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차별금지법, 논의할 때가 아니라 제정할 때다"

문재인 대통령이 차별금지법(평등법)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청와대 참모진 회의에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여야는 내달 차별금지법을 논의하기로 '물밑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처음 발의했던 14년 전부터 검토됐다는 시민사회는 거대양당의 입장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 참모진 회의에서 "차별금지법을 검토할 단계"라고 말했다고 28일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차별금지법 입법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민주당 지도부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야간사는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선출되는 내달 5일 이후로 차별금지법을 논의하는데 물밑 합의했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법안 공청회를 준비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의힘 간사 윤한홍 의원은 차별금지법 '논의 여부'를 두고 논의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차별금지법이 10만명의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국회에 회부된 지 5개월만의 일이다.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당 대상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과 계획 공개질의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스)

이날 오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노총, 이주노동조합, 빈곤사회연대 등 8개 시민단체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에 대한 거대양당의 입장을 요구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나이·국적·성별·성정체성·종교·장애유무·고용형태·직업종류·사업장규모에 따른 차별이 법과 제도의 뒷받침 속에 공고해지고 있다"며 "지난 6월 국민청원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열망은 확인됐다. 이미 14년을 끌어 온 요구로 이제는 검토해야 할 시기는 지났다"고 말했다.

박희은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마지막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의지를 반드시 나타내야 한다"며 "자본주의 시스템 속 4차산업 시대에 오직 이윤을 추구하는 야만의 시대로 갈 것인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평등의 시대로 갈 것인지 그 기로에 서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섹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얘기했다. '사람이 먼저다' 안에 이주노동자, 우리가 들어가냐"라며 "이주노동자는 집도 없이 노예처럼 살고 있다. 차별·혐오를 당해 경찰에 신고해도 '할 수 없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온다"고 지적했다.

섹알 마문 부위원장은 "하루빨리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소수자들이 자신의 인권과 자식들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다. 이 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차별과 혐오를 하기 위해 입법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은 힘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다수의 의석수를 가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문재인 대통령 역시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지혜 서울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최근 한 청년이 일터에서 겪은 차별 사례를 소개했다. 장지혜 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 상담 건으로 녹취를 들어보니 사용자가 기간제 노동자의 용모를 지적하고, 이를 이유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며 "어떤 날은 농담처럼 가볍게, 또 어떤 날은 재계약을 안하겠다 매섭게 말했다. 정치는 청년이 일상적으로 고통받는 공간을 나아지게 만들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당 대상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과 계획 공개질의 기자회견'. 장지혜 서울청년유니온 위원장(왼쪽)과 섹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 (사진=미디어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노숙인이 너무 싫다'는 이유만으로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한 홈리스의 사례를 전하며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윤영 활동가는 "거리에 계신 홈리스분을 1년 가까이 주기적으로 괴롭히러 오는 일당이 있다. 폭행에 짐을 망가뜨리고 자리를 훼손했다"며 "이유는 '노숙인이 너무 꼴도보기 싫어서'였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거리에 계신 분들의 상황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윤영 활동가는 "경찰은 수사대상이 아니고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말만 했다. 홈리스 분들은 스마트폰같은 기기가 없어 증거를 확보할 방법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이 분이 갑자기 폭력에서 벗어나거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 폭력이 잘못된 혐오·차별행위였다는 '언어의 집'을 갖는 것,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윤영 활동가는 "국민적 합의 부족? 웃긴 말이다. 단적으로 대통령 지지도보다 법 제정 찬성 여론이 높다"며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 정치, 세상이 다 변하고 마지막에 변할 정치라면 왜 있는건가. 나쁜 결정을 매일 내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국회를 질타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사를 방문해 11월 4일까지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에 대한 당의 입장을 요구하는 공개질의서를 제출했다. 앞서 두 차례에 걸쳐 같은 내용의 질의서를 접수했으나 거대양당으로부터의 회신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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