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달 5회의 주제는 ‘죽어도 못 보내’였다. 어린 연우가 국무 장 씨의 흑주술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사가로 쫓겨 나오고, 결국 숨을 거두는 상황에 역시 어린 세자가 절규하는 비극적인 순간들이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게 가슴에 담기는 날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앓기만 하는 연우의 증세에 신병이라는 장 씨의 말은 당시로서는 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병이라는 국무 장 씨의 말에 대제학 집안에서 차마 내림굿만은 할 수 없기에 결국 딸의 숨을 거두기로 한 아버지 허영재는 연우를 보낼 약만은 직접 달이고 싶었다.

아비가 자식이 먹고 죽을 약을 먹이는 것도 기가 막힐 일인데, 그 사실을 연우 또한 알고 있다는 것이 또한 이중의 비극이었다. 연우의 일을 전해들은 세자는 아무리 국본이라 할지라도 정인과의 사별을 이겨내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였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동궁전에 발이 묶인 이 어린 사랑의 절규는 보는 이의 가슴을 후비듯 아프게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짧은 시간에 만든 작가의 역량은 높이 사줄 만하다. 그러나 연우의 죽음과 부모의 슬픔 그리고 정인 세자의 고통만으로도 글감이 넘치지만 5회에는 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도 많았다.

퓨전사극은 고증에 대해 자유스러운 것은 분명하다. 특히 해품달은 조선왕의 실존했던 시호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사실로부터 피해가고 있다. 그렇게 가상으로 단단히 방비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피해가지 못할 것은 많다. 그 중에서도 시대 배경을 주도하게 되는 언어가 특히 그렇다. 해품달 역시 사극인 이상 대부분의 대사들이 고어의 느낌이 나는 어휘들을 골라 쓰고 있다. 그런데 지난 3회에서도 뇌구조니, 차도남이니 하는 2011년에 유행했던 신조어들을 써서 화제가 됐다.

해품달은 시작과 동시에 대박 드라마가 됐다. 그래서 용서가 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코미디가 아닌 정극의 분위기에 맞는 대사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그때만 해도 세자와 연우의 로맨스가 막 싹트는 시기였으니 화기애애하게 묻어갈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5회를 무겁게 억누르는 비극적 상황에 시도 없이 튀어나오는 신조어 차용은 드라마 분위기에 몰입을 방해하기만 했다.

연우가 세자빈 간택에 참여하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해 길을 떠난 양명은 어느 고을 어린애들에게 자신을 순정마초라고 소개한다. 마초를 말이 뜯어먹는 풀이라며 남자를 뜻하는 것이라고 둘러대기는 했지만 마초란 단어가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말이라는 것은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다. 게다가 순정마초는 무한도전 서해안 가요제에서 정재형과 정형돈의 파리돼지앵이 부른 노래 순정마초로 더 유명하다. 게다가 격투기를 할 때 선수를 소개하는 재담꾼이 잠시 “잠시 광고 나가요”라는 말까지 한다. 한도 끝도 없이 시대에 맞지 않는 불량대사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도, 국적도 맞지 않는 2011년의 유행어를 꼭 비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에 써야 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대사는 더 있다. 세자가 찾기 전 무사들이 김재운을 보면서 ‘이기적 유전자’ 운운했다. 이 역시도 재미도 없고, 재치도 없는 신조어 남발에 불과한 대사의 옥에 티였다.

그런가 하면 상황에 맞지 않는 틀린 대사들도 많았다. 화면은 인정전을 비치고 있는데, 세자는 근정전으로 나가겠다고 말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인 대비와 대화를 하면서 세자는 소자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했다. 소손이라고 해야 맞다. 드라마 후반 쪽대본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대본을 쓰고, 읽고, 연출하고 있는지 의아한 상황이었다. 또한 허염이 친척집으로 떠나기 위해 말에 오를 때 원경에 종이컵을 든 현대여성이 불쑥 튀어나오는 옥에 티도 걸러지지 못했다.

이렇게 한 회에 무수히 쏟아지는 옥에 티와 허점들은 해품달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해품달은 인기 드라마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명품의 자격은 얻지 못할 것이다. 명품이란 시크릿 가든의 유행어처럼 장인의 정성이 한 땀 한 땀 촘촘하게 작품에 스민 것을 말한다. 물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가 계속 반복되고, 또한 의도적으로 시대 파괴적 언어들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자질인 것이다. 이 드라마에 쏠린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신중한 대사 선택이 필요해 보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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