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21.10.24 일 12:01
상단여백
HOME 미디어비평 톺아보기
이유 있는 감동, 영화 ‘코다’가 진짜 하고픈 이야기는[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9.05 12:07

[미디어스=이정희] 그녀를 빼놓고는 가족 모두 '농인'이다. 그녀가 없이 나간 가족의 일, 고기잡이에서 '정상인'이 없다는 이유로 어업 정지 명령과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금액의 벌금형이 떨어졌다. 8월 31일 개봉한 영화 <코다>는 '농인' 부모와 오빠를 둔 루비(에밀리아 존스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등학생 루비. 하지만 그녀의 일과는 어업에 종사하는 아빠, 오빠와 함께 바다로 나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족 중 유일하게 청인인 그녀는 고기 잡는 일은 물론 고기값 흥정에 이르기까지 없어서는 안 될, 가족과 세상의 ‘징검다리’이다. 

농인 가족의 징검다리 소녀 

영화 <코다> 스틸이미지

루비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가족과 함께 식당에 와서 오랫동안 수어로 이야기를 나누더니 웨이터를 불러 당차게 맥주 2잔을 시켰던 것이 마일스(퍼디아 월시 필로 분)에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병원에 간 루비, 알고 보니 아빠의 성기 소양증 때문이었다. 2주간 성행위 금지라는 의사의 처방도 고스란히 루비가 통역을 해야 한다. 

영화는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여고생 루비가 짊어진 가족이라는 짐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가족들은 농인이란 장애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아직 청소년인 루비만이 세상과 가족들을 이어준다. 당연히 가족들에게 루비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고, 당연히 함께할 존재이다. 루비도 그렇게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루비에게 다른 꿈이 생겼다. 그녀의 눈길이 가던 마일스가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합창 동아리에 선뜻 가입했다. 첫날 성부를 나누기 위한 짧은 오디션에서 루비는 그만 도망치고 만다. 

파도 소리와 엔진 소리, 고기잡이 장비 소리가 뒤엉킨 배에서도 눌리지 않고 고고하게 뻗어내며 노래를 부르던 루비였다. 하지만 농인의 자녀라 처음 학교와 왔을 때 발음조차 분명치 않다고 놀림 받던 소녀는 막상 세상에 나와 노래를 부른다는 게 두려웠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 속에 숨어들던 루비에게서 음악 선생님은 거친 바다에도 지지 않던, 다듬어지지 않은 음색을 발견해 냈다. 그리고 마일스와 함께 듀엣을 맡긴 데 이어 버클리 음대 입학을 제안한다. 

션 헤이더 감독의 <코다>는 미국의 대표적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관객상, 감독상, 앙상블상의 4관왕이 되었다. 농인 가족 소녀의 꿈 찾기라는 성장 플롯에, <라라랜드> 음악 감독이 참여했다는 조니 미첼의 'both side now'의 절묘한 선곡이 버무려진 음악 영화이기 때문이었을까. 

자궁이자 질곡으로의 가족

영화 <코다> 스틸이미지

<코다>가 보여주는 감동은 농인 가족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가족을 통해 보여주는 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농인' 가족이라는 설정에서 연상되는 선입관을 빗겨 간다. 1986년 <작은 신의 아이들>에서 관객들을 매료시켰던 말리 매트린이 엄마로 분한 가족들은 당장 카드가 정지될 정도로 쪼들리고, 루비가 없으면 세상과 소통이 되지 않는 가족이지만 장애에 짓눌려 있지 않다. 

의사의 2주간 성행위 금지에 저렇게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그럴 수 없다며 격노하고, 루비와 함께 찾아온 마일스에게 콘돔을 꼭 낄 것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보여지듯, 가족들은 루비에게 의존도가 높지만 격의 없이 사랑이 넘친다. 영화는 신체적 장애가 따스한 가족을 이루는 데 결코 '장애'가 되지 않음을 루비의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가족도, 루비도 서로에게 엉켜 있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쳐있지만, 그건 동시에 ‘지체’이기도 하다. 영화는 노래라는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루비의 도발을 통해 지체된 가족의 성장도 함께 도모하고자 한다.

늘 루비라는 ‘징검다리’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던 가족. 하지만 루비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일탈하자 가족은 저마다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건 동시에 지금까지 장애라는 울타리 안에 웅크리고 있던 가족들 저마다에게 던져진 '숙제'가 된다.

영화 <코다> 스틸이미지

물론 우선은 쉽게 루비에게 노래라는 꿈 대신 가족의 일원으로 남아주기를 요구한다. 루비 없이 나간 조업에서 벌금까지 물게 된 상황, 당연히 루비는 자신의 꿈을 접고 그런 루비의 선택을 가족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농인 가족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보여주지만,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가족을 역지사지하게 된다. 과연 우리에게 가족은 늘 꿈을 향한 도약대이기만 했을까?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우리의 아이들을 지체시킨 적이 없었을까? 아이들만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가족이라는 편의적 울타리로 도망친 적은 없었을까? 가족은 우리의 울타리이지만, 그 울타리는 동시에 우리의 독립과 자유의 저지선이기도 해왔으니까 말이다. 

음악 앞에서 두려워하던 루비는 말한다. 가족들의 메신저 역할에 답답해했지만, 사실은 루비 역시 가족들 없이는 그 무엇도 해본 적이 없었음을. 루비의 고백은 그대로 가족 공동체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화두'가 아닐까. 

루비의 마지막이 될 공연 날, 비록 들을 수 없지만 가족들은 객석의 한가운데 자리한다. 그리고 루비의 공연을 본다. 처음에 수어로 저녁 메뉴에 관해 나눌 정도로 도무지 공연에 집중할 수 없던 가족, 하지만 아버지는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딸의 노래를 느낀다. 

영화에서 울컥하게 만드는 첫 장면이다. 루비와 마일스의 듀엣 장면에선 음악이 뚝 끊긴다. 그게 바로 농인인 가족들이 보는 세상이다. 마치 물속에서 먹먹하게 전달되는 세상처럼 아버지는 그렇게 루비의 공연을 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딸의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는 비로소 딸이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코다> 스틸이미지

그리고, 가족들은 루비를 세상으로 떠밀어 낸다. 포기했던 버클리 음대 오디션에 함께 간 날, 루비가 가족에게 화답한다. 영화 속 두 번째 감동적인 장면이다. 노래 부르는 딸의 성대를 손으로 더듬어서야 딸의 노래를 느낄 수 있는 아버지를 위해, 가족을 위해 루비는 'both side now'를 수어 버전으로 부른다. 

But something's lost, but something's gained In living every day
I've looked at life from both sides now
From win and lose and still somehow

노래 가사는 그대로 세상과 가족의 징검다리로 살아온, 그리고 이제 둥지이자 질곡이었던 가족을 떠나 세상에 한 걸음 성큼 내디딜 루비의 이야기이다. 가족이기에 버거웠고,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기에 편안했던 루비는 이제 홀로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다. 진한 가족의 포옹을 뒤로 하고. 

세상과의 징검다리였던 루비를 보낸 가족은 어떻게 될까? 어쩌면 <코다>가 진짜 하고픈 이야기는 가족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늘 루비에게 의존했던 가족은 이제 농인이라는 울타리로 넘어 세상을 향해 나간다. 어업조합에 얽매여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에, 장애라는 한계를 넘어 직거래를 위한 어업조합에 나선다. 루비가 있어야만 가능할 것 같던 일. 하지만 루비가 꿈을 향해 나가듯 가족도 성장한다. 영화는 말한다. 한 소녀의 성장이 있기 위해서는 가족이 성장해야 한다고.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디어평론가 이정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안현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수현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 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안현우 02-734-9500 webmaster@mediaus.co.kr

미디어스 후원 계좌 안내 : 하나은행 777-910027-50604 안현우(미디어스)
Copyright © 2011-2021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