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13일 국회에서 열린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KBS 드라마 스태프 계약서가 논의의 불을 당겼다. 16일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는 KBS에서 방영, 제작 중인 드라마 9편을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을 이유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할 예정이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드라마 제작현장 스태프들이 작성한 계약서를 검토한 결과 KBS 드라마 계약서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고 밝혔다. KBS 스태프 계약서는 ‘1일 16시간까지 근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스태프가 제작사와 맺는 계약 내용과 관련해 ‘비용 관련해서는 KBS가 정한 방침에 따른다’고 강제하고 있다. 윤 변호사는 “스태프가 제작사와 맺은 계약서이지만 실질적으로 KBS의 지휘·감독에 따른 계약서”라고 말했다.

13일 드라마제작 현장의 방송스태프 계약실태 및 문제점,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 (사진=노동이수진TV 유튜브 화면)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KBS가 제작 중인 드라마를 위주로 드라마제작현장의 계약실태를 고발했다. 김 지부장은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은 스태프들에게 감독급을 사용자로 하는 턴키계약을 강요하고 있고, <꽃피면 달 생각하고>는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연모>, <꽃피면 달 생각하고>, <달리와 감자탕> 등은 KBS 자회사 ‘몬스터 유니온’이 제작하고 있지만 실제로 하청·재하청을 공동제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다른 제작사들이 제작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김 지부장은 “KBS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SBS의 <사내맞선>도 턴키계약을 강요하고 다른 방송사들은 제3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강요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자회사와 또 다른 제작사가 공동으로 제작하는 형태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이동시간 포함 하루 12시간을 넘지 않는 노동시간 보장 ▲1일 8시간 노동시간 기준으로 책정된 실질 임금 보장 ▲하청에 재하청을 반복하게 만드는 방송사 자회사 문제 해결 ▲노동자 인권 문제 해결 등을 방송사, 제작사, 정부 부처에 요구했다.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사용되는 계약서 대부분 '위법'

드라마 현장에서 사용되는 계약서 대부분은 법률 위반 소지가 있다. 우선 방송사와 제작사는 스태프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데 이는 법 위반이다. 스태프 지부가 333명의 스태프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5%가 근로계약서가 아닌 개인(프리랜서) 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사들이 업무위탁계약서나 하도급계약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감독급(팀장급) 스태프들을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은 고용노동부 판단 때문이다. 윤지영 변호사는 고용노동부가 최근 법원과 반대되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이를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MBN 드라마 <마성의 기쁨> 촬영감독이 제작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감독급 스태프를 근로자로 판단했다. 중앙지법은 “촬영감독이 제작사가 지정한 촬영 계획에 따라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지정되는 점, 일의 수행에 필요한 지휘·감독 권한은 제작사에 유보되는 점 등에 비추어 촬영감독은 종속적인 관계에서 제작사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자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윤 변호사는 “드라마 현장에서 쓰이는 계약서에는 촬영장소 및 근무시간 지정, 지휘 감독성, 전속성, 제3자에 의한 업무 대체 불가능성 등이 담겨있어 스태프 모두 법상 근로자”라며 “그런데도 그 누구에 대해서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대하고 명백한 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지적되는 수많은 위법 요소가 있다. 김은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계약서를 작성·교부했더라도 소정근로시간,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지급방법, 휴일 등을 명시하지 않았다면 근로기준법 위반, 스태프를 상대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을 예정한 경우 근로기준법 위반, 임금 지급에 조건을 부과한 것 역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고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작성된 계약서에 기재된 근로기준법상 최저기준을 위반하고 잠탈하는 내용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처할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개선방안 모색하겠다는 정부 부처..."책임 미루지 말라"

진재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방송사·제작사를 향해 “방송사는 자회사를 설립해 책임을 회피하고 제작사는 턴키계약을 요구하며 감독급 스태프들에게 사용자 책임을 미루고 있다”며 “원청인 방송사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근로계약서 작성을 적극 추진하고, 노동조합과 협의를 위한 대화 자리를 마련해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 국장은 고용노동부에 정확한 노동자 실태 파악을 주문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 독립적인 신고 센터 운영을 촉구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향해 방송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진 국장은 "방송 관련법에 방송노동자들의 노동권 및 인권에 대한 고민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며 "이를 담기 위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관련 부처 담당자들은 토론회에 나온 건의 사항 등을 참고해 내부 검토를 거쳐 실효성 있는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답했다. 곽진희 방통위 편성평가정책과 과장은 “방송제작시장에 어려운 실태에 대해 주목하고 있고 근로 환경개선을 위해 관련 사업자들과 회의 등을 통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세호 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 사무관은 “가장 중요한 게 근로자성 판단인데 최근 고용형태가 다양해지고 판단영역이 넓어지고 있어 향후 현장 목소리를 세심하게 듣고 개선되도록 체계적 관리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강지은 문체부 방송영상광고과 과장은 “문체부는 표준계약서를 제정해 권고하고 있지만 표준계약서 사용 경험 비율이 38.6%에 머물고, 드라마 분야는 27%에 머무는 현실”이라며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지영 변호사는 "최근 판례 동향을 고려하겠다고 하니 덧붙이자면 드라마 <마성의 기쁨> 촬영 스태프는 처음에 노동부에 임금 진정을 했지만, 노동부는 감독급 스태프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그대로 가져와 각하를 결정했다"며 "결국 서울중앙지법을 통해 노동부 결정을 뒤집은 결과를 얻어냈다"고 설명했다.

김기영 지부장은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KBS 드라마를 고발 진정했지만, 노동부는 아직 답이 없다. 문체부에 올림픽 시기 결방에 따른 스태프 임금 미지급 문제와 관련해 대책을 마련해달라 부탁했지만 해당 건과 전혀 관계없는 답변을 보내왔다”며 “오늘 방통위가 제시한 제작자 인권보호, 제작인력 강화, 여행자 보험 가입 등은 드라마 스태프가 아닌 독립PD나 작가가 해당되는 부분으로 주제와 관련 없다”고 비판했다.

김 지부장은 미디어스에 “이번주 내로 KBS 모든 드라마를 노동부에 고발할 예정”이라며 "공영방송인 KBS부터 근로계약서 미작성 문제로 고발을 시작할 거다. 사실 공영방송 여부를 떠나서라도 KBS가 드라마 제작 환경이 제일 열악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이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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