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청년정책을 발표하면서 성폭력특별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해 논란이다. 성범죄 가해자가 무고죄를 통해 피해자를 옥죄는 현실에서 극소수의 사례를 이유로 이 같은 공약을 내세운 것은 청년을 기만하는 성차별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 전 총장은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청년에게 윤석열표 공정을 약속합니다'라는 제목의 청년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공정한 법 집행 ▲공정한 양성평등 ▲공정한 입시·취업 기회 ▲공정한 출발선 보장 등 4가지 슬로건이 제시됐다. 앞서 윤 전 총장은 2030 청년세대 정책 소통 캠페인 '민지야 부탁해'를 진행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민지'(MINZI)라는 이름으로 의인화 한 컨셉의 캠페인이다.

윤석열 캠프 '민지(MZ)야 부탁해' 캠페인 홍보 영상 갈무리. '민지야 부탁해' 캠페인은 2030 청년세대가 제안한 내용으로 정책을 개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중 '공정한 법 집행' 카테고리에 무고죄 처벌 강화를 통한 거짓말범죄 근절정책이 있다. 윤석열 캠프는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 무고의 경우 선고형 하한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조정"한다며 특히 성폭력 무고죄는 '특수성'을 고려해 성폭력특별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무고'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 안팎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제도적으로 용인하는 공약이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2차 가해 우려로 성범죄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성폭력특별법상 무고죄를 추가로 신설해 엄벌하겠다는 것은 피해자를 한번 더 옥죄는 부적절한 공약이라는 지적이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이하 여세연)은 21일 성명을 내고 윤 전 총장이 '성차별'을 공약했다고 비판했다. 여세연은 "지금까지 이뤄진 성범죄 신고가 '거짓말 범죄'라고 전제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공약"이라며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하고, 성폭력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여세연은 "피해자의 성범죄 사실 신고를 의심하고 검열하고 나아가 불이익을 주는 현실은 집요할 정도로 계속되고 교묘해지고 있다"며 "성범죄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성범죄 가해자가 무고죄를 이용하여 피해자를 옥죄는 현실을 더 강화하는 무고 조항 신설을 ‘공정한 양성평등’ 정책이라고 내세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여세연은 "윤석열이 호명하는 청년에 여성청년은 없다. 여성청년만 없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불평등, 부정의, 혐오에 저항해 온 청년들도 없다"면서 "무고 신설을 청년들이 공정으로, 양성평등으로 인식할 것이라는 안일한 시각이야말로 청년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2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윤석열 후보가 말하는 청년에 '여성'은 없나"라고 따져 물었다. 강 대표는 "무고죄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안다면 내세울 수도, 내세워서도 안 되는 공약"이라며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는 행위는 결코 공정한 것도, 청년을 위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짓말 범죄' 운운하며 무고죄를 내세우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허용하겠다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후보는 "성폭력 범죄의 절반이 아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특성상,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밝히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여성청년들의 고통을 헤아리기는커녕 오히려 가중시키는 공약들을 청년들의 의견이라 포장하며 내세우는 것은 젠더갈등에 편승하는 얄팍할 속셈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슈페이퍼 <‘성폭력무고 고소’라는 2차 가해 -성폭력무고죄 검찰 통계 분석> 갈무리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폭력무고죄 검찰 통계 분석'(2017~2018년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무고죄 고소 사건의 처분결과는 불기소 84.1%, 기소 7.6%, 기타 8.3%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성폭력범죄로 처분된 인원은 8만 677명인 반면 성폭력 무고로 유죄를 받은 인원 수는 341명으로 집계됐다.

여성정책연구원은 정책제언을 통해 "성폭력 피해를 주장했다가 무고 혐의를 받거나 나아가 무고죄 유죄까지 선고받는 사례는 그 수가 적더라도 성폭력 피해자 전반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매우 크다"며 "무고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위협은 성폭력 피해자를 더욱 침묵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정책연구원은 "허위로 무고했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성폭력 피해자에게 무고 혐의를 부여하는 관행과 잘못된 법 해석을 중단해야 한다"며 "또한 성폭력 피해자다움에 의존해 피해자에게 부당하게 무고 혐의를 씌우지 않게 하기 위해 수사기관, 재판기관의 성폭력에 대한 관점 전환이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윤 전 총장은 '공정한 양성평등' 공약으로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캠프는 "여가부가 양성평등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홍보 등으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겼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국민의힘 당내에서마저 "분열의 정치"라는 비판이 나왔던 여가부 폐지 논란을 다시 소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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