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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미디어법과 2021년 언론중재법[기고]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 | 승인 2021.08.27 14:32

[미디어스=김동원 칼럼] “법 규범의 경우에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지시는 언제나 여러 주체들과 연관되는 하나의 ‘재판’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선고 속에서, 즉 제도적 권력들이 보장하는 현실에 대한 조작적 명령 속에서 정점에 달한다.” - 조르조 아감벤, <예외상태>

2009년, 한나라당은 방송법, 신문법 등 종편 사업자 허가 근거를 만들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했다. 이후 네 곳에 달하는 종합편성채널사업자(종편)를 등장시킨 법적 근거였다. 그러나 종편은 당시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하여 새롭게 법에 포함시킨 용어가 아니었다. 방송법 제8조 안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라는 문구는 2009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2000년 방송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했던 사업자 구분이었다.

문제는 “종합편성”이라는 개념이 지상파 방송사와 같이 보도, 오락, 교양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편성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당시 전문채널만 존재하던 유료방송채널에 종편이 포함되면서 방송사업자 구분에도 적용됐다는 점에 있다. 즉, 전송수단(지상파, 케이블, 위성 등)에 따른 방송사업자의 구분에 편성에 따른 방송사업자의 구분이 중첩됐다. 지상파 방송사와 이후 출범한 종편채널 사이에 비대칭 규제가 발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편 출범 이후 ‘특혜’라고 지적된 것도 엄밀히 말해 특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규제 조항이었다. MB정부와 방통위가 낮은 채널 대역 부여 및 방송통신발전기금 유예 등 특혜를 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상파에 비해 느슨한 편성 규제, 광고 직접 영업, 유료방송 의무송출 등은 본래부터 있었던 조항이었다. 여기에 신문사 소유만 허용하면 종편 출범은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방송법 제정 후 2009년까지 유료방송채널로 종편을 신청한 사업자는 한 곳도 없었다.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 전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용어였던 셈이다. 모든 법률이 그렇지만 법적 정의나 용어가 제·개정 당시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법령에는 적혀 있지 않다. 특히 방송법은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으로 한 용어가 현실의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지 모호해지는 텅 빈 기표(signified)들의 집합이다. 종편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 방송법 제정 당시 종편은 유료방송채널 중에서 영국의 채널4(Ch.4)와 같이 독립제작사 콘텐츠의 자유로운 편성을 염두에 둔 용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의도가 무엇이었든 문자로만 존재했던 종편은 2009년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받아 새로운 방송사업자를 지칭하는 기호가 되었다. 이미 존재해 온, 또는 개정되어 새롭게 포함되는 법 조항과 용어가 현실의 어떤 대상을 가리킬 것인가를 정하는 힘이 바로 ‘권력’이다. 서두에 인용한 아감벤의 지적처럼 “제도적 권력들이 보장하는 현실에 대한 조작적 명령”이 바로 종편을 탄생시킨 셈이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의당·언론현업4단체 '언론중재법 개정 규탄'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새롭게 만든 조항과 용어라는 기표들이 언론보도에 의한 시민 피해를 구제할 수 있을지, 지금도 억대 소송을 제기하는 정치·경제 권력에게 더 큰 힘을 부여할지는 그 경계를 확신할 수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대가를 치를 ‘언론’이 어떤 언론사들인지, 언론보도에 의한 ‘피해’가 정확히 무엇인지, ‘허위조작정보’가 어떤 기사를 가리키는지는 입법자, 언론사, 시민 모두가 서로 다른 현실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1년 8월, 법을 개정하면서 각자가 상상하는 현실은 시간이 지나며 전혀 다른 맥락에서 개정안의 기표에 의미를 부여할 미래로 바뀔 것이다. 2000년 방송법 제정 당시 상상했던 ‘종편’이 가리켰던 현실이 2009년 한나라당과 방통위라는 “제도적 권력들”에 의해 전혀 다른 맥락과 지위를 부여받았듯 말이다.

언론중재법의 개정 여부와 무관하게 법안에 명시된 그 모든 기표들이 어떤 현실을 가리킬 것인지 지정하는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돌아볼 때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냉혹한 배상금 명세서를 떠올리는 권력이 아니라 시민이 생각하는 현실을 법안의 기표에 적용할 ‘우리의 권력’을 상상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19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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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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