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에서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르고 있는 해를 품은 달에 있어 7회는 대단히 큰 의미를 담고 있다. 기억을 잃은 채 도성을 떠난 어린 연우에서 세월이 흘러 어엿한 처녀가 된 성인 연우가 기억하지 못하는 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통해서 드라마 제작진은 시청자들과 아역들을 이별시킬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잘했을 때 해당되는 말이다.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다시 만난 연우와 훤. 이 장면에서 로맨스 드라마답게 시청자 눈물 좀 빼냈어야 할 장면이었지만 어인 일인지 담담하게 지난 것이 아쉽다. 연우와 훤의 해후는 이보다 더 절절했어야 했다. 두 사람은 모두 사무치는 그리움에 빠져 있다. 다만 한쪽은 그 그리움마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그리움은 기억조차 이겨내는 것이다. 그저 임금의 행차를 보기 위해 저자에 나섰다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임금 훤이 다가오자 연우에게 나비가 등장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쯤 되면 그리움은 염원이다. 그리고 한양을 떠나온 이후 기억의 심연에 묻어두었던 어린 시절 기억의 잔상들이 주마등처럼 흐르게 됐다. 뭔가 조금만 자극을 주면 과거의 기억이 돌아올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물론 그대로 기억이 돌아와서는 애초에 기억상실로 설정한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기에 설이로 그 몰입을 방해하게 한 것은 당연한 연출이었다. 그렇지만 연우와 훤의 질긴 인연은 그런다고 멀어질 수 없었다. 운과 함께 잠행을 나왔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훤을 연우가 집으로 안내한다. 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숲 속을 짓누른 안개는 상당히 적절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마주본 순간의 묘사는 많이 아쉬웠다.

두 사람 모두 놀랐다. 훤은 연우에게서 어린 연우가 보여 놀랐고, 연우는 임금이 앞에 서 있어 놀랐다. 낮에 연우의 닫힌 기억을 열어버릴 기세로 등장했던 나비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좁은 방 안의 두 사람 사이는 폭풍전야 같은 긴장이 부글부글 끓었어야 했다. 두 사람은 느끼지 못해도 그런 감정을 시청자에게 전달했어야 했다. 그것을 기대케 해놓고는 너무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 장면에서 한가인의 연기력 부족이 너무 도드라진 것이 안타깝다. 딕션이 좋은 편이 아닌 한가인의 대사와 표정은 많은 연기력이 요구되었지만 바라는 대로 보여주진 못했다. 기억에 없는 그리움은 고사하더라도 임금을 눈앞에 대면하면서도 전혀 떨지 않는 모습이 문제였다. 고고한 학자라 할지라도 임금을 보고 당당할 수 없는 것이 상식일진데 왕을 대하면서 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한 연우의 태도는 대사보다 더 심각한 해석이었다. 떨게라도 했으면 두 연인의 해후가 좀 더 감동을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로써 가뜩이나 의심을 받아온 한가인의 연기력 논란이 벌어지게 됐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한가인의 잘못으로만 볼 수는 없다. 훤이 던지는 대사는 묘하게 중의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연우의 대답은 너무도 건조한 즉답일 뿐이어서 뭔가 선문답식으로 진행되었어야 할 상황이 건조하게 끝나버렸다. 그리고는 대사의 옥에 티라 할 수 있는 엉뚱한 대사가 툭 튀어나왔다.

훤이 운에게 술을 권했지만 운은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자 연우가 끼어들었다. 어찌 임금의 음식을 기미하지 않느냐는 꾸짖음이었다. 나름 재치를 보여주고 한 의도는 알겠지만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미 훤이 술을 마신 뒤에 기미를 운운하는 것은 참 어이없는 뒷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잠행 나온 임금이 기미를 한다는 것은 듣도보지 못한 말이다. 그 순간 훤과 연우의 해후의 긴장감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그만큼 해품달의 전환점이 됐어야 할 이 장면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음을 드러나는 사소한 실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배우가 좋으면 어떻게든 상황을 살려내기는 한다. 한가인은 분명 대단히 어여쁜 배우이긴 하지만 아직 연기로 인정받았다는 기억은 없다. 그러기에 한가인에 대한 비난은 좀 가혹할 수 있다. 아역 김유정과의 굴욕적인 비교대상에 올라 있는 한가인에게 연우 역은 받기 싫어진 독배일 수도 있다. 한가인의 캐릭터가 이대로 흐른다면 해품달의 인기는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한가인 본인의 독 품은 분발도 필요하지만 그녀를 위한 좋은 대사와 연출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대사를 줄이든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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