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태희가 돌아왔다. 로맨틱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언젠가부터 여주인공들의 주저 없는 망가짐이 트렌드가 됐다. 최근 몇 년 새 그 트렌드를 화끈하게 열어젖힌 것은 부자의 탄생 부태희 역의 이시영이었다. 그 이시영이 난폭한 로맨스로 돌아왔다. 헌데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여인의 향기 이동욱이랑 함께 왔다. 이시영이야 워낙 부태희의 명성이 있었다지만, 이동욱의 코믹연기는 전작인 여인의 향기에서의 이동욱이 아니었다.

이동욱은 잘나가는 프로야구 선수이다. 소속팀의 한국시리즈를 견인한 수훈선수로 돈과 명예를 다 갖고 있다. 유일하게 없는 것이 싸가지다. 반면 이시영은 집안 전체가 이동욱의 팀 라이벌 팀의 광팬이다. 이들은 우연히 노래방에서 만나게 되는데, 만나자마자 이시영은 이동욱을 엎어치기 한판으로 바닥에 매치는데 그 장면이 동영상으로 찍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양쪽 모두가 곤란해졌다. 이동욱 측에서는 프로야구선수가 여성과 싸웠다는 불명예스러운 상황에 몰리게 됐고, 이시영 측은 경호원이 일반인(?)을 폭행했다는 영업망칠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양측은 이시영이 이동욱의 경호원으로 호신술 시범을 보인 것으로 무마하기로 합의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애매한 적과의 동침이 시작된다. 헌데 두 사람 모두 과격, 단순, 즉흥적인 성격이라 말마다 빈정거리고, 행동마다 투탁거릴 뿐이다.

1회와 2회는 이 두 사람의 포복절도할 그러나 유치하기 그지없는 싸움이 전부였다. 이 싸움의 절정은 이동욱 안티까페에서 댓글로 싸우던 것이었다. 결국 이동욱이 악플을 다는 상대가 이시영임을 알게 되면서 이 유치한 싸움은 끝나고 마는데, 그것만이 아니라 두 사람은 보디가드와 의뢰인의 사이로 볼 수 없는 지독히도 앙숙관계일 뿐이다. 싸우다 정드는 게 보통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이라지만 아직 로맨스는 멀고 코미디만 가까울 뿐이다.

그렇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로맨스가 이들에게 희미하지만 조금씩 다가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물론 이 난폭한 코미디로 엮인 두 사람이 로맨스로 다가서는 일이 결코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 첫 번째 단서는 말도 안 되는 승부욕으로 생긴 내기에서 생겼다. 이동욱이 공을 던지고 이시영이 타석에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내기로 건 벌칙도 웃음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둘 모두 내기에 지면 여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여자에게 여장을 하는 것이 벌칙이 되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상황을 잘 만들었던 것은 두 사람의 진정을 다한 코믹 연기의 약발이 제대로 먹히고 있음을 말해준다. 어쨌든 내기에서 진 이시영은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야구팀 송년회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 장면이 두 사람의 관계가 로맨스로 향할 것이라는 강력한 복선이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가기에는 아직 남은 시간이 너무 많다. 아직 두 사람의 좌충우돌 코믹 전쟁은 절정에 이르지 못했다.

이들의 로맨스를 앞당기면서도 동시에 눈치 채지 못하게 할 중요한 사건 두 개가 등장하게 된다. 하나는 이동욱의 노래방 폭행사건을 무마하기 위해서 설정을 만들었던 정체불명의 살해위협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점이다. 진짜로 이동욱에게 경호원이 필요한 상황이 됐고, 다른 하나는 송년회 자리에서 이동욱과 뭔가 심각해 보이는 여자 황선희가 바로 이동욱의 절친 오만석의 부인인 사실을 알고 불륜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의문점이 싸우기만 했던 두 사람에게 또 다른 긴장감을 주게 되겠지만 아직도 로맨스는 좀 멀고 코미디는 아주 친근하다.

역시 이시영이었다. 이동욱도 결코 만만치 않은 코믹연기를 선보이고 있지만 도대체 몸을 사리지 않는 이시영의 투혼을 다 바친 코믹연기는 당할 사람이 없어 보인다. 창고 창틀에 끼인 채 바동거리는 것이나, 졸면서 야구 연습장 네트에 얼굴을 긁힐 정도로 열연하는 모습은 이시영이 로맨틱 코미디에 특화된 배우임을 증명하고도 남는 장면들이다. 비록 수목드라마 전쟁에서 꼴찌로 시작했지만 이동욱, 이시영의 파란만장 연애의 뒷심이 발휘되면 결과는 아직 모를 일이다. 또한 드라마 성패와 무관하게 돌아온 부태희 이시영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게 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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