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스타에 안석환, 박철민, 한상진 등이 출연한다는 소리에 조금은 의아했다. 뿌리깊은 나무의 밀본 두 사람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지만 이들에게서 과연 라디오 스타만의 독한 웃음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었다. 또한 박철민의 반복되는 동어반복적인 드라마 애드리브는 적잖이 식상함도 있어 최근 들어 가장 기대감이 적은 게스트로 여겨졌다. 그러나 결과는 반전 그 자체였다.
물론 이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자체발광을 넘어 자체 폭발하는 존재감을 가진 뛰어난 명품조연들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을 명품조연이라 불러야 하는 것에는 약간의 비애가 있다. 안석환은 대학로 역사상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일반 시청자가 기억하는 안석환의 이름은 조연일 뿐이다. 그런 한편 연기와는 담쌓았지만 인지도나 미모만으로 드라마에 주역을 맡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즈음의 시대에 순수예술을 논하는 것이 우스워지긴 했지만 그나마 대학로의 배고픔은 견디며 연기내공을 쌓는 이들에게서 순수함을 찾는 것까지는 막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얼굴이 아닌 연기로 감동을 주는 배우들이 그곳을 통해 배출되고 있으니 대학로는 졸업장 없는 진짜 콘서바토리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안석환, 박철민에게는 또 다른 특별한 점이 있었다. 안석환은 연우무대 출신이고, 박철민은 놀랍게도 극단 현장 출신이었다. 연우무대는 워낙 명배우들을 많이 배출한 극단이기도 하지만 무대에 올리는 작품들이 하나같이 문제작일 정도로 개념을 갖추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연우무대가 다소 침착하고 지적인 모습이라면 극단 현장은 때로는 극단이라기보다는 민주투사들의 집합소 같은 느낌이 더 강한 곳이다.
박철민은 자신의 80년대 극단 현장 생활을 설명하면서, 연예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질문에 거침없는 의견을 피력했다. 제도권 정치인 누군가를 당선시키기 위한 참여는 절대 반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 뒤, 대신 절대악 절대선에 대한 참여는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박철민은 여기서 절대선으로 70년대 노동환경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청계천 피복노조의 전설 전태일을 예로 들었고, 절대악으로는 나쁜 고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일을 말했다.
요즘 코미디는 풍자가 유행이다. 레임덕을 적극 활용해 활로를 찾은 것이긴 하지만 좁아진 코미디의 입지를 넓혀주는 촉매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런 반면 사정이 좋은 예능은 시대와 벽을 쌓고 있다. 무한도전만이 간헐적으로 시대를 반영하는 명품 풍자로 환호를 받을 뿐이다. 우스갯소리로 현재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프로그램은 뉴스와 예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그러나 박철민의 개념 찬 발언은 예능도 이제 시대에 대해서 할 말을 하겠다는 작은 선언이 아닐까 흥분케 했다. 뉴스가 못하면 예능이라도 하긴 해야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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