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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오 ‘더 체어’, 독이 든 성배 '학과장'을 거머쥔 여성[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8.24 19:36

[미디어스=이정희] <그레이 아나토미>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주인공 그레이(엘렌 폼페오 분)가 아직 전문의가 되기 전, 과로에 시달리던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벌이던 고군분투가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레이보다 그녀의 동료 크리스티나 양으로 분한 산드라 오에게 시선이 갔다. 그녀가 한국계 여배우라서가 아니었다.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에 자기중심적인 캐릭터인데, 그녀의 표정이 드러내는 감정이 고스란히 공감되었다.

아마도 산드라 오가 보여주는 감정의 파고에 공감한 건 나만이 아니었던 듯싶다. 그녀는 여전한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아시아계로는 드물게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연급이 되었고, 골든 글로브 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 그런 산드라 오가 이번에는 미국 한 작은 대학 펨브로크에서 무려 영문학과 학과장이 되었다. 8월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더 체어> 시즌 1이다. 

아시아 여자가 에밀리 디킨슨을 가르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체어〉

만약 우리나라 대학교에서 일본인이 국문과 교수, 그것도 학과장이 된다면 어떨까? 미국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지 않냐고? 스위스와 독일에서 오래도록 공부하며 박사 학위까지 딴 루시드 폴이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힘들었다고 하듯이, 여전히 서구 사회에서 '인종'의 벽은 드높다. <더 체어>의 주인공 김지윤은 한국계로 '허들'을 넘듯 그 벽을 넘어, 드디어 한 대학 영문과 학과장이 되었다. 부임 첫날 의기양양하게 학과장 자리에 앉은 지윤. 그런데 그만 '의자(체어)'가 넘어가 버린다. 영문과 학과장으로서 그녀의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하듯이.

마흔 중반, 입양한 라틴계 딸 주주(에벌린 카가리나 분)와 함께 사는 지윤의 집 냉장고에는 온통 즉석식품뿐이다. 오죽하면 지윤의 집에 온 빌 돕슨(제이 듀플라스 분) 교수가 주주에게 계란 요리를 만들어주려는데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꺼릴 정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체어〉

한국계 이민자 가족이 그렇듯 지윤의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지윤에게 오로지 사회적 성취만을 요구했다. “요리? 그런 거 할 필요 없어. 너는 들어가서 공부나 해.” 그런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지윤은 공부를 했다. 잘했다. 하지만 아시아계 이민자로서 영문학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사생활을 포기한 채 달린 그녀는 좋은 조건의 자리들 중에 '종신'이라는 이유로 펨브로크 대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동료 교수들의 지지를 얻어 학과장까지 되었다. 

하지만 첫 화의 제목이 '대단한 실수'인 것처럼, 학과장으로서 지윤의 길은 온통 지뢰밭이다. 우리나라 대학도 마찬가지이지만 '영문과' 자체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더이상 메리트가 없다. 그런데도 학과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는 노장 교수들은 30년 전 자신들이 한창이던 시절의 강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당연히 하루가 다르게 수강생은 줄어 학과 자체가 위기 상황이다. 학장은 새로 학과장이 된 지윤에게 퇴물이 된 교수들을 '정리'할 것을 요청한다. 어렵사리 도달한 출세의 정점인 줄 알았는데, 그녀의 손에 쥐어진 건 망나니 칼이었다. 

우리 과가 털리도록 좌시하지 않을 거예요

6부작 시리즈 <더 체어>는 아시아계 이민자로서 학과장이 된 김지윤을 중심으로 미국 사회, 특히 대학 사회의 현실적 에피소드를 다룬다. 

성취지향적인 아시아계 이민자 김지윤은 어렵사리 한 대학의 영문과 학과장에 오르지만 그녀가 맡은 학과는 더이상 영문학의 메카가 아니다. 21세기의 영문학과는 변화가 요구되지만, 종신이라는 직위에 더는 연구로 거듭나지 않은 교수들은 과의 '적체자'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종신 교수'로서 과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체어〉

반면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수는 또 다른 면에서 지윤에게 위기를 불러온다. 지윤과 한때 연인 사이였으며, 아내와 사별한 후 지윤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빌 돕슨 교수. 자유분방한 그의 강의는 외려 그를 '히틀러 지지자'로 몰고 간다.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네오나치즘이, 그 누구보다 사상의 자유를 중시하는 빌 돕슨을 해고시킬 족쇄가 된다. 그런데 그 해고의 절차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 다름 아닌 지윤이다. 

사랑에 앞서, 빌이라는 학자의 진정성을 믿기에 그를 어떻게든 구제해 보려는 지윤. 하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자기 연민에 빠져 강의마저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던 그의 불성실한 생활이 복병이다. 빌을 구하려던 지윤의 태도는 이젠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에게, 아시아계 이민자로 학장이 되어서는 다른 아시아계의 입막음을 한 '반동'적인 인물로 대학신문 1면을 장식하기에 이른다. 

사회적 직위의 성취로서 자기 삶의 성공을 일구려 한 여성, 하지만 막상 그녀가 성공이라 생각한 '체어'의 실상은 외려 그녀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홀로 살던 그녀는 어렵사리 그녀와 또 다른 미국 내 소수 인종인 라틴계 아이 주주를 입양했다. 하지만 요리 한번 하지 않고 바쁘기만 한 '엄마' 지윤에게 주주는 도무지 맘을 열지 않는다. 성공한 이민자, 그리고 성공한 여성으로서 또 다른 소수인종과 여성들의 지위 향상이란 포부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녀가 해야 할 일은 학장의 하수인으로, 구태의연한 행정적 절차의 심부름꾼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체어〉

지윤은 잘해보려 할수록 혼란스럽다. 그런 그녀에게 당돌한 딸 주주가 묻는다. 

'엄마는 왜 닥터(여기서 닥터는 영문학과 박사를 뜻한다)가 됐어?'
"엄마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좋았어.'

하지만 이제는 학생들조차 그녀의 강의실에서 그녀를 외면하려 든다. 

늘 그렇듯 미국 드라마들은 '위기' 상황을 통해 본질을 짚는다. 지윤은 딸 주주가 물었던 그 질문의 근원에서부터 문제를 풀어간다. 학과장이 되어 영문학과를 '털리지' 않도록 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던 지윤은 바로 그 '체어'를 내던진다. 자신이 가장 하고픈 것,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우리 현실에서 함께 고민해볼 지점이 많은 드라마다. 우리의 어머니들 도 자신의 딸들에게 집안일 하지 말고 공부해라, 성공하라고 주문해왔다. 그런 어머니의 바람을 안은 딸들 역시 또 다른 지윤의 모습으로 지윤과 같은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더 산드라 오가 분한 지윤에 마음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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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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