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정의철 칼럼] 감염병 위기 속에 재택근무를 할 수 있고 이동을 스스로 통제하면서도, 소득에 지장이 없으며 감염위험으로부터도 보호될 수 있는 기득권/엘리트 계층과, 재택근무 자체가 불가능한 필수노동자, 고용 불안정에 신음하는 비정규직, 폐업이 걱정인 영세자영업자 간에 ‘고통 불평등’이 뚜렷해 보인다. 최근 연구들에서도 제시되었지만, 장애인, 이주민, 홈리스, 빈곤층 노인과 아동, 시설 수용자, 난민, 성소수자 등 오랜 기간 차별 대상이었던 계층들의 ‘취약성’이 가중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런 취약성이 감염위험을 높인다고 지적하면서, “인권이 코로나19 대응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연일 ‘숫자’ ‘통계’ ‘동선’ ‘단계’ 중심 발표와 보도 속에 감염병 국면에서 악화하는 ‘고통 불평등’과 인권문제를 걱정하는 언론 보도는 찾기 힘들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방역지침이 사치일 정도로 과로와 사고, 감염위험을 무릅쓰고, 더 강도 높게 일하면서, 실직/폐업 위협에도 직면해 있는 ‘서민’들의 목소리가 좀 더 분명히 드러나고, 대책이 모색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8월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에서 열린 산별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유감스럽게도, 언론은 수많은 ‘고통 불평등’에 시달리는 계층들의 상황을 조명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며, 공감하고, 대책을 찾기보다는 ‘당국’과 ‘전문가’의 목소리를 반복해 확산하는 데 급급하다. 이 결과, 방역 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보건 의료노동자들과 방역에 동참하는 수많은 시민들, 또 ‘고통 불평등’에 신음하는 ‘서민’들의 목소리는 공론장에서 부재하다시피 하다.

오랜 기간 불평등에 노출되어 있던 집단들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차별은 코로나 국면에서 더욱 노골화되고 있고, ‘고통 불평등’은 ‘인권 위기’로 비화되고 있다. 방역에서 필수적인 백신 접종에서도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이 빈발하다니 더욱 ‘고통 불평등’과 ‘인권 위기’를 실감한다. 동일 업무에도 임금, 노동조건, 복지에서 차별을 당해오던 비정규직에 대해 백신 접종까지 차별하다니, ‘인권선진국’은 아직도 요원하단 말인가?

언론은 ‘확진자 숫자’와 ‘단계’에 초점을 맞추는 ‘발표 저널리즘’에서 벗어나, 감염에 취약한 노동/주거/위생환경의 문제들을 파헤치고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 또한 ‘백신 차별’ 등 감염병 위기에서 노골화되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공론화해야 한다. 나아가 ‘동일 노동, 동일 접종’ 같은 ‘인권 친화적’ 방역정책을 촉구하는 ‘인권 보루’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불행히도, 극단적 상업화에 거대 정파에 줄서기 관행까지 가미된 권력화 된 ‘주류언론’은 연일 정치 공방 중심 가십들을 쏟아내고 있다.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체질화된 ‘권력 밀착형 발표 저널리즘’의 관행 속에서, 소수자와 약자 등 서민들의 건강과 인권, 생존권은 보도의 우선순위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다.

8월 19일 서울 용산구 전국철도노동조합에서 열린 코레일 자회사 해외입국자 전담 하청노동자 백신접종 즉각 실시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여름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인권 보루’로서의 언론의 역할이 더욱 아쉽다. 한국철도공사는 정직원들만 백신 접종 우선 대상으로 신청했고, 입국자 수송을 담당하는 버스 기사들은 감염위험이 높은 필수노동을 수행하는 방역 일선에 있지만, 자회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접종에서 배제되었다고 한다. 발전공기업들은 우선 접종 대상인 발전소 필수인력 명단에서 자회사·용역·파견업체 노동자들을 제외했고, 보건의료 인력 중에서도 간병/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이 우선 접종 대상에서 배제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고용형태에 따른 백신 접종 차별은 인권 무시의 결정판이다. 더욱이, 비정규직일수록 밀집되거나 대면접촉이 많은 노동조건에 있는 경향을 고려하면, 이러한 차별은 방역에도 역행한다. 언론은 백신 등 방역정책에서 차별이 인권관점에서 정당하지 않고, 방역에도 허점을 만든다는 목소리에 응답해야 한다. 나아가, 비정규직의 건강과 안전까지 위협하는 간접고용 제도와 파견법 폐지 공론화 요구에도 주목해야 한다.

방역과 인권, 공중보건과 생존권이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다수 ‘서민’들의 공감과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소중하다. 주류언론은 기득권 세력들의 공방과 갈등에 집중하기보다, 방역 등 다양한 서민의 일상에서 자행되는 차별과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에 충실하기 바란다.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의 한 가게 앞에 내부 보수로 버려진 건축자재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최근, 언론에 대한 불신은 임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백신 등 방역을 둘러싼 불평등과 차별, 인권침해에 대해 이른바 ‘대안 언론’에서 더 적극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현실은 ‘언론개혁’의 필요성과도 연결된다. 이미 표현의 자유와 방어권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기득권 세력과 엘리트들 간 대립을 부각해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가 클릭 수/시청률을 단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진 모르지만, 언론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언론개혁의 파고를 더욱 거세게 만들 것이다.

기득권 세력 간 권력 쟁탈전에 참전하고, 클릭 수/시청률 경쟁에 매몰될 것인지, 과감히 스스로 개혁해 ‘고통 불평등’ 해소와 서민들을 위한 ‘인권 보루’로 거듭날 것인지, 언론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이른바 ‘주류언론’에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부디 스스로 깨닫기를 소망한다.

* 정의철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20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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