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힐링캠프의 섭외가 눈부실 정도다. 이번에는 배우 최민식이다. 최근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 한석규 충격을 맛본 뒤라 그 이름이 더욱 반갑고도 흥분된다. 힐링캠프에 출연한 최민식은 영화배우답지 않게(?) 배가 불룩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오해는 금물이다. 아무리 인간적인 배우라 할지라도 관리를 포기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2월 2일 개봉하는 영화 속 배역 때문에 일부러 체중을 늘렸다.

이유가 있는 살찌움이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배우 최민식에 인간 최민식의 친밀감을 더해주어서 티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허름한 식당 옆자리의 수다를 훔쳐보는 느낌을 갖게 했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것이 배우라지만, 가식 없는 배우 최민식은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는 일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이경규 학교 3년 후배인 최민식은 명배우라는 수식어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동네 아저씨 모습으로 예능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런 모습을 예능감이라는 말로 운치를 떨어뜨린다면 참 야박한 일이 될 것이다. 나이 오십을 넘긴 최민식에게는 지천명의 달관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수수하다 혹은 자연스럽다는 말은 사실 카메라 앞에서는 무모하거나 불가능한 것이다.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정말로 망각했다면 아마도 방송분량은 대폭 줄었을 것이다. 아니면 초한지의 여치처럼 삐~ 소리가 종일 난무했거나. 즉, 최민식의 언어는 고급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최민식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배우는 한석규이다. 드라마 서울의 달과 영화 넘버3에서 같이 출연한 것도 있지만 비슷한 연배의 두 명배우는 사뭇 다른 연기 세계를 보이면서도 이상하게도 닮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자연 힐링캠프도 교묘하게 한석규에 대한 평가를 끌어냈다. 양자택일 질문을 통해서 시크릿 가든의 현빈과 뿌리깊은 나무의 한석규 중 하나를 택하라 한 것이다. 최민식은 숨도 쉬지 않고 한석규를 꼽았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솔직한 속내도 감추지 않았다.

데뷔작은 아니지만 최민식이라는 배우를 세상에 알린 것은 드라마 서울의 달이었다. 그리고 그를 최고의 배우로 인정하게 한 것은 박찬욱 감독의 너무나도 유명한 올드보이다. 그렇지만 극히 사적인 견해로 최민식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을 꼽으라면 파이란의 강재를 떠올리게 된다. 깡패나 건달 축에도 끼지 못하는 동네 양아치 강재 역할을 더 줄이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은 리얼리즘의 진수를 보여준 연기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배우 최민식의 출발점이었다.

그후 최민식이 열연한 취화선,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친절한 금자씨, 주먹이 운다 등의 명연기의 원천을 파이란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다. 열거한 작품들 속에서 최민식은 한결같이 어두운 역할이었다. 힐링캠프에서 이경규는 최민식을 사슴의 영롱한 눈동자라고 놀려댔지만 사실 그것이 괜한 말이 아니다. 최민식이 연기를 기억하자면 그의 젖어있는 까만 눈빛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짙고 검은 눈빛으로 캐릭터의 광기들을 소화해낸 것이다.

곧바로 영화가 개봉하기 때문에 다소 실감은 나지 않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석규의 연기가 십년 체증을 풀어준 것처럼 최민식의 연기 역시도 드라마에서 만났으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단 영화로 그 갈증을 풀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두어 달 지속되는 드라마와는 다르다. 영화는 집중해서 두 시간이지만 드라마는 좀 느슨하더라도 영화와 다른 즐거움이 있다. 딱 맞는 비유는 아니겠지만 영화가 연애라면 드라마는 신혼생활 같다고 할 수 있다.

최민식은 1997년 이후로 티비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다. 영화도 좋지만 좋은 드라마로 다시 만나볼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 근거 없는 희망이지만 힐링캠프에 출연한 최민식을 보면서 드라마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게 했다. 힐링캠프는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배우 최민식의 드라마 연기에 대한 갈증을 더 키워주고 말았다. 그렇지만 두 주에 걸쳐서 길게 편성한 것이 최민식을 좋아하는 팬에게는 그저 고마울 따름일 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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