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정원(유연석 분)이 소장 이식수술 후 공부를 위해 1년 동안 미국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친구들에게 밝힌다. 그런 정원을 바라보는 석형(김대명 분)의 눈빛. 아마도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마지막 회를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두 시간여의 긴 런닝타임임에도 여느 회차처럼 훌쩍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한 시즌이 마무리됐다.

무엇이 이 드라마를 꾸준히 지켜보게 만들까? 매번 열심히 닥본사를 하기 위해 시간을 맞추며 기다리게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99즈 다섯 명이 이루어가는 사랑의 결실을 지켜보기 위해서? 물론 이들의 사랑이 큰 관심거리이다.

지난 회차 대학시절부터 서로 지켜보기만 하던 익준(조정석 분)과 송화(전미도 분)가 드디어 '커플'로 이루어졌을 때 소리높여 응원하지 않았던가. 곰탱이 석형이 끈질긴 추민하(안은진 분)의 마음을 받아들였을 때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저 '결실'이라는 결과물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사랑으로 치면 이 드라마보다 더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아마도 이들은 사랑조차도 '사람 냄새' 나게 해서 그렇지 않을까.

착하게 살기 인간학 교과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이 드라마는 '인간학 교과서' 같다. 좀 더 부연하자면 '착하게 살아가기 위한 인간학 교과서'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밑지지 말자고 다짐하게 만든다. 그리고 남들보다 뒤지지 말라고 보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틈에 자신보다는 남이라는 존재와 마주하며 자신을 조절하며 사는 데 익숙해진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반대의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맹자는 ‘선(善)’을 이제 막 우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측은지심'이라 하셨는데, 그 드라마 버전이 이 드라마가 아니었을까.

추민하를 데려다주러 가던 석형. 석형의 손을 놓기 싫어하며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하는가 보다라는 민하의 말에 석형은 다정하게 타이른다. 자신을 좀 더 지켜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런 석형에게 민하는 이미 자신은 석형을 오래 지켜보았다고 말한다. 너가 이러니 거기에 대해 나는 이만큼 하겠다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마음을 '솔직'하게 말한다.

등장인물 모두는 직진이다. 자신이 준비되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다고, 망설이면 망설인다고 말한다. 사람살이에서 니가 이만큼 하니 나는 이만큼 하겠다는 '계산'이 없다. 자신이 가진 마음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적어도 이 드라마를 보는 시간만큼은 그 누군가의 잔꾀와 권모술수, 혹은 통수 치는 일로 인해 오래도록 마음 졸이는 경우가 드물다. 설사 그 누군가가 그런 일을 벌인다 하더라도 그 일에 휘말린 이의 우직한 방식 앞에 보는 이의 마음이 누그러지고 만다.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사람살이만 그럴까. 드라마의 배경이 병원인 만큼 마지막 회차까지 그 누군가는 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유명을 달리하며 인간사 생로병사의 굴레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심장 수술을 받고, 간이식을 무사히 마치고 웃으며 병원을 나갔던 이는 결국 뇌사 판정을 받고 말듯이 ‘인력'으로 다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슬프지만 아프지 않다. 적어도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율제병원 그 누구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날 컨퍼런스가 있기 때문에 석형은 일찌감치 퇴근한다. 이제는 무리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든 나이가 되었다고 웃으며. 하지만 그의 퇴근은 쉽지 않다. 무려 세 번이나 출근을 했다는 민하의 말처럼 응급 상황에 기꺼이 병원으로 차를 돌린다. 그런 식이다. 긴 런닝타임의 마지막 회를 채운 건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의 말대로 저승사자를 몇 번이나 알현했다는 익준의 말처럼 몇 번의 위기를 넘긴 이식 수술을 마치고 소파에 잠든 모습. 익준만이 아니다. 마지막 회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지쳐서 진료실 소파 위에서 곤히 잠들어 버린다. 그들은 시즌 2 내내 그랬었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태어나 한번도 음식을 맛보지 못한 아이를 위해 위험한 소장 이식수술을 소원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어려운 수술을 결심하고, 굽은 등과 불편한 호흡으로 엎드려 잠자는 아이를 위해 빼곡한 일정을 다시 쪼개고, 그렇게 주인공들은 여전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오늘 최선을 다한다.

전에 의료파업과 관련해 한 의사 선생님이 이해관계의 관점에서만 편의적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 현장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직업인의 입장에서 안타까움을 피력하셨더랬다. 어떤 문제나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나 '입장'이란 것이 우선한다. 그러다 보니 그 입장 뒤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미처 살피기 힘든 경우가 많다. 물론 그래서 '판타지'이겠지만, 적어도 율제병원을 보는 시간만큼은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삶의 이면을 되돌아보게 된다.

『프로이트의 의자』에서 저자는 좌절에 빠진 이를 향해 하다못해 이라도 닦으라고 말한다. 자기연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대신, 이라도 닦으며 움직여야 좌절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듯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실연에 빠진 그 순간에도 그들은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낸다. 그 '일관된 성실함', 사실 우리가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말고는 없다. 지금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만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라고 철학자는 전한다. 그 엄정한 삶의 진실을 <슬의생 2>는 12회차를 통해 성실하게 보여주었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그들이 열심히 해낸 일에는 역시 사랑과 우정을 빼놓을 수 없겠다. 준완, 익순과 함께 노래방에 간 익준과 송화. 준완을 결국 미소 짓게 만든 익준, 익순 남매의 멋들어진 공연 뒤에 의기양양 송화의 독무대가 시작되었다. 왜 안 말리냐는 준완의 하소연, 그런데 삑사리를 내며 열창하는 송화를 익준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문득 그런 익준의 미소를 보며, 나는 과연 사랑하는 이에게 저런 마음인가 반성하게 된다. 어려운 수술을 앞둔 정원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겨울처럼, 그리고 겨울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준 정원처럼 말이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스무 살 그때처럼 서로 계산하지 않고 아옹다옹 어울리는 99즈의 온기가 있기에 늘 따뜻했다. 이제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서게 된 로사(김혜숙 분)와 종수(김갑수 분), 그들이 앞으로 어떤 관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저 친구로 둘은 좋다. 돈을 요구해온 아들 때문에 고민하던 종수는 결국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어 로사네로 온다. 그리고 그런 종수와 로사는 기꺼이 함께한다.

아마도 99즈가 함께 나이 들어간다면 그들도 그러지 않을까. 착한 그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와 함께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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