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2022년 정부 예산안이 발표되자 언론은 ‘슈퍼예산’이란 딱지를 붙였다. 예산안 총액만 단순 비교해 '사상 최대 규모' 프레임을 씌우는 보도 행태를 두고 전문가들은 “언론의 불성실한 보도 태도가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14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가 주최한 <국가 부채 위기 조장으로 사회 연대와 양극화 외면하는 언론보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언론이 예산안 보도에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을 지적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가 주최한 <국가 부채 위기 조장으로 사회연대와 양극화 외면하는 언론보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가 1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사진=언론노조 유튜브)

'슈퍼예산', '국가채무 금기' 등 언론의 잘못된 관용적 표현

2022년 예산안으로 604조 4000억 원이 편성되자, 언론은 일제히 ‘슈퍼예산’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데일리 <내년 첫 600兆 슈퍼예산 놓고 논쟁>, 매일경제 <604조 슈퍼예산>, 서울경제 <내년 ‘슈퍼예산’ 8.3% 늘린 604.4兆>등이다.

이상민 연구원은 “슈퍼예산은 정상범위를 벗어났다는 표현인데 언론은 최근 6년간 예산안이 나올 때마다 '슈퍼예산'이라고 표현했다. 근거는 예산 규모가 사상 최대이기 때문"이라며 “매년 경제성장률이 오르고 세수가 증가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총지출 규모가 증가했다는 사실만으로 확장 재정기조임을 증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한국, 불평등 해소하기 위해 국가채무 금기 깼다“>(뉴스1) 등에서 확인되는 ‘국가채무 비중 40% 금기’라는 표현을 지적했다. 정부가 국가채무 비율 40% 금기를 세운 적도 없고, 이는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채무가 39%였을 때 40%를 넘지 말자는 단계적 목표에 불과하다.

이 연구원은 “국가채무 비중이 높으면 나쁜 것이고 낮다고 좋은 건 아니다. 대응 자산 있는 채무와 없는 채무가 있는데 언론이 이를 총액으로만 보도하니 사실상 국가채무 건전성이 어떤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당 채무액’을 산정하는 보도에 대해 이 연구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고 했다. <“올해 신생아 고교졸업 때 국가채무 1억씩 짊어진다”>(한국경제)기사를 두고 이 연구원은 “국가가 국채를 발행하면 정부가 채무자이고 채권자는 국민이다. 내가 부인에게 돈 100만 원을 빌렸는데 우리 가족 1인당 채무가 50만 원이라고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재무제표상 부채 2000조’란 표현은 '언론의 따라쓰기' 관행에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기업은 실적이 좋아질수록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경우가 있어 산업부 출입기자들은 기업의 부채비율이 높아졌다고 우려하는 기사를 쓰지 않는다”며 “하지만 기재부 출입 기자들은 매년 결산이 발표될 때마다 국가 재무제표를 잘못 해석해 쓰는 경우가 반복된다. 이는 다른 언론사가 모두 관련 기사를 쓴다면 틀린 것을 알더라도 우리 언론만 안 쓰면 안 된다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정부 재정을 곳간으로 비유하는 순간 잘못된 프레임에 갇힌다. 곳간에 비유하면 정부가 돈을 많이 벌어 곳간을 채워 놓는 것이 좋다고 해석하게 하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효율적인 배분을 위해서 세금을 걷는 것으로 곳간보다는 펌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정부 비판이 언론의 역할이라면 예산이 왜 적자인지, 부채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같이 써야하는데 기본적으로 성실함이 없다”며 “‘부채 200% 늘었네?’란 단순한 팩트 하나를 강조해, 종합적인 분석 없이 기사를 쓰는 불성실한 태도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꼽은 잘못된 국가재정 운용 언론 보도들 (자료제공=김종진 연구위원)

코로나 시기, 고용·청년·복지 분야 예산 확충은 ‘과잉’ 아닌 ‘필수’

지난달 31일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이 발표되자 보수 언론 중심으로 복지예산, 일자리·청년 재정 투여, 상병수당 예산 배정 등을 지적하는 보도가 나왔다. 2022년 국가재정 고용·복지·보건 분야는 전년도 대비 8.5% 증액된 약 216조 7천억 원이 배정됐다. 청년 정책 관련 예산은 일자리(5.5조원), 자산형성(1.7조원), 주거(6.3조원), 교육·복지·문화(9.7조원) 등으로 구성된다.

국민일보는 1일 <정권 아킬레스건 ‘일자리·청년·한국판 뉴딜’에 70조~80조 투입된다>, 매일경제는 <‘대선의 해’ 복지예산 200조 첫 돌파…청년층에 23조 현금 푼다>로 제목을 뽑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불평등과 피해가 가장 많은 이들은 청년과 여성들이다. 보수 언론은 ‘청년들에게 23조 원 준다’고 얘기하지만, 작년보다 그리 많이 증가한 수치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OECD의 2020년 ILO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불평등과 피해 심각 집단은 청년, 여성, 비정규직이었다.

김 연구위원은 일자리 예산을 세부 항목별로 따져보면 유의미한 정책 집행이 어려운 금액이라고 했다. 김 위원은 “일자리 예산 중 ‘직업훈련 고용서비스’는 4조 원 남짓에 불가하다”며 “로그함수를 모르는 문과생이 로그함수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1년 10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이들의 훈련비용이 포함된 금액치고는 액수가 너무 적다. 이 예산항목에 10조 원 이상 투여해 고령화 사회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은 정부가 내년 상병수당 시범사업으로 편성한 110억 원도 비판했다. 한국경제의 <아파서 쉬면 정부가 하루 4만원 준다> 기사에 대해 김 연구위원은 “시범 사업하는데 110억 정도밖에 안 되는 거다. 대상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유급휴가도 없고 소득이 단절된 사람들을 위한 자금으로 OECD 36개 국가 중 상병급여 없는 나라는 한국, 미국, 스위스, 이스라엘 4개뿐이며 이 중 법정 유급 병가 또한 없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 분야 예산 턱없이 부족 “예산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보도 전무”

코로나 장기화 상황에 보건복지 분야 예산은 어떨까.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대부분 예산 관련 기사가 정부 보도자료를 기사화하는데 그쳐 직접 2022년 보건복지분야 예산안을 분석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보건복지 총지출액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2022년은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소관 예산도 작년 대비 소폭 감소했다. 이 팀장은 “정부는 본 예산 대비 8.3% 늘었고, 언론은 절대 금액이 늘었기에 ‘슈퍼예산’이라고 하지만 살펴보면 추경에 반영된 예산보다 적게 편성됐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소관 분야별 지출예산을 보면 총지출은 전년 대비 7.0% 증가했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 하에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기능별로 사회복지 관련 예산은 5.8% 증가율을 보였지만 취약계층 지원, 공적연금, 노인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증가율이 높지 않다. 사회복지일반 분야 예산은 오히려 삭감됐다.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추경으로 편성됐던 ‘저소득층 한시 생활 지원’은 올해 편성되지 않았다. 이 팀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 증가율 둔화는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돌봄 예산의 경우 공백의 문제가 발견됐다. 정부는 돌봄 영역 격차 해소를 위해 2.8조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노인 돌봄 분야의 국공립요양시설 예산은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편성되지 않았다. 이는 노인들의 각종 질병을 살필 수 있는 시설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복지분야 예산에 대한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그는 “작년에는 많은 언론이 코로나19 상황에 주목해 사회안전망 강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올해 백신이 보급되자 대부분은 백신 관련 정부 브리핑만 기사화한다”며 “위기의 장기화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소외되거나 취약한 계층의 어려움이 사회적으로 기사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현재 확진자 수가 이대로 유지되거나 가속화될 경우 병상 부족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고, 돌봄정책은 정부가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않아 오롯이 가족 책임으로 전가되는 상황인데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업 언론인들 자성의 목소리.."예산안 기사, 소개에 그쳐"

최광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공정방송실장은 “왜 이런 기사들이 나오는가 고민해보면 기자들이 페이지뷰 영향을 받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며 “이런 기사가 나갔을 때 부장이 과연 국가의 존재, 정부의 역할에 대한 방향성을 고민하고 기사를 출고할까. 아마 내부적으로 페이지뷰 잘 나왔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각 언론사가 기사 개별 전투력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언론사 내부적으로 조회수에 집착하지 않고 기사를 낼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아영 언론노조 YTN본부 공정방송 추진위원장은 “2022 예산안이 발표된 날 YTN의 보도를 살펴보니 전체 예산을 다루는 보도만 나왔다. 보도가 20문장인데 한 분야당 한 문장씩 배당되는 식이니 분석은 당연히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언론이 예산 편성에 있어 생산적인 역할을 하려면 세세한 부분으로 들어가 정말 필요한 사업인지 등 분석이 필요한데 소개 수준에 그치는 게 문제”라며 “예산안 보도는 사실 달력 보도다. 예산안 전체 규모와 증가세를 따라가다 보니 매년 비슷하게 슈퍼예산으로 결론을 내린 보도가 나오게 된다”고 했다. 대안으로 예산안을 장기적으로 다뤄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왕구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왜 이런 보도가 나올까 생각해보면, 예산에 대한 정보를 정부 부처가 독점하고 있고 신문사 내에 재정과 복지 중 재정을 더 중요시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향이 있다”며 “재정 확대는 사회보장제도 확충에 비해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기사를 써온 경향이 있는데 자성해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