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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보다 진하고 깊은 풍미를 가진 기괴한 군상극[고브릭의 실눈뜨기] 영화 <더 랍스터>
고브릭 | 승인 2021.10.21 10:48

* 영화 '더 랍스터'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 실눈뜨기] <오징어 게임>이 놀라운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공개 28일 만에 누적 시청자 수 1억 4,200만 명을 돌파하며 서비스 제공 국가에서 모두 1위를 달성한 최초의 넷플릭스 자체제작 드라마가 됐다. 이 기간에 넷플릭스 주가는 약 24조 원이 상승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주라기 공원>이 소나타 100만대 판매의 가치가 있다며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시절이 2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김구 선생의 환한 미소가 그려지는 믿기지 않는 성장이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요소에 대한 분석도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팬데믹 상태가 예상보다 길어지며 경제적 생존이 전 세계의 화두가 된 상황에 시의적절한 테마였다는 분석이 눈에 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인상적인 인형, ○□△라는 간단한 기호, 녹색 추리닝과 실내화처럼 기억하기 쉽고 기괴한 미장센도 한몫했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규칙을 이해하기 쉬운 한국의 전통놀이를 선택해 접근성을 높인 게 주효했다.

게임의 룰을 치밀하게 분석해 허점을 파고드는 천재들의 치열한 두뇌게임보다 극단적 상황과 단순한 룰 안에서 다소 평범한(?) 인물들이 갈등하며 만들어내는 군상극이 보다 보편적 감성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등장인물의 선택을 통해 연민과 이율배반적인 면모가 부각되는 6화 ‘깐부’편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마치 참가자가 된 듯한 1인칭 체험과 참여자들을 관찰하는 전지적 시점이 적절하게 섞여 다각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그리스 출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는 <오징어 게임>이 표방한 군상극의 부조리한 면모에 더 깊이 접근하며 동시에 신화와 우화를 넘나드는 과감한 연출 방식으로 삶의 복합적인 풍미를 끌어냈다. 만약 <오징어 게임>을 통해 군상극의 기본편을 마쳤다면 <더 랍스터>를 통해 심화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영화 '더 랍스터' 스틸 컷

솔로 아니면 커플, 거부할 수 없는 양자택일의 결말

란티모스 감독의 주특기는 비현실적이지만 완벽한 내적 논리가 성립하는 기이한 세상에 주인공을 던져놓고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더 랍스터> 역시 도입부부터 흥미롭다. 주인공 데이빗(콜린 패럴)은 아내에게 불륜 중이라는 고백을 듣는다. 데이빗이 사는 도시는 모든 게 커플 중심이다. 어떤 사정이든 혼자가 된다면 솔로들만 모여있는 호텔로 향해야 한다. 호텔의 규칙은 한 가지. 45일 안에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이 된다.

45일 안에 커플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호텔은 황당한 규율로 투숙객들을 압박한다. 가볍게는 1인용 식탁에서 식사하고 스쿼시, 골프 같은 1인 운동만 가능한 것부터 시작해 억지로 투숙객들의 성욕을 끌어내기 위해 아침부터 불쾌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이다. 홀로 성욕을 해소하려다 발각되면 손을 토스트기에 지져버리는 무시무시한 형벌도 가해진다. 투숙 기간을 연장하는 방법도 있는데 커플이 되기를 거부하고 숲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사냥하는 것이다.

커플이 되라는 노력을 강요받고 행동에 옮기는 투숙객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상처를 입거나 파멸한다. 호텔에서 데이빗의 친구가 된 한 남자(벤 위쇼)의 노력은 가상하다. 자신의 보행장애를 동질성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 일부러 강조하고, 여의치 않자 계속 코피를 흘리는 여자에게 구애하기 위해 억지로 코피를 낸다. 데이빗에게 호감을 표현한 뒤 거절당한 비스킷녀는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감정은 만들기보다 숨기는 게 편하다’는 데이빗의 호텔 생활도 결국 비참하게 끝이 나고, 데이빗은 숲으로 탈주한다.

대장(레아 세이두)이 이끄는 숲의 룰은 호텔과는 정반대다. 커플이 되지 못했다고 동물로 변하지는 않지만 홀로 지내기를 강요당한다. 식량도 혼자 힘으로 구해야 하고, 혼자 죽을 무덤도 만들어놔야 한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도 각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혼자 춤을 춘다. 혼자 춤을 추어야 하므로 음악도 일렉트로닉 장르만 허용된다. 숲인간들끼리 연애를 하다 발각되면 단계적으로 제재를 당한다. 키스하다가 들킨 이들은 입술을 잘렸고 그 이상의 단계는 더 끔찍하다고만 전해진다.

그러나 숲의 생존방식은 어딘가 이상하다. 절대적 독립을 추구하지만, 누구도 완벽하게 룰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 숲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짝을 이뤄 커플인 척 위장해 도시에서 샴푸나 톱 같은 도구들을 사온다. 사냥으로 잡은 토끼를 나눠주는 일도 제재 대상이 아니고, 쓸데없는 신변잡기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심지어 대장 역시 호텔에서 일하는 메이드와 몰래 접촉해 생필품을 전달받고 호텔의 사정을 듣는다.

영화 '더 랍스터' 스틸 컷

어쨌든 그럭저럭 숲속 생활을 시작하던 데이빗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그룹에서 한 여성과 친해지며 ‘혼자 살아야 한다’는 숲의 규칙을 하나씩 위반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냥으로 잡은 토끼를 선물하고 진한 스킨십도 하며, 둘만의 암호를 만들어 남몰래 대화를 주고받고 있지만 데이빗이 이 여성을 사랑하는지는 모호하다. 자연스럽게 생성된 감정적 교류보다 ‘근시’라는 공통점을 발견한 이후 없던 감정을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는 탓이다. 데이빗은 ‘감정을 만들기 어렵다’며 호텔에서 파트너를 찾는 일에도 시큰둥했다.

그런데 따져보면 데이빗을 비롯한 투숙객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키우기보다 공통점을 찾아내는 데에만 몰두했다. 데이빗은 냉혹한 여인과 커플이 되기 위해 비정한 척 연기를 했다. 근시녀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근시녀가 다른 남자에게 토끼를 선물로 받자 그 남자가 근시인지 확인하려 우격다짐을 하고, 근시녀가 시력을 잃은 후에는 다른 공통점을 찾아내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 이처럼 공통점 찾기로 변질된 <더 랍스터>의 사랑공식은 결말부에서 데이빗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더 랍스터>의 결말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충돌한다. 모종의 사건으로 숲을 탈출한 둘은 도시에 있는 식당에 도착하고, 근시녀는 데이빗에게 자기처럼 시력을 잃을 것을 요구한다. 식당에서 스테이크 칼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 데이빗. 식탁 앞에 혼자 앉아 있는 여인을 보여줌과 동시에 거울 앞에서 칼을 들고 고민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데이빗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자신의 눈을 찔렀을까? 아니면 다시 돌아왔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여인을 두고 그대로 도망갔을까? 정확한 결말은 알 수 없으나 ‘눈을 찔렀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앞서 등장한 어떤 장면이 강력한 심증이다.

데이빗과 근시녀가 숲을 탈출하기 전. 메이드의 도움을 받아 호텔에 침입한 숲의 대장과 일행은 관리자 부부를 협박한다. 대장은 남편에게 권총을 쥐여주고 살고 싶으면 부인을 쏘라고 한다. 남편은 그간의 사랑 예찬이 무안하게 비겁한 핑계를 내뱉으며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권총에는 총알이 없었고 대장은 부부를 비웃으며 호텔을 빠져나간다. 사회에서 주입받은 규칙에 감정을 끼워 맞추던 관리자 부부의 위선은 개개인의 공통분모를 사랑으로 인식하고 있는 데이빗의 착각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란티모스는 초현실적인 영화를 만들지만 배경을 설명하며 현실감을 부여하는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 사람이 동물로 변하는지(<더 랍스터>), 인간의 운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는지(<킬링 디어>), 왜 송곳니가 빠져야 저택을 나갈 수 있는지(<송곳니>). 리얼리티에 관심이 없는 란티모스의 영화는 다분히 우화나 신화적인 해석을 곁들이게 되지만 정작 감독은 ‘하나의 알레고리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란티모스의 영화는 알레고리로 해석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자극한다. <더 랍스터>에서 눈에 띄는 건 데이빗의 행보다. 계속해서 주어진 상황을 탈출하려 하지만 결국 원점인 도시로 돌아온다. 데이빗이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타인이 던져놓은 양자택일의 굴레를 벗어날 의지도, 상상력도 없기 때문이다. 무수하게 촘촘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지만 데이빗을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은 커플이 되거나 솔로로 지내는 극단적 결정에서 방황한다. 타인이 만들어둔 상황에 순응하다 다다른 곳은 결국 앞을 보느냐, 못 보느냐의 상황이다.

특히 대선을 5개월 앞두고 양자택일의 함정이 정말 지근거리에 닿은 느낌이다. <더 랍스터>의 호텔과 숲처럼 극단적인 차이는 아니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정치 세력의 집권 가능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신화나 우화라고 믿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인 유력 대선후보들의 면면을 살핀다면 차라리 데이빗처럼 눈을 찌르고 앞을 보지 않는 상황이 차라리 나을까 하는 자조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 <더 랍스터>를 보고난 후엔 가수 이랑의 곡 ‘신의 놀이’가 떠올랐다. 내레이션처럼 조용히 내뱉는 가사의 첫 문장이 꼭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서.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때로는 사막에 내던져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시나요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좋은 이야기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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