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어린 시절 여자답게 굴지 않는다고, 조신하지도 찬찬하지도 않다고 늘 잔소리를 들었었다. 물론 나도 애를 써보았다. 불같은 성정을 죽이고 차분하고 조신하게 어른들이 말하는 '여자다움'에 나를 꿰어 맞추려고 해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냉장고 안에 구겨져 들어가는 코끼리 같은 기분이었달까? 대부분 여성들이 살아오며 나와 같은 경험이 있을 듯하다.그러기에 SBS <원더우먼>의 주인공 조연주(이하늬 분)의 화끈한 행보에 묵은 체증이 뚫리듯 속이 다 시원해진다.

먼지 대신 비리를

SBS 금토드라마 <원 더 우먼(One the Woman)>

하지만 조연주라고 늘 화통했던 건 아니다. 조직폭력배 서평 남문파 행동대장의 딸로 검사가 되어 살아가는 길이 녹록했을까. 공장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방화 살인범이 되어 다시 감옥에 갔다. 아버지와 연을 끊었다. 아버지 수하의 왕필규와 최대치의 도움으로 땅에 묻히는 곤욕을 겪으며 사시를 패스했다. 드디어 '영감님'이 되는가 싶었는데, 영감님들도 레벨이 있었다.

사건을 '국영수'에 비유하며 조연주에게 배당해준다 했지만 여성인 그녀를 '먼지' 취급하던 주임 검사. 어떻게 된 검사인데데 먼지 취급 받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칭 '권력의 미어캣'이 되기로 했다. 두 다리로 서서 천적의 동정을 살피는 동물 미어캣처럼 그녀는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로 살기로 했다. 그래서 취미가 '스폰 받기', 특기가 '실세 라인 타기'가 되어 현 중앙지검 스폰서 비리 검사계의 에이스가 되었다.

그런 조연주가 자신과 꼭 닮은 '강미나'를 만났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 자신을 마주한 충격을 심장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조연주는 죽지 않았다. 단지 '기억'을 잃었다.

SBS 금토드라마 <원 더 우먼(One the Woman)>

검사였던 기억을 잃은 채 강미나의 사고에 휘말린 조연주. 눈을 떠보니 강미나는 사라지고 자신이 재벌가 유민그룹의 혼외자 막내딸이자, 또 다른 재벌가 한주그룹의 둘째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저 강미나가 기억을 잃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강미나라는 옷에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꾸 생각지도 않은 거친 말이 튀어나온다. 약물복용 혐의로 체포되어 간 취조실에서 신참 검사에게 외려 지시를 내릴 정도로 능숙한 법률 용어가 술술 나온다. 궁금해서 가 본 사건 현장에서 느닷없이 자신을 '영감님'이라 부르며 등장한 조폭들을 거침없이 때려 엎는 능력이라니! 분명 자신은 강미나가 아니다. 강미나의 지문이어야 열리는 '탭'이 그걸 증명한다.

검사에, 재벌인데도 척박한

드라마 <원더우먼(One the Woman)>은 '여성'으로서 척박한 삶의 현실에 내몰린 같은 얼굴- 다른 처지의 두 여성 조연주와 강미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아니, 엄밀하게는 강미나가 되어버린 조연주이다.

SBS 금토드라마 <원 더 우먼(One the Woman)>

한 사람은 재벌가 안주인, 또 다른 사람은 검사. 사회적으로 보자면 두 사람 다 '내로라'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조폭 우두머리의 딸로 검사가 된 조연주는 성골도 진골도 못돼서 '찬밥' 신세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비리 검사를 자처하며 그 '신분제'의 늪을 돌파한다.

반면 강미나는 유민그룹의 혼외자로 또 다른 재벌가 한주가의 둘째며느리가 되었지만, 혼외자처지를 들키는 바람에 한주가에서 '먼지' 취급을 받는다. 강미나의 돌파 방법은 철저히 가문이 요구하는 복종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그러는 한편, 자유의 그날을 향해 은밀한 준비를 한다.

강미나가 자유를 향해 자신을 던진 날,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조연주가 등장하고 조연주는 강미나가 되었다. 남의 옷을 빌려 입은 처지. 어떻게든 자신을 되찾기까지 강미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검사 조직에서 먼지 취급을 받느니 차라리 비리 검사를 선택했던 조연주의 '성정'이 복종 모드에 버퍼링을 일으킨다. 게다가 갑자기 유민그룹의 총수가 될 상황에 봉착한다. 사고 당한 강미나를 정신적 문제 핑계로 '허수아비'로 만들고자 하는 유민그룹 사람들을 조연주는 그녀의 '세 치 혀'로 거뜬하게 제쳐버린다.

<원더우먼>에도 키다리 아저씨 역할이 있긴 하다. 재벌가의 한승욱(이상윤 분)이 그렇고, 검사 쪽에 안유준(이원근 분)이 있지만 그들은 키다리 아저씨라기보다는 '조력자'에 가깝다.

SBS 금토드라마 <원 더 우먼(One the Woman)>

한승욱은 멋지게 등장하여 자신이 가진 지분으로 강미나의 그룹승계를 지지하지만, 정작 그가 차려놓은 밥상을 뒤엎으려는 세력들의 말문을 막은 건 조연주의 거침없는 '직설'이다. 혼외자라는 처지 때문에 유민그룹 이사회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어 있던 강미나 대신, 검사란 직업적 능력에 탁월한 암기력으로 마스터한 유민그룹 사람들의 내력을 읊어대며 말문을 막아버린다.

드라마 <원더우먼>의 마력은 바로 이 지점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을 시련에 빠뜨린 남성들을 향해 007 뺨치게 연대작전을 펼쳤던 <언니는 살아있다>. 책상만 지키던 국정원 여직원들의 반전 활약상을 다룬 최영훈 피디가 <극한직업> <열혈사제>를 통해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구축해온 이하늬의 등에 날개를 단다. 배우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조연주 캐릭터는 욕과 직설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그녀에게 닥친 난국을 정면 돌파한다.

스티브 소령을 조력자 삼아, 아마조네스 중 최고의 전사였던 자신의 능력, 거기에 고고학자로서의 내공이 '원더 우먼(Wonder Woman)'이란 독보적인 여성 히어로를 탄생시켰듯이, 들풀처럼 짓밟혀도 다시 일어난 검사 조연주의 내공이 유민그룹이라는 새 옷을 입고 '원더 우먼' 못지않은 활약을 보인다. 70년대 ‘원더 우먼’ TV 시리즈를 보며 당시 미국 여학생들은 보다 적극적인 여성상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위기에 굴복하지 않고, 슬픔에 주저앉지 않는 신선한 여성 히어로물 <원 더 우먼(One the Woman)>이 새로운 여성상의 한 획을 그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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