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신체의 건강함을 겨루는 경쟁입니다. 아이돌은 어원 그대로 숭배 받을 만한 특별함으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한 아이돌 육상, 수영 대회는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들을 고루 갖춘 멋들어진 기획인 것은 사실입니다. 무려 150여 명의 청춘 선남선녀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빼어난 신체 조건들을 겨루는 이 흥겨운 잔치. 첫 출발에서 얻은 엄청난 호응에 힘입어 이젠 고유한 명절 특집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런 탁월한 기획력 덕분이죠.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 경쟁은 굉장히 일그러져 있습니다. 과연 이들은 건강한 사람들일까요? 아이돌의 일상은 정상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혹사와 무리수의 연속입니다. 잘나간다 할 수 있는 이들 중에서 그 나이 대에 취해야 할 최소한의 수면 시간을 보장 받고 반드시 섭취해야 할 영양소를 규칙적으로 먹고 마시는 아이돌은 거의 없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방송과 행사에 매진하는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침실은 그들의 이동수단인 차량 안이고, 좋으면 다이어트 아니면 먹을 시간조차 없어 매번 배가 고픈 상태로 살아갑니다. 아이돌이란 못 먹고 못자는 사람들이죠.

하지만 이런 빈약한, 위험한 건강 상태에서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단련하고 포장해야만 합니다. 휴식기에도 스포츠 센터에서 식스 팩과 신체 라인 유지를 위해 땀을 흘려야 합니다. 전문적인 트레이너가 달라붙어 건강하기 위해서가 아닌 보여주기 위한 운동을 의무적으로 소화하고, 철저하게 계획된 식단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먹어야만 하는 것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이들에게 운동이란, 좋아서 하는 것도 건강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의무 사항이에요.

그런 이들이 운동 경기를 위해 한 자리에 모입니다. 당연히 동년배의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함께 모인 자리이니 겉보기에는 화기애애하고 그간에 스케줄 소화로 함께하지 못해 밀린 회포를 푸는 정경도 곳곳에서 보입니다.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는 이들의 모습이 흐뭇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이돌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이돌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마음 짠한 풍경이죠. 명절 특집이 소중한 이유는 어쩌면 이런 가끔씩이나마 함께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이것 역시도 경쟁이고 방송 분량 확보를 위한 끊임없는 전쟁터입니다. 같은 종목, 같은 아이돌이지만 지명도와 활약의 여부에 따라 통편집과 집중 조명이 교차됩니다. 인지도가 있는 아이돌과 신인급 초짜들의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 명단과 순위 결과를 보면 분명 출연은 했다지만 인터뷰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화면에서 사라지는 아이돌이 수두룩합니다.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카메라 원 샷을 받기 위한 무리수가 이어지고, 그런 치열함을 알고 있는 제작진은 최선의 것을 뽑아내기 위한 경쟁을 은근하게 부추깁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눈 밑 지독한 다크 서클을 화장으로 가리고, 부상 예방을 위한 장치도 헐거운 실내 체육관에서 체육돌이란 하나의 좋은 별칭을 얻기 위한 전력을 다한 경쟁이 이어집니다. 그 와중에 한두 사람은 넘어지고 삐끗하며 부상을 입고, 곡소리도 내지 못하고 웃는 모습으로 치료를 받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경쟁이 또 있을까. 이렇게 적나라하게 아이돌의 세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체육돌도 좋고 건강미도 좋다지만 저에게 매년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아이돌 육상 대회의 본질은 바로 이들의 삶의 치열함과 격렬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물론 그들의 건강입니다. 이들이 희생한 건강과 삶의 질은 분명한 명성과 부로 돌아오는 자신들의 선택이자 어떻게 본다면 특권입니다. 먹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은 그 나이 또래의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놀라운 부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 행운아들의 건강과 치열함까지 걱정해줄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숨통을 틔우며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 이런 불꽃 튀는 잔인한 경쟁을 구경하는 기분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가장 불쾌한, 안쓰러운 명절특집. 빛나고 화려해 보이지만 결코 아름답지도 건강하지도 따스할 수도 없는 아이돌의 이중생활을 폭로해주는 명절방송. 올해도 아이돌 육상 수영 대회가 주는 뒷맛은 씁쓸하기만 하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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