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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이기며 행복을 지키는 맨드라미 앞에서[종이에 그린 들꽃 향기] 맨드라미
조현옥 수필가 | 승인 2021.09.14 09:07

[미디어스=조현옥] 꽃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한 번 글로 썼던 꽃을 우연히 만나면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글을 쓸 때는 이미 마음에 들어왔던 꽃에 관해 쓰는 것이고, 글을 쓰려면 자꾸만 그 꽃의 모습을 떠올리며 꽃잎의 모양과 꽃술의 개수까지 그 모습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또 자료를 찾다 보면 그 꽃의 출생과 고향,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되고 좋아하는 날씨와 환경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 피는 대부분의 들꽃은 약용이나 식용으로 쓰이며 사람에게 유익한 성분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꽃의 내면을 발견하게 되어 감동할 때도 있다. 그러니 꽃을 알게 되는 것이 친구를 만나는 일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반려 식물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글로 쓰는 꽃은 반려 식물처럼 집에서만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휴양을 위한 산책길, 때로는 삶의 길에서 만나 추억이 깃들기도 한 꽃들이니 동반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꽃이 나를 부르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바로 일주일 전이었다. 직장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 딸의 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에 예쁜 꽃담이 눈에 띄었다. 70년대에 지은 집으로 보이는 단층 시멘트벽 집에 담도 없고 출입문 앞에 작은 꽃밭이 담처럼 늘어선 것이다. 길에서 한 십여 센티 올라온 벽돌로 된 화단에는 맨드라미와 설국초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그 옆으로는 방울토마토가 거의 지붕 높이까지 자라 있었고 토마토가 싱싱하게 열려 있었다.

맨드라미 (사진=조현옥)

내가 꽃을 둘러보고 있으니 그 곁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빙긋 웃으며 “이쁘지요” 하고 말을 건다. “어르신이 심은 거예요? 참 잘 자랐네요. 사진 좀 찍어도 되죠?” 어르신은 자랑스러움에 더 활짝 웃으며 여기도 찍으라며 자리를 비켜주기까지 한다. 

그때 만난 진분홍색 맨드라미가 마음에 들어왔다. 이제까지 내가 본 맨드라미는 닭 볏을 닮은 자줏빛 맨드라미였다. 그곳에 있던 맨드라미는 진분홍 한복 빛깔로 초록색 잎도 크고 빛이 났으며 촘촘하고 커다란 꽃잎이 하트모양을 하고 있었다. ‘환영, 축복’이란 꽃말을 가진 설악초와 하트 모양의 맨드라미를 보니 꽃들이 딸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다 이렇게 예쁜 꽃밭을 가꾸는 어르신이 밖에 나와 계시면 낯선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어린 딸을 지켜줄 것 같아 든든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맨드라미와 할머니를 생각하며 맨드라미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꽃 사진이 더 있었으면 하는데 맨드라미가 눈에 띄지 않았다. 

오늘 광교산 둘레길을 산책하러 나섰다가 근처 초등학교의 담벼락 위에 핀 꽃이 눈에 띄었다. 그 꽃을 가까이 보려고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교문을 들어서자 학교 건물 앞에는 쇠기둥을 의지해서 1m는 넘어 보이는 맨드라미가 나무처럼 한 다발 묶여 자라고 있었다. 맨드라미가 쓰러지지 않게 건축 자재로 쓰이는 철근 하나를 세워 여러 그루를 묶어놓은 것이다. 이제까지 여러 학교에 근무하러 다녀 봤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키가 큰 맨드라미도 처음 봤다. 노란 조롱박꽃을 보러 왔다가 이렇게 잘 자란 맨드라미 다발을 만났으니 이것이 맨드라미가 나를 부른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맨드라미 (사진=조현옥)

사실 자줏빛 맨드라미는 내가 좋아하는 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1, 2학년쯤이었을까. 살던 집의 마당에 나가면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닭이 있었다. 뒤꿈치를 쪼이기라도 할까 봐, 나는 두려움을 품고 마당을 가만가만 걸어 다녔다. 그래서인지 닭의 볏을 닮은 맨드라미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닭의 볏을 닮은 맨드라미는 예전부터 계관화(鷄冠花)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불교에서는 만다라(曼陀羅/曼茶羅)와 소리가 비슷하여 불교의 이치를 담은 꽃으로 보기도 하며 절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맨드라미를 ‘만들다’에서 나온 우리말로 보기도 한다. 모양이 일정하지 않으니 만들다, 맨드라미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꽃의 강렬한 색은 사람들에게 뜨겁게 열정을 일으키는지 꽃말도 타오르는 사랑, 따뜻한 사랑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플라멩코를 추는 여인의 드레스 모양을 닮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니 맨드라미의 이미지는 열정 그 자체인 것 같다.

맨드라미는 닭의 볏을 닮은 모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촛불을 닮은 촛불 맨드라미와 여우 꼬리 맨드라미, 선 맨드라미도 있다. 내가 딸 집 근처에서 본 맨드라미는 난쟁이 맨드라미로 키가 작고 꽃송이가 유난히 커서 하나의 덩어리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맨드라미가 벨벳 천 같기도 하다. 작은 섬유가 세워져 있는 벨벳처럼 광택이 나며 빛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른 빛깔로 보이니 말이다.

맨드라미 (사진=조현옥)

맨드라미는 색이 짙은 만큼 풍부한 안토시아닌을 함유하고 있어 건강에 좋은 것은 물론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 기능에 좋다고 하니 참으로 반려 식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예로부터 마당에 심어두고 자주 보며 험한 시집살이에 지친 며느리의 몸과 마음을 달래준 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려 시대의 문인 이규보는 맨드라미, 즉 계관화에 대해 여러 수의 시를 읊었다. 서리를 이기니 국화와 견줄만한 꽃이라 하였고, 맨드라미의 빛깔이 명주에 짙은 염색을 한 것 같다고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에도 등장하는 맨드라미는 먼 인도에서 건너와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가슴에 붉은 열정과 건강을 주는 꽃으로 살아온 것이다.

사실 하트모양의 맨드라미를 보고 온 날부터 꽃 옆에서 웃고 있던 할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단층의 허름한 할머니 집을 둘러싸고 사방에서 고층 건물을 짓는 동안 먼지와 소음에 많이 시달리셨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그 집을 지키셨을까. 그 집은 할머니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할머니의 얼굴에 평화를 지켜준 것은 이 꽃 마당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할머니 마음에 단단한 행복 심지가 있어서 꽃들을 지켰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할머니의 꽃과 할머니가 그 동네를 아름답게 지키고 있다. 부디 서리가 내려도 시들지 않는 탐스러운 맨드라미와 함께 어르신의 행복과 건강이 오랫동안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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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옥 수필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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