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태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노상택의 사주를 받고 빅토리아에 쳐들어온 조태수에 맞서 당당하게 맞섰지만 상대는 서울 중심을 장악한 직업 건달들. 일대일 대결에서는 용케 승리를 거뒀지만 조태수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들면서 싸움은 순식간에 일방적인 구타로 변하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송미진이 등장해 상황을 정리하지 않았더라면 강기태는 정말 큰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헌데 강기태는 조태수 패거리들에게 분명 패배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통쾌하게 이긴 셈이 됐다. 강기태가 조태수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보고를 듣고는 신바람을 내며 송미진을 찾았지만 거기에서 노상택은 오히려 빅토리아에서 나가라는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것과 정반대 상황에 당황한 노상택은 톱가수 섭외가 불가능할 거라 협박하지만 송미진은 오히려 “꺼져!”라고 소리치며 쫓아냈다.
결국 송미진의 아성에 도전했던 노상택은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 이름에 먹칠만 하고 만 셈이 됐다. 노상택이 망가지면서 그 반사이익을 보는 것은 당연히 강기태일 수밖에 없다. 여걸 송미진은 조태수 같은 무시무시한 깡패에게 쫄지 않고 맞서는 강기태의 용기에 매력을 느꼈다. 세븐스타와의 계약을 포기한 것은 물론 노상택이 괘씸한 것 때문이지만 어쩌면 깅기태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렇잖아도 중정 김 부장이 청와대에 찾아와서 안가의 어린 여자들을 건드린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 말에 장철환은 극도로 분노한 상태인데다 송미진까지 그 사실을 거론하자 이성을 잃을 상황까지 가는 것이 다음 주 내용이다. 그런데, 애초에 중정부장의 말에 장철환은 이를 부득부득 갈 정도로 분노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것은 추문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다. 장철환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대통령을 위한 채홍사 역할이다. 그런 채홍사에게는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각하의 여자에 딴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유신독재권력은 왕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장철환이 중정부장이나 송미진의 말에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만에 하나 각하의 귀에 그런 사실이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충성심은 금이 갈 것이고, 권력에서도 밀려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노예가 된 인간은 자신의 부정이 들통 났을 때 반성하기보다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장철환이 현재 딱 그런 상태다. 그것도 평소 눈엣가시로 여겨온 중앙정보부 김부장과 자신이 벌이려는 사업의 장애물인 송미진이 자신의 약점을 거론하는 것도 못 마땅하지만, 실제로 최고 권력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불안한 것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법, 장철환은 자신이 저지른 부정과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이성을 잃고 무리수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송미진이 이 드라마에서 가진 존재 의미는 그래서 대단히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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