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박성호 경질’ 이라는 검색어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장식하고 있다. 어쩌면 MBC 기자회 회장으로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주도한 그 순간부터, <뉴스투데이> 앵커 교체, 인사위원회 회부 등과 같은 수순이 예견돼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안에서라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징계와 같은 험난한 수순을 각오하고서라도, 지금 이 시점에서 기자들이 일어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제작거부까지 결의한 기자들의 집단행동은 신경민 당시 <뉴스데스크> 앵커 교체에 반발하며 제작거부에 들어간 2009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비록 뒤늦은 고백이지만, 기자들의 내부 비판이 반갑다. 적어도 시청자들이 MBC를 외면하고 있는 지금의 엄중한 현실을 기자들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그래서일까, 관련 소식을 전하는 언론 보도에는 “늦었지만 지지한다” “격려한다”는 누리꾼들의 응원의 메시지가 간혹 눈에 띈다.

▲ MBC노조 관계자들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본사 1층 현관에서 김재철 퇴진을 촉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미디어스
하지만 기자들이 발표한 성명서 행간 사이에는 많은 침묵이 숨겨져 있다. 편파, 노골이라는 단어만으로 차마 설명할 수 없는 지난 시간들을 어떻게 성명만으로 표현할 수 있겠냐만, 지난 4년 간 ‘망가진’ MBC 보도의 원인이 진짜 보도 책임자들, 간부들에게만 있는 건지는 찬찬히 되짚어 볼 문제다.

물론, 기자들은 “공영방송의 주인인 국민과 시청자에게 마음 깊이 사죄드린다”며 스스로 반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등 보도 책임자에게만 전가될 수는 없다. MBC 기자들도 잘 알다시피, 김재철 퇴진 투쟁을 접으며 기자들 스스로 내뱉었던 “취재 현장에서 현장 투쟁을 하자”는 다짐은 잊혀진 지 오래되지 않았나.

4.27 재보궐 선거 편파 보도, 장관 인사청문회 의혹 축소 보도, KBS 도청 의혹 보도 통제, PD수첩 대법원 판결 왜곡 보도, 내곡동 사저 편파 보도, 10·26 재보선 불공정 보도, 한미 FTA 반대 집회 누락 및 편파 보도, 미국 법원의 BBK 판결문 특종 홀대,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 논란 보도 외면….

기자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문제의 보도’를 만든 이들은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도 아닌 기자들 본인이다. ‘윗선의 부당한 압력’ 등 경영진의 태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이 이어질 줄로 알지만 시청자는 해당 기사에 실린 기자의 이름만을 기억할 뿐이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이 간단한 상식에 비춰봤을 때, 시청자에게 저변의 모든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은 너무 구차하지 않나.

▲ 2012년 1월9일 서울 여의도 MBC 앞에서 언론·시청자 단체들이 MBC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미디어스
MBC 구성원들의 움직임은 늘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아왔다. ‘공영방송 사수’라는 구성원들의 의지와 공영방송 MBC라는 특수성이 더해지면서 구성원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시민 및 누리꾼들의 무한 ‘지지’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MBC를 향한 여론이 싸늘해졌다. (내부 구성원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더 정확하게 말하면, 김재철 사장 체제 이후 회사 쪽이 보인 일련의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MBC 구성원들을 향한 무한 ‘지지’ 여론도 시들해졌다는 거다. MBC 기자회의 제작거부 움직임과 MBC노조의 김재철 사장 퇴진 움직임에 대해 “왜 이제야?” “그 동안은 뭐했나”라는 반응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이보다 더 격한 반응 하나를 전할까 한다. “지난 4년 내내 낙하산 사장이 내린 역할에 충실했던 이들이 이제 와서 갑자기 사죄하고 반성한다? 현장의 사람들이 얼마나 MBC를 조롱하고 있는지를 지난 4년 내내 몸으로 경험해 왔을텐데 이제 와서 무슨 꼼수나 부리나”

아프게 느껴지겠지만, MBC를 향한 시선이 예전처럼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게 사실이다. 이런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일어선 구성원들이 행동에 앞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길 바란다. 그 행동의 중심에 진짜 ‘시청자’가 있는 건지도 함께 되돌아 보길 덧붙인다. MBC노조는 MBC를 ‘한국 사회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빗대 표현하며 종결 투쟁을 언급했다. ‘좌시하지 않겠다’ ‘본격적인 투쟁에 나서겠다’며 그간 성명을 통해 밝혔던 말들이 그저 허투루 내뱉는 말로 그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제작거부를 결의한 기자들에게 제언한다. 먼저, 윗선의 지시에 의한 미디어렙 관련 보도를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 누가 보더라도 진짜 미디어렙 법안의 문제를 지적하는 게 MBC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MBC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소한 팩트 조차도 자사의 이익에 맞게 가공하고 왜곡하는 보도에 대해 기자들 스스로가 당차게 거부하고 나서길 응원한다.

이 글을 마무리 하려는 순간, MBC가 ‘미디어렙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기자들을 총 동원해 국회의원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부디, 만만치 않은 파고를 만난 MBC 기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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