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바닥이 없는 진흙탕 대선이다. 어떤 분석이나 평론도 소용이 없어 보인다. 대선 후보를 평가하는 게 과거 누군가의 말처럼 ‘취향껏 골라 잡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돼버린 판이라서다.

국민의힘 경선 후보인 원희룡 전 지사가 라디오 생방송 중 고성을 지르다 자리를 뜬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전무후무의 방송사고를 내놓고서 오히려 잘했다는 태도인 것은 공직을 맡겠다고 나선 이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양식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배우자가 상대당 후보에 대해 ‘소시오패스’라는 공격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 이재명 지사가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면모를 가졌다는 점을 지적하더라도 배우자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어야 옳다. 그런데 원희룡 전 지사는 배우자와 같은 편이 되어야 한다며 스스로 막장극의 연출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은 ‘사랑과 전쟁’이 아니다. ‘원희룡 대통령’은 영부인이 부적절한 발언 혹은 행위를 하더라도 무조건 감싸며 ‘역공’에 나서는 권력이 되겠다는 건가? 원희룡 전 지사는 배우자로서의 어떤 도리나 ‘정신건강 검증’이라는 전문가의 책임을 말하고 있지만, 오히려 정치적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 ‘대장동 1타강사’를 자처하며 음모론적 세계관을 재생산하면서 “이재명을 상대할 사람은 나”라는 프레임에 의존하는 전략의 연장선이다. 원희룡 전 지사는 국민의힘 지지층의 호응에 힘입어 ‘3등’을 노리고 있다.

국민의힘 유승민(왼쪽부터), 원희룡, 홍준표,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 (연합뉴스)

배우자를 소재로 싸우고 있는 것은 다른 두 유력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는 윤석열 전 총장의 부적절한 대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태의 발단이 된 전두환 씨 관련 발언은 5공화국이 전문가의 천국이 아니라 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나눠먹는 판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고, 본인이 수차례에 걸쳐 억울함을 호소한 대로 진의를 두고 따져보더라도 부적절한 것이었다. 전문가 중용을 말하기 위해 반드시 전두환 정권을 거론할 필요가 있는가? 가령 윤석열 정권에서 임명된 ‘경제 대통령’의 잘못은 누가 견제하는가? 견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전두환적 의미의 ‘경제 대통령’일 수 있는가?

이런 점에서 SNS ‘개 사진’ 논란은 윤석열 전 총장이 자초한 것이다. 바로 수습했어야 할 발언을 두고 고집을 피우다 나중에야 사과를 하는 바람에 ‘사과의 진정성’ 논란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총장 해명대로 캠프 관계자의 ‘실수’라면 그건 어쨌든 캠프의 운영 문제이다. 하지만 상대 후보들이 의심하는 대로 전적인 배우자의 책임 문제라고 보면, 쟁점은 결국 사과의 진정성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윤석열 전 총장이 사진이 어디서 찍혔든 자기 책임인 점을 강조하는 것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 연결고리를 차단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패밀리 비지니스’를 언급하며 홍준표 의원의 배우자를 거론하는 맥락은 무엇인가? ‘개 사진’ 의혹은 공적 직위 없이 커튼 뒤에서 숨어 자기 의사를 선거 캠페인에 반영하는 배우자라는 의심과 맞닿아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윤석열 정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 우려할 수 있다. 반면 홍준표 의원이 배우자를 후원회장으로 두고 있는 것은 공개된 사실이다. 이게 앞서의 사실에 반론격이 된다는 것은 결국 ‘배우자를 공격하니까 나도 같은 소재로 반격하겠다’는 의도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은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인 ‘총선을 계기로 검언유착을 권언유착으로 프레임을 전환해 반격에 나서려고 했다’는 의심을 연상하게 한다. 범여권이 ‘검언유착’을 쟁점화 한 것은 당하는 쪽에서 보면 정치적 ‘공작’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반격’으로 수사기관이 보수정당과 한 몸이 돼 정치적 역공에 나서는 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고발사주는 제보사주라고 주장한 것까지 묶어서 보면 윤석열 전 총장의 이런 식의 대응은 체질화 돼있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지사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당과 그에 가까운 인사들은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지사가 완승했다고 평가한다. 도대체 무엇에 대해 완승했다는 것일까? 만일 이재명 지사가 국민의힘의 공격을 방어하고 자기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감 출석을 생각했다면 목표를 일정 정도 달성한 것이 맞다. 그러나 대장동 개발 의혹으로 상실된 중도층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기회로 삼고자 했다면, 거기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의혹을 국민에게 성실히 해명하는 것보다는 상대 세력을 공격하는 것에 방점을 찍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를 두고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지만 대선 때까지 이재명 지사 본인이 직접 주요 혐의의 대상자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보수야당은 법적 책임과 후보 자격에 대해 말하는데, 뒤집어 말하면 법적 책임이 규명되지 않는다면 다 괜찮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적 책임은 오히려 부수적인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는 크게 두 갈래다. 첫째, 이런 식의 개발 사업이 과연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둘째,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필요한 바람직한 지도자의 태도는 무엇인가? 제대로 설명하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인가, 내가 책임질 일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이재명 지사가 제대로 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를 제기하는 보수야당도 이재명 지사를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지사든 윤석열 전 총장이든 그 상대들이 ‘후보 자격’만 문제삼는 것은 사실 그게 정치적으로 편리한 방식이기 때문 아닌가? 각자 지도자가 됐을 때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어렵고 까다롭지만 상대를 아예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이를 유권자들에게 설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얘기를 하면 상대를 인정하는 협치의 필요나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 등으로 논점이 옮겨간다. 그러나 지금 사태의 본질은 따로 있다. 핵심은, 서로 진정성과 자격만을 문제삼는 정치가 모든 참여자들을 ‘구조의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는 지도자가 거짓말을 하거나 범죄자라는 데에서 온 게 아니다. 세상의 근본 문제는 정직하고 깨끗한 지도자가 있어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것에 있다. 진흙탕 선거는 이 구조로부터 눈을 돌리게 한다.

“나는 대장동 개발과 고발사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한계에선 마찬가지다. 이재명의 정치, 윤석열의 정치에 대해 말하고 유권자들에게 그것에 대해 판단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거다. ‘취향껏 골라 잡는’ 선거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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