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어디로 갈지 모르는 대선 레이스라지만 여당은 가닥이 잡혀가는 것 같다. 하지만 야권의 분위기는 오히려 안갯속이다. ‘큰 정치’를 생각하기 힘든 최근의 여의도를 보여주는 모습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충청권 경선에서 과반 이상의 대승을 거두었다. ‘대승’이라 표현한 것은 이재명 지사 측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 캠프 인사들은 충청권 경선 전망에 대해 과반 미달 가능성이 높고 과반을 달성하더라도 아슬아슬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충청권은 이재명 지사 조직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역 의원 분포를 봐도 이낙연 전 대표나 정세균 전 총리 쪽이 우세해 보인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아슬아슬이 아니고 오히려 넉넉했다. 이유가 뭘까?

먼저, 코로나19로 ‘조직선거’가 쉽지 않았다는 조건을 언급할 수 있다. 대면 설득과 ‘동원’이 어려운 조건에서 조직적 우위가 경선 결과에 반영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직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표심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 가깝게 수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 결과를 전부 설명하긴 어렵다. 결국 여당의 기층조직이 이재명 지사의 본선경쟁력에 강하게 이끌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아직 경선은 극초반이지만 결과는 거의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재명 지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충청권 경선은 가장 까다로운 전장이었을 수 있는데, 여기서 과반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남은 경선 일정의 중요 고비에서도 이재명 지사에게 유리한 효과를 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는 고민거리는 여전히 남아있는 ‘비토 정서’를 극복할 수 있느냐이다. 이재명 지사로 후보가 확정되는 경우를 전제할 때 이탈표를 얼마나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후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걸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후보 개인에 대한 판단을 미래 비전에 대한 공감대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자잘한 말장난이 아니라 큰 정치가 필요하다는 거다.

그간 경선 토론에서 이재명 지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후보들은 이 대목에서 약점을 보여왔다. 한국 사회를 어디로 이끌겠다는 비전의 제시는 없거나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항변도 있다. 실제 토론에서 네거티브 공방만을 벌인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사실이다. 그러나 미래 비전이 과연 경쟁의 중심이었는지를 묻는다면 자신있는 답은 어려울 것이다. 이제부터는 달라야 한다. 그래야 모두에게 이롭다. 유권자에게도, 이탈표를 최소화 해야 하는 이재명 지사에게도, 자기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캠페인으로 일관해 온 이낙연 전 대표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이런 얘기가 가능한 여당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제1야당으로 야권의 정권교체 전략을 이끌어야 할 국민의힘 경선은 그야말로 아사리판이다. 역선택 방지 도입을 놓고 후보들끼리 극한 대립을 이어간 끝에 선관위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번복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30대 대표를 선출해 변화를 모색하려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이미 먼 옛날로 느껴진다.

국민의힘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가운데)이 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공정경선 서약식 및 선관위원장 경선 후보자 간담회에서 윤석열, 최재형 후보와 악수하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논란의 중심에는 1위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있다. 역선택 방지 논란은 결국 ‘굴러 들어온 돌’인 윤석열 전 총장에게 얼마나 유리하게 경선룰을 정할 것이냐의 문제로 비춰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여기서 대립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건 홍준표 의원인데, 최근 여론조사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윤석열이냐 홍준표냐’란 질문의 의미가 이전과는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다.

이전까지 홍준표 의원은 국민의힘이라는 기성 구조에 안주하는, 확장성을 포기한 선택지로 비춰졌다. 하지만 여당 지지층이 윤석열 전 총장 비토의 연장선에서 야권 후보 중 홍준표 의원을 지지한다는 응답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준석 대표와의 대립구도에서 윤석열 전 총장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윤석열에 반대한다’는 의사표시로 홍준표 지지를 표명하는 현상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윤석열 전 총장은 국민의힘의 변화 필요성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홍준표 의원이 확장력을 주장할 수 있게 된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경선룰의 설계라는 측면에서 역선택 방지는 충분히 논할 수 있지만, 윤석열 전 총장이 이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은 결국 정치적 빈곤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이준석 대표와 캠프 인사들 간의 대립을 방치하고, 겉으로는 선관위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면서 뒤로는 역선택 방지를 요구하는 모습은 작은 유불리에 집착하는 소인배 정치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윤석열 전 총장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이런 작은 이해관계에 집착할 게 아니라 정권교체의 필요성과 이를 이룰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을 주장하면서 상황을 주도하려고 했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 입당 이후 윤석열 전 총장은 어떤 인상적인 장면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런 식이면 위기 대응도 제대로 될 리 없다. 윤석열 전 총장 관련 뉴스는 첫째가 역선택 방지, 둘째가 ‘고발 사주’ 의혹이다.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가 보도하기 시작한 이 의혹은 한겨레가 문제가 된 고발장을 입수해 보도하면서 일파만파로 확산될 분위기다.

드러난 사실만 보면 고발 사주 의혹은 언론이 중하게 다룰 근거가 충분하다. 검찰이 야당에 검찰총장과 관련한 사건 고발을 사주해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수사를 하려 했다면 당연히 큰 문제다. 그런데 이 맥락보다 더 큰 문제로 보이는 건 이 의혹이 지난해 4월 총선이 코앞인 시기에 검찰, 보수언론, 제1야당이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인 정황처럼 보인다는 거다.

검찰로부터 미래통합당 측에 고발장이 전달된 것으로 추정되는 4월 3일은 채널A 사건에서 이철 씨 대리인을 자처하며 MBC의 취재에 동행한 인물이 이른바 ‘제보자X’라는 사실이 조선일보를 통해 보도된 날이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이 인물이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는지, 가명으로 페이스북을 이용하며 무슨 글을 올렸는지,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황희석 최고위원 등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6일자 한겨레 보도를 보면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검사는 조선일보의 이 기사와 함께 기사에 인용된 여러 자료도 함께 전송했다는 의심을 받는 걸로 돼 있다. 조선일보의 취재와 문제의 ‘고발장’이 동일 소스에 기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4월 3일 이전까지 채널A 사건에 대한 당시 미래통합당의 태도는 사실확인이 우선이며 사건이 검찰총장을 공격하는 정파적 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오면서 태도가 바뀌었다. 당시 총괄선대위원장이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친여 전문 고발꾼을 동원해 공영방송과 짜고 다른 언론사를 공격하는 걸로 자기들의 비리를 덮으려고 하는데 국민이 속을 거라고 봤다면 오산”이라고 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건 적법절차도, 자유민주주의도 아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 수 있다. 감찰이나 수사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여러 의심에도 불구하고 대선 전에 진실이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이런 의혹에 윤석열 전 총장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냐는 거다.

윤석열 전 총장 측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공작정치라고 한다. 캠프 인사들은 차례로 언론에 나와 여러 정황을 끼워맞추며 근거가 없는 의혹이라고 주장한다. 윤석열 전 총장이 명확한 자기 주장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상황을 주도해왔다면 이런 부실한 대응도 정치적 효력을 발휘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아닌 상태에서 이 사건은 ‘홍준표에 쫓기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경쟁력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로 비춰지고 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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