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과 시청자의 관계는 남녀 간의 연애와 같은 것입니다. 설레거나 정이 들거나. 이번 주는 어떤 내용이 방송될지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매주 해당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마다 그 시간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일주일 중 그 시간에는 반드시 함께해야 하는 익숙함과 친근함 때문에 다른 채널로 옮길 수 없는 의리.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고,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은 결국 이런 두 가지 매력을 어떻게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매주가 떨리고 새롭지만 그만큼 친근하고 편안함. 성공한 프로그램들은 모두 시청자들과 연애를 하고 있는 거예요.

다르게 생각한다면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이상 이 프로그램이 기다려지지도 않고, 식상함과 뻔함 때문에 익숙함을 넘어 지겨워지는. 더 이상 설레지도 애틋하지도 않는 매력 없는 상대방이 되어 버릴 때 프로그램의 동력은 꺼져버립니다. 과거에 안주한다든지, 초심을 잃어버렸다든지 하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고, 그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옵니다. 다행히 그 처방이 적절한 것이었으면 조금 더 생명력을 연장하지만 대개의 경우 쓸쓸한 종영과 폐지의 수순을 밟게 되죠. 연애와 마찬가지로, 시청자들 역시도 내가 한번 버린 사랑을 다시 찾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요.

나는 가수다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가수가 처음 폭발적인 관심과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설렘과 놀라움이었습니다. 이 가수의 무대를 TV를 통해서 매주 볼 수 있다니. 이런 가수가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다니. 매주 나가수에서 펼쳐지는 무대들은 제작진 스스로가 신들의 경연이라고 자못 자랑할 만큼 굉장한 것이었고 그 무대를 장악했던 가수들의 면모들 역시도 어떻게 이 사람들을 섭외할 수 있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일밤의 그 오랜 침체를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노래의 힘. 무대의 강력함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매주 일요일 저녁을 기다리게 해주는 가수의 무대가 있나요? 지금 나가수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역시도 이전에 출연했던 선배 출연자들처럼 각자의 확고한 자리를 지켜온 능력자들이고 최선을 다한 무대로 매주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나가수를 대표하는 가수가 누구인지, 어떤 무대가 가장 기다려지는지를 묻는다면 확연하게 처음보다 힘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임재범이, 이소라가, 김범수와 박정현의 원년 멤버가 주었던 강렬함은 점차적으로 그 힘을 잃어버리고 있어요.

그것은 제작진의 섭외 능력 이전에 가수들이 무대 그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가수들이 선뜻 참여를 결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곁가지들 때문입니다. 곡을 준비하는 과정인 중간평가 시간은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되는 외면의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본 무대의 방송은 가끔씩 왜 그 장면이 편집되었는지 모르겠다는 가수들의 불만이 섞여 나올 정도로 방송 분량이 왔다 갔다 하는 반면, 가수들의 인터뷰는 지나치게 반복되고 늘어지며 전체 흐름을 저해합니다. 매니저 역할을 강조하기도 해보고 원활하게 하려 노력도 해보지만 이 역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죠.

그 와중에 청중평가단의 현장에서의 점수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편곡과 선곡 방향은 무대의 다양함을 가로막고 있고, 결국 매번 그 무대가 그 무대 같은 식상함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느낀 제작진이 뿌린 보도 자료들은 관련 기사들을 양산하며 도리어 본 방송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겨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가수들의 혹사는 윤민수의 예처럼 목상태가 엉망이 될 정도로 무대 자체의 질마저 위태롭게 합니다. 이런 악재들, 약점들이 점점 반복되면서 나가수는 굳이 그 시간에 TV앞에서 본방을 사수하지 않아도 관심 있는 가수들, 그날 방송에 화제가 되었던 무대의 동영상을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설렘 없는 방송이 되고 있습니다. 1박2일을 위협할 정도의 위력에서 이젠 10%대의 시청률을 고민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어요.

해답은 정말 없는 것일까요? 물론 섭외가 만사입니다. 정말 그가 나가수에 나오다니 싶은 새로운 얼굴이 합류한다면 금방 해소가 될 문제이죠. 나가수가 소중한 이유는 언제든지 그럴 기회를 제공해주는 소중한 무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는 조금씩 초기의 위용을 깎아먹고 있다는, 갈수록 퇴보한다는 안타까움 밖에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결별 위기. 새롭게 자신의 매력이 무엇이었는지를 재정비하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그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가만히 그래도 그녀가 나를 떠나겠어? 하며 안심하고 있다간 이별통보를 받을지도 몰라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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