해보면 차라리 ‘격’이 있었다는 생각이다. 대통령도 정치인이고 그에 따른 정치적 발언을 할 권리가 있다는 ‘논쟁’은 지금에서도 토론이 필요한 대목 아닌가. 상대적으로 ‘고품격’이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이유다.

물론 ‘대통령 탄핵’이라는 커다란 변수가 있긴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선거판 자체가 ‘혼탁 양상’으로 번지진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이후 처음 실시되는 이번 18대 총선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후퇴한 선거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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