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KBS 이사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하는 발언으로 선을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임 이사진이 역할에 대한 숙지 없이 과거 이사회 전철을 밟으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6일 KBS 이사회에서 류일형, 이석래, 김종민 이사가 KBS1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주진우 기자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삼았다. 주진우 기자가 논쟁적인 인물이기에 KBS 라디오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진=KBS)

또한 김종민 이사는 “고정패널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함량 미달인 정치인으로 왜 고정패널로 정했는지 궁금하다”며 제작진에게 1년치 패널 명단을 요구했다. (▶관련기사 : 주진우 정치 편향성 따지는 KBS 이사회)

KBS ‘이재명 표적수사 의혹’ 보도에 대한 비평이 이어졌다. 김종민 이사는 “국제 마피아 출신 사업가를 검사가 압박해 이재명 관련 내용을 불라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검찰은 이 사실을 부인했는데 사전에 취재기자가 검찰에 팩트체크를 했는지, 반론보도에 충실했는지,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취재한 기자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권순범 이사는 해당 보도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내부에 어떤 비판 의견이 나왔는지 물었고, 류일형 이사는 유튜브에 비해 대장동 의혹이나 윤석열 관련 보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사들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조숙현 이사가 문제를 제기했다. 조 이사는 “구체적인 보도에 대해 이사가 질의하는 게 허용되는지 모르겠다”며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에 남영진 이사장은 “보도본부장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답하라”고 말했다.

"과거 여러 차례 논란, 학습하지 못하고 반복"

KBS 이사회가 특정 프로그램 출연진과 보도에 대해 비평하는 것은 월권의 소지가 있다. 권순택 KBS 시청자위원은 “시청자위원회에서도 출연자 교체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꺼내지 못한다"면서 "제작 자율성의 영역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 위원은 “과거 여러 차례 논란이 됐음에도 이사회가 학습하지 못하고 반복하는 건 문제”라고 덧붙였다.

권 위원은 “지난 이사회에서 시청자위원회 산하에 ‘KBS 저널리즘 강화 특별소위원회'를 운영하겠다는 의견이 나와 시청자위가 부적절하다고 공식적으로 항의한 바 있다"면서 "그런데 바뀐 이사회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KBS 이사회가 새로 선임됐으니 KBS 조직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이사회, 시청자위원회, 집행기관의 역할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광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공정방송실장은 “이사들이 권한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했다”며 “과거에도 이사회가 한두 마디씩 방송제작물이나 보도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장 위에 상왕처럼 존재하며 실질적인 제작 침해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2015년 이인호 이사장이 <대한민국의 초상 1부-뿌리 깊은 미래>에 대해 “북한이 할 만한 내레이션이 나왔다”, “외부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많고 일부는 수신료 거부 운동까지 거론하고 있다”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최 실장은 “이인호 이사장 때 아이템 선정이나 방송 내용에 영향을 미쳤던 일들을 봐왔던 터라 현 이사들이 발언이 부적절해 보인다”며 “이사들이 본인에게 주어진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KBS 이사회 운영규정은 이사의 직무상 의무와 관련해 “이사는 직무 수행 과정에서 취재·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및 임직원의 인격과 명예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방송법 4조는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최 실장은 "과거에 이사장이 이사회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가 나오면 부당한 개입 소지가 있다고 보고 차단했는데 이번에는 이를 제지하는 목소리가 없었다"며 "이사진은 KBS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기본적인 업무를 숙지하고 이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8일 언론노조 KBS본부는 "제작 자율성과 독립성을 명백히 침해한 이사회는 각성하라"는 성명에서 "이사회는 전반적으로 공영미디어 저널리즘의 공정성을 주문하고 질의할 수 있지만 특정 아이템, 출연자를 짚어가며 경영진을 압박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위험한 간섭"이라고 지적했다.

KBS본부는 "의견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개별 보도, 제작 아이템과 출연진 성향 간섭은 이사회의 영역이 아니다"라면서 "이사회는 정치 후견주의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각별히 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KBS 경영진을 향해 "우리는 2015년 이인호 이사장이 '이승만 망명설' 등 특정 보도와 '뿌리깊은 미래' 등 개별 프로그램 등에 대해 개입했던 만행을 똑똑히 기억한다"며 "방송규약 상 제작 책임자는 이사회를 포함해 내외부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제작 실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 이사 A 씨는 “원칙적으로 KBS 최고의결기구로서 이사회는 공정성이든 무엇이든 중요한 주제에 대한 발언이 제약될 수 없다”며 “다만 평소에 정파적으로 발언과 행동을 하지 않고, 추천 정당의 파견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현재 문제가 된 지적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 지금은 이사들이 정치적 독립성을 통해 신뢰를 쌓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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