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TV에서, 특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스타들이 갑자기 요 몇 주 사이에 자주 얼굴을 내보인다면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새롭게 개봉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했거나, 오랜 준비 끝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한 것이죠. 이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이를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홍보 활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능 나들이는 자사 프로그램일 경우 더더욱 빈번하고 노골적으로 홍보에 나서기 마련이죠. 말만 예능일 뿐, 결국은 60분짜리 프로그램 광고와 별 다를 바가 없어요.

MBC의 놀러와, KBS의 해피투게더는 이런 대표적인 홍보 대행 토크쇼입니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이런 홍보용 게스트가 메인으로 유재석 옆자리에 앉아있기 마련이고, 매번 토크의 초반은 이들이 출연한 작품이나 노래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그것도 이미 다른 방송에서 이미 말한 것들을 반복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개편 때마다, 혹은 담당 PD의 교체에 따라 여러 새로운 꼭지들, 약간의 변화들이 가미되고는 하지만, 이 역시도 결국은 그런 어색함을 털어버릴 수 있게 해주는 고육책들이죠.

이런 홍보 대행으로서의 역할은 근래 들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공통점을 주제로 게스트의 콘셉트를 잡아주던 놀러와는 근 한 달을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의 사람들을 모시고 프로그램 홍보에 열을 올렸습니다. 영화와 드라마의 가장 주요한 홍보 무대였던 해피투게더는 이젠 G4라는 이름으로 개그콘서트의 인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영원할 것만 같던 놀러와의 월요일 재패는 안녕하세요와 힐링 캠프의 거센 도전에 힘겨워 하고 있습니다. 해피투게더는 기대 이하의 주병진 토크콘서트의 부진에 힘입어 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G4의 등장과 함께 생긴 번잡스러움으로 정작 초대 손님에 집중하는 토크쇼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구요. 개콘인지 해피투게더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거죠.

이들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부진은 유재석의 책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지나치게 남용한 부작용이 이제야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어떤 이가 초대되더라도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며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1대1의 다소 부담스러운 집중 토크가 아니라, 많은 출연자들을 에피소드 위주의 대화를 유도하고, 그런 흐름을 자연스럽게 통제하면서도 각자의 분량을 편중되지 않게 조절하는 그의 역량은 예능 출연에 힘들어 하는 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줍니다. 즉 홍보를 위한 최적의 장소를 제공해준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입니다. 평일 예능의 전반적인 침체란 결국 유재석이 주도했던 이 두 프로그램에게 느끼는 시청자들의 피로도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홍보를 위한 토크쇼에 지겨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죠. 비슷한 홍보의 장인 강심장 역시도 힘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그런 광고의 압박에서 벗어나 누가 출연하든 독특한 색깔의 독한 토크를 버무리는 라디오스타나, 담백한 1인 토크쇼의 틀을 완성시키고 있는 승승장구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에요.

즉 유재석의 편안함을 홍보에만 활용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장수 토크쇼인 놀러와와 해피투게더의 생명력을 더 이상 유지시키기 어렵다는 것이죠. 분명 대대적인 수정과 절제, 방향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란 겁니다. 놀러와의 반지하, 해피투게더의 목욕탕이란 공간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알리기에 급급한 예능 초보들이 잠깐 들리는 곳이 아니라, 정말 편안한 장소에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가끔은 망가지는 신나는 속풀이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재석의 재능은 좀 더 존중받으며 적극적인 방향으로 쓰일 필요가 있어요. 누구나 인정하는 국민 MC가 하는 일이 결국은 홍보장의 사회보기라니, 이런 재능의 소진은 너무 안타깝지 않나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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