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회가 팩트체크 오픈 플랫폼 '팩트체크넷'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시정요구를 결정했다. 정부가 지원하고 있으나 독립적 운영이 관건인 팩트체크 플랫폼에 대해 정부 개입 근거가 마련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2020 회계연도 결산 전체회의에서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팩트체크넷 운영과 관련한 국회 시정요구사항에 이의를 제기했다. 과방위는 '방통위는 법적 근거가 없고 객관성 논란이 있는 인터넷 환경의 신뢰도 기반 조성 사업을 재평가하고, 팩트체크넷 팩트체크 이슈 대상이 편향적으로 선정되거나 국민·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게 운영되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시정요구를 의결할 예정이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시정요구는 민간 팩트체크 플랫폼에 대한 정부의 불개입 원칙을 허물 수 있다는 게 한 위원장의 우려다. 한 위원장은 "과방위원들의 우려는 충분히 공감한다. 이슈가 편향적으로 선정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하지만 누차 말씀드린 바와 같이 '팩트체크넷'은 애초 시작할 때부터 정부가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진행해 왔다. 이런 시정요구안이 자칫 방통위로 하여금 팩트체크넷 운영에 관여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방위 예결심사소위원장인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국회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은 팩트체크넷이 아닌 방통위"라며 "방통위원장 우려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방통위가 국회 우려 사항을 팩트체크넷에 전달하고 이후 제대로 되고 있는지 모니터링해서 국회에 보고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주문했다. 이원욱 과방위원장도 "방통위를 통해 예산이 집행되는 구조로, 방통위에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재차 우려를 표명하며 시정요구 문구를 '객관성 논란이 있는 사업을 재평가하고, 이후 팩트체크 플랫폼 운영주체인 재단법인 팩트체크넷에 우려사항을 전달할 것'으로 수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결산은 정부기관의 재정운영에 관한 것을 국회가 심사하는 것이다. 문구에 있어서까지 심사대상 기관장의 의견을 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정요구 문구 수정에 관한 권한을 과방위 여야 간사와 위원장에 위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방위 국민의힘 간사 박성중 의원은 "예산이 방통위에 잡혀있기 때문에 팩트체크넷을 지도·감독·통제해서 공정하게 만들 책임이 방통위에 있다"며 "국민의힘은 방통위 부서, 팩트체크넷 대표 책임자 등에 대한 징계까지 넣어야 한다고 했는데 시정요구만 서술됐다. 방통위원장 의견을 받아 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과방위 여야 간사와 위원장이 문구를 수정하기로 했지만 시정요구는 기존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앞서 국민의힘 과방위는 '예산낭비' 프레임으로 팩트체크넷 비판에 나섰다. 박성중·김영식 등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시스템 구축과 개발, 공모전, 교육, 정책연구 등에 쓰이는 팩트체크넷 정부 지원 예산을 팩트체크 건수로 한정해 예산낭비라고 주장했다. (관련기사▶팩트체크를 부르는 국민의힘 '팩트체크넷' 팩트체크)

2020회계연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관 결산 예비심사보고서 중

방통위가 팩트체크넷 운영에 사실상 개입하라는 국회의 시정요구는 과방위 수석전문위원실 검토 의견과 상충된다. 과방위 전문위원실은 "팩트체크 절차의 공정성·투명성 확보를 위해 정부는 검증 대상 선정 등 팩트체크 과정 및 내용에 개입하지 않고 있으며, 팩트체커가 자율적으로 검증 대상을 선정해 팩트체킹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며 "잘못된 정보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 시민들로 하여금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를 올바르게 분별하는 시각을 함양시킨다는 측면에서 팩트체크넷 운영원칙은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과방위 전문위원실은 일부 부실한 팩트체크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는 만큼 방통위에 ▲시민팩트체커에 대한 역량교육 강화 ▲전문 팩트체커 피드백 반영 시스템 개선 등을 주문했다.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팩트체크 플랫폼 역량 강화를 위한 시스템 개선을 강조한 것이다.

국회 시정요구로 검증 대상을 자율적으로 선정하는 팩트체커들의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팩트체크넷에서 활동하는 전문가·시민 팩트체커는 일반시민으로부터 접수된 제안사항이나 실시간 이슈 모니터링 등을 통해 검증대상을 자율적으로 선정한다. 국회 시정요구는 이슈 선정 단계부터 '편향성' 등 정치적 공정성을 정부가 관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팩트체커의 자기검열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지적사항 중 하나가 '정치인 발언 검증은 대부분 야당 정치인 발언 위주'라는 점에서 정치권 모두를 충족시키는 팩트체크를 국회가 주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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