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들은 대부분 삼신할머니가 점지하고, 다리 밑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사춘기에 한 두 번은 누구나 자기 부모가 진짜 자신을 낳았을까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심심찮게 들어온 말 때문이다. 대체로 아이를 놀릴 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을 한다. 철들고 착한 아이라면 주워온 자신을 참 애지중지 키워주신다고 생각하겠지만, 출생의 비밀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기도 하는 것이 사춘기 때의 한 특징이기도 할 것이다.
헌데 부산 사람들에게 아이를 주어오는 곳은 영도다리인 것 같다. 2011년에 이어 올해도 설 연휴의 시끌벅적한 예능 판세에서 늦은 밤 아주 조용히 시청자의 가슴을 감동으로 흠뻑 적신 KBS 단막 드라마 <영도다리를 건너다>는 바로 그 영도다리에서 주어온 아이의 이야기다. 이번에는 괜한 엄포가 아니라 진짜 주어온 아이다.
가족은 부부로 인해 만들어지고 자식이 태어남으로써 완성된다. 그것이 일반적이다. 헌데 모든 가족이 그런 것은 아니다. 괜히 어린애 놀리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버려지는 아이들이 있으며, 그 아이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길러진다. 그래서 기른 정이냐, 낳은 정이냐가 심심찮게 화두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일반적인 화두가 편부모 슬하에 자란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실존의 고통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춘기란 자기 인생을 불행하게만 여기게 하는 신기한 병을 앓게 하는데, 거기다가 엄마의 부재까지 겹치면 그 증상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사춘기 딸을 키워야 하는 아빠는 그 고충이 남다를 것이다. 게다가 경상도 남자라면 복잡하고도 오묘한 사춘기의 열병에 걸린 딸을 감당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를 일이다.
삶의 마지막 장소에서 극적으로 가족을 만나게 된 정진영은 어렵게 삶을 이어가게 됐지만 그 삶의 모습이 아무것도 모르는 딸의 눈에는 불만투성이일 뿐이다. 그 불만 때문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불만조차 딸에게는 사치였다. 자라는 동안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었지만 지금의 아빠는 낳아준 부모가 아니었다. 갑작스레 알게 된 진실은 딸을 더욱 흔들어놓을 뿐이었다. 여전히 아빠에게는 그저 딸일 뿐이지만 딸에게 아빠는 아빠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이 딸을 더욱 거세게 흔들어놓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대사다. 경주로 친엄마를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현재 아빠 역시도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시 영도로 돌아온 백설은 친구에게 알쏭달쏭한 말을 한다. “엄마를 찾으러 갔다가 아빠까지 잊었삐다” 이 짧은 문장은 그대로 시 한 편이라 해도 좋고, 소설 한 편이 담겼다고 할 수 있는 대사였다. 시처럼 혹은 소설처럼 아름답고 아픈 딸과 아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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