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그가 진짜로 은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습니다. 용퇴, 혹은 하차라는 표현이 아니라 은퇴의 강력한 표현을 쓴 것은 그가 영원히 연예계를 떠날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만큼 강호동이 탈세 혐의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진정성의 호소였었죠. 그리고 그 은퇴 앞에 ‘잠정’이라는 꼬리표는 그의 복귀를, 은퇴가 아닌 쉼표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힌트였습니다. 이렇게 한방에, 급작스럽게 떠나보내기엔 그가 가진 에너지와 재능이 너무나도 안타까우니까요.

은퇴 선언의 이유가 정말로 심각하고 치유 불가능한 것이라면 이른 나이의 용퇴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이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격언이 있다고 해도, 웃음을 전달하는 사람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불쾌감을 준다면 법적인 책임 그 이상의 무거운 짐을 지며 그 시선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죠. 더구나 남녀노소를 모두 품을 수 있는 사람냄새와 정겨움, 친숙함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가지고 있던 천하장사 강호동에게 불미스러운, 그것도 돈과 관련된 문제는 자칫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치명타였습니다. 그가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였구요. 가뜩이나 종편행의 소문과 맞물리며 1박2일 하차를 결정지었기에 돈과 관련된 탈세 혐의 조사는 시기적으로나 사항의 경중에 있어서도 무척 무거운 문제였어요.

하지만 그의 결단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와 동일한 문제로 혐의 선상에 올랐거나, 이전에도 같은 사항으로 조사를 받았던 연예인들 중에서 이렇게 전격적으로 사과를 발표하고 이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사람은 강호동이 유일합니다. 그것도 모든 이의 만류를 뿌리치며 신속하게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고, 모든 연락을 끊으며 침묵에 들어갔습니다. 반성과 뉘우침.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사람이 없는 깨끗한 마무리였어요.

그 와중에 그의 혐의는 고의성이 없다는 검찰의 결론이 나왔고, 그나마도 강호동이 직접 챙긴 것이 아닌 세무사의 과실로 밝혀지면서 그 상처도 점점 더 아물고 있습니다. 탈세는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되는 행위이고 자신은 몰랐다는 변명처럼 비겁한 것도 없습니다. 문제가 어찌 되었든 최종 책임을 피한다는 것은 보좌관 전성시대를 보여주는 일부 정치인의 처신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복잡한 세제 적용을 위해 고용한 세무사의 책임도 깔끔하게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룬 그에게 더 이상의 비난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에요. 그는 이미 충분히 쉬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복귀할 것인가. 강심장과 스타킹처럼 그냥 돌아오면 되는 자리와는 다르게, 복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일요일 핵심시간대 프로그램입니다. 그 시간대의 경향이 지금 대한민국의 예능을 지배하는 코드입니다. 강호동 복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어떤 일요일 예능을 보여줄 것인가에요. 모두가 2월의 1박2일 종료만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일요일 KBS의 그 자리의 주인공으로 그를 점찍는 사람도 많지만 그럴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그가 하차하면서 마무리된 1박2일의 후임 프로그램으로 복귀한다는 것은 명분도, 모양새도 좋지 않거든요. 게다가 유사한 포맷으로 돌아오는 것 역시도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그의 전성기를 가져다준 야생 버라이어티의 생명력을 다시금 돌아봐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어요.

그렇기에 가장 바람직한 강호동의 복귀는 다소 위험요소는 많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안을 바라는 도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미디 일변도의 예능계는 강호동식 연예 버라이어티를 가미하며 방향이 뒤집혔고, 무한도전의 리얼을 1박2일 식의 야생으로 다시 이어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죠. 나는 가수다 중심의 음악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시작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기운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힘겨워 하고 있습니다. 판박이 따라쟁이로 시작한 불후의 명곡은 물론이고, 바람에 실려나 룰루랄라 같은 일밤의 후속 프로그램도 별다른 호응 없이 사라졌고, 나가수의 열기도 그 설렘을 잃어버리고 점점 더 사그라지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새로운 흐름이라면 슈스케의 힘에 의지해 생겨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 개콘의 용기에 힘입어 시작된 정치 풍자 코미디입니다. 하지만 강호동이 취해야 하는 길은 이 두 가지 모두 아닙니다. 오디션은 이제 곧 각 프로그램이 배출한 스타들을 소화하는 것에 힘겨워할 시기가 올 것이고, 정치 풍자의 생명력은 이 정부의 마무리와 함께 끝날 가능성이 높거든요. 결국 말하자면 리얼의 힘은 떨어지고 있지만 그 대안은 여전히 흐릿한 상태. 강호동은 자신의 휴식과 함께 전체를 바라보며 미래 동력, 새로운 웃음 코드를 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이만큼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죠.

올 4월의 정기 개편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강호동의 복귀는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또 하나의 새로운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가뜩이나 힘겨워하는 이에게 너무 큰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라구요? 그는 그럴만한 능력도, 의무도 가지고 있는 거인입니다. 오히려 이전의 캐릭터를 답습하고 돌아온다면 실패할 공산도 크고요. 어쩌면 실패를 거듭할 수도 있고,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강호동의 이름은 쉽지 않은 도전을 길게 기다리며 참아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런닝맨의 힘겨움을 화려한 부활로 이끈 유재석처럼, 또는 1박2일의 처참했던 출발을 일요일의 제왕으로 바꾸었던 그의 과거처럼 대형 MC의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은 바로 이런 도전을 위해 활용되는 것이에요. 때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2012년은 그가 돌아오는 한해가 될 것이에요. 그리고 그와 함께 또 다른 흐름이 생겨나길 기대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다양함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재능이자 보물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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