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지상파방송사가 선거개표방송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 행위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했다. 지난 4월 7일 지방선거 보궐선거 개표방송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은 KBS는 21일 인권위원회로부터 시정을 권고받았다.

장애인 인권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지난해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에서 지상파방송 3사가 수어통역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청각장애인이 득표상황 이외에 선거 설명과 전문가 좌담 등은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며 선거개표방송에 수어통역이 제공돼야 한다는 진정을 제기했다.

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 개표방송을 진행중인 KBS. KBS는 1, 2부 뉴스에서는 수어통역을 제공했지만 전문가 좌담 등에서는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 (사진=KBS 유튜브)

인권위가 조사에 나서자 MBC, SBS는 4월 7일 지방선거 보궐선거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고 이를 이행했다. 하지만 KBS는 “선거개표방송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폐쇄자막을 송출하고 있으며 하단 자막에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어, 별도의 수어통역서비스는 필요하지 않다”며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

KBS는 “수어통역을 배치할 경우 그래픽 구성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으며, 선거개표방송 1부와 2부 사이 진행되는 뉴스에서 수어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도 선거 개표방송 시 하단 자막을 통해 개표 정보를 노출하고 수어통역은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KBS가 청각장애인을 위한 폐쇄자막을 송출하고 있지만 제한된 시간 내에 자막만으로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수어통역 화면으로 인해 시청화면 일부분이 가려져 비장애인 시청자가 겪는 불편함은 개표방송에 대한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 겪는 불편함과 박탈감에 견줄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해외국가들이 개표방송에 수어통역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뒤따를 이유가 없으며 사회적으로 소수인 시청자의 방송접근권 보장에 모범을 보일 수 있기에 해외사례를 근거로 합리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8일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원심회',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장애인단체들이 모여 차별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이날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인권위 결정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인권위가 권고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청각장애인들이 갖는 특수성과 수어에 대한 언어로서 지위가 인정돼야 한다는 점이 작용했고, 청각장애인의 참정권은 비장애인 시청자의 불편함에 견줄 수가 없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어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들은 “다만 선거방송에서 수어통역 창 크기가 작고, 다수 후보 출연시 혼자서 수어통역을 해야 하는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에 해당 방송사는 인권위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는 동시에 수어통역 창 크기 확대나 2인 이상 수어통역사 배치 문제도 전향적인 관점에서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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