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22살, 23살 무렵의 여성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나이 든 이들에게 아름다워 보이는 젊음이, 때로는 젊은 당사자들에겐 불투명하기 그지없는 현실의 무게로 다가올지 모른다. 우리나라 청년들 역시 젊음의 싱그러움보다는 그들에게 닥칠 미래의 무게가 더 크다 하지 않을까. 게다가 젊은 그들이 태어난 곳에 따라 그들의 삶은 다른 '선택'을 낳는다.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의 글로벌 경쟁작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정치사회적 격변을 겪고 있는 칠레, 우간다, 홍콩의 세 젊은이를 주목한다.

산티아고의 미래를 지키고 싶습니다- 레이엔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미래의 아이들에게(Dear Future Children)>

레이엔은 칠레 산티아고에 사는 23살 여성이다. 칠레는 남아메리카 국가 중에서는 그래도 경제사회적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레이엔은 자신의 아이를 이곳에서 키우는 건 상상이 안 된다. 오늘도 방독면을 쓰고 거리로 나서는 레이엔에게 '미래'를 상상하는 건 힘들다.

왜 레이엔은 거리로 나설까? 칠레는 피노체트 대통령 때 만들어진 헌법에 기반하여 공공재들이 모두 민영화되었다. 교육, 의료 서비스는 물론 물조차 민영화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나마 잘사는 나라라는데 사회적 불평등이 극심하다. 2019년 지하철 요금 인상을 계기로 사람들이 프라이팬과 나무 숟가락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모든 요금을 더는 내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리로 나선 칠레 시민들에게 정부는 폭압적인 진압으로 맞섰다. 최루탄은 물론 유독성 물대포를 쏘아댔다. 얼굴에 직접 고무탄을 쏘아대는 바람에 눈을 잃은 사람들이 수백 명이다. 레이엔의 아버지 역시 허벅지에 고무탄이 박혔다. 시위에 참가한 평범한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아벨 아쿠냐, 22번째 피해자이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입니다- 페퍼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미래의 아이들에게(Dear Future Children)>

거리로 나선 젊은이는 칠레만이 아니다. 페퍼는 22살 홍콩의 젊은이다.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 검은 옷을 입은 그녀는 홍콩 시위 현장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젊은이다. 영국에서 공부했던 그녀는 2019년 6월 처음으로 시위에 참가했다.

1997년 홍콩이 반환되었다. 한 국가 두 체제가 허용된다는 전제하에서였다. 오랫 동안 영국에 '조차(租借 특별한 합의에 따라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영토의 일부를 빌려 일정한 기간 통치하는 일)'되어 왔던 홍콩은 민주주의적 체제였다. 언론, 출판의 자유가 허용되었었다. 하지만 반환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홍콩인으로 살아왔던 젊은이들에게 중국식 사회주의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한 국가 두 체제는 말뿐이었다. 당연히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섰다. 거기에 홍콩 인권운동가들을 본토로 송환할 수 있는 '송환법'이 통과되면서 시위는 더욱 격화되었다.

페퍼는 두렵다. 체포가 두렵다.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경찰이 무엇보다 무섭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아직 페퍼가 시위에 참여하는 걸 모르는 친구, 가족들에게 '비밀'로 해야 하는 처지가 힘들다. 이러한 이중생활 자체가 그녀를 늘 피곤하게 한다.

페퍼 또래 시위 참가자들은 신세대답게 구글 캘린더, 지도 등을 이용하여 경찰의 폭력적 시위 진압에 상대하지만, '지는 싸움'은 힘들다. 한바탕 시위가 휩쓸고 지나가면 체포되지 않았음에 안도하지만, 한편에서 왜 난 체포되지 않았을까, 동료가 체포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시위 현장에서는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지만 집에 가서 뉴스를 보면 눈물이 흐른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생활, 사랑하는 이와도 헤어져야 하는 상황, 그럼에도 쟁취되는 건 없는 현실이 페퍼와 같은 젊은이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기후 위기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힐다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미래의 아이들에게(Dear Future Children)>

정치사회적 문제로 고통받는 칠레, 홍콩과 또 다른 '전쟁'을 벌이는 곳도 있다. 바로 아프리카의 우간다이다. 우간다 대학생으로 코펜하겐 기후회의에 참여한 여대생 힐다에게 왜 하필 기후변화운동에 뛰어들었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22살 힐다는 말한다. 동생들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겪지 않기를 바라서라고. 우간다 젠키라 마을 와키소 구역에 힐다네 농장이 있었다. 어릴 적 엄마가 외출할 때마다 뭘 사다 달라 해서 사탕이란 별명을 얻었던 밝은 아이. 하지만 그 아이의 가정은 '기후 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 풍파를 겪게 된다.

소, 염소 등을 키우는 큰 농장을 일구던 힐다네 가족은 비가 오지 않거나, 아니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모든 걸 휩쓸어 버린다거나 하는 기후격변에 버틸 수가 없었다. 해마다 더 나빠지는 상황에 결국 힐다네는 농장을 팔 수밖에 없었다. 농장을 판 돈으로 생활비를 감당했지만 돈이 없어 학교를 4개월 정도 쉬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온 힐다는 기후위기에 맞선 '미래를 위한 금요일'에 참가한다.

한때는 '아프리카의 진주'라 불렸던 우간다이다. 하지만 이제 그 아름다웠던 우간다의 강은 플라스틱 강이 되었다. 젊은 힐다가 또래 젊은이들을 독려하여 강의 쓰레기를 치우는 캠페인에 나섰지만, 그런 그들 앞에서 플라스틱을 버릴 정도로 우간다 내 환경 운동에 대한 인식은 미흡하다. 심지어 교수님마저 '신의 계획'을 들먹이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단정 짓는다.

2021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미래의 아이들에게(Dear Future Children)>

다큐멘터리 영화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칠레, 홍콩, 우간다 세 국가의 젊은이들을 통해 21세기의 세계를 조명한다. 21세기 우리 세계는 불평등과 반민주적인 폭압적 체제, 그리고 기후 위기 속에 놓여있다. 그리고 21세기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기꺼이 나선다. 우간다의 힐다는 눈물을 삼키며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가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칠레의 레이엔 또래 젊은이는 목숨을 잃거나 눈을 잃었다. 그럼에도 지난 50여 년간 지속된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막아보고자 오늘도 레이엔은 거리로 나선다. 사람들의 헌신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다리에 고무탄이 박혀 수술을 기다리는 아버지 세대에 대해 빚을 갚는 레이엔 세대의 방식이다.

반면, 페퍼는 '난민'이 되었다. 페퍼의 가장 친한 친구 블랙 워터는 체포되어 여전히 구금 상태이다. 또 다른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고향 홍콩이었지만, 페퍼와 같은 젊은이들의 투쟁은 동력을 잃어간다. 체포되거나 탈출했다. 페퍼 역시 스스로 난민으로 여기며 세계 어딘가로 떠났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여전히 ‘투쟁’을 선택하는 21세기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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