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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작가 '여름 협주곡'- 그림책이라는 '무대', 이토록 풍성한 이야기라니[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8.22 10:43

[미디어스=이정희]

물,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꽃, 꽃이 되는 꿈
씨가 되는 꿈, 풀이 되는 꿈
강, 강이 되는 꿈
빛이 되는 꿈, 소금이 되는 꿈
바다, 바다가 되는 꿈
파도가 되는 꿈, 물이 되는 꿈

루시드 폴이 만든 노래 <물이 되는 꿈>이 그림책이 된다면? 8월 4일부터 알부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이수지 작가의 전시회 '여름 협주곡'에서 만날 수 있다. 물론 루시드 폴과 이수지 작가의 만남 <물이 되는 꿈>은 지난 2020년 책으로 출간된 바 있다. 하지만 인쇄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수지 작가가 애초 그렸던 날것 그대로의 원화를 '여름 협주곡' 전시회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이수지의 개인전 《여름 협주곡 Summer Concerto》 (이미지 출처=알부스 갤러리 홈페이지)

그림책의 ‘원화’를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늦여름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날 한남 초등학교 언덕길을 올라 만난, 그 이름처럼 하얀 '알부스 갤러리'('ALBUS'는 라틴어 '희다'라는 의미이다). 갤러리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여름날 맑은 바다 같은 루시드 폴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곳에 <물이 되는 꿈>의 원화가 그림책과 함께 걸려있다. 

제주에 사는 루시드 폴은 '물'을 떠올릴 때마다 느꼈던 감정들을 멜로디와 노랫말에 실어 <물이 되는 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곡에 맞춰 그림을 그린 이수지 작가는 '물속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이들은 누구일까?'를 떠올리고 '수중 재활센터'에서 만난 한 아이를 그림책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휠체어를 탔던 아이는 보조장비를 차고 물가에 앉는다. 물속에 들어가 신체의 자유를 얻은 아이는 거기서 더 나아가 물 자체가 된다. 물과 함께 흘러 강으로 바다로, 루시드 폴의 가사 그대로 물이 되고 바다가 된다. 

작가의 원화는 수채화 작업답게 붓터치와 색의 농담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특히 같은 물색이지만, 원화가 보여주는 ‘호수 빛’ 물색과 그림책에 담긴 ‘바닷빛’ 물색은 원화 전시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색감의 향연이다. 

또한 <물이 되는 꿈>과 함께 이수지 작가를 세계적인 작가로 확고하게 만든 <파도야 놀자> 원화가 나란히 전시되어 지하 갤러리 전체를 '물색'으로 물들인다.

<그림자놀이>, <거울속으로>와 함께 이수지 작가의 ‘경계’ 3부작 <파도야 놀자> 역시 바닷가에 놀러 간 소녀의 이야기이다. 엄마와 함께 바닷가에 놀러 간 소녀, 소녀가 마주한 파도는 온전히 소녀의 '놀이' 친구가 된다. 들락날락하는 파도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파도에 흠씬 젖어버리고, 그래서 바다와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 소녀의 모습은 <물이 되는 꿈>과 함께 '물아일체'라는 혼연의 감성을 고스란히 일깨워준다. 

이수지의 개인전 《여름 협주곡 Summer Concerto》 (이미지 출처=알부스 갤러리 홈페이지)

그림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걸러지지 않은 원화가 주는 감성에, 갤러리라는 장소가 주는 집중력이 더해져 이수지 작가가 그림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만든다. 

2002년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이래 2003년 스위스의 가장 아름다운책 상, 2008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 미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올해의 원화전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 각국에서 인정을 받은 이수지 작가의 '창작'의 시원은 어디일까? 

갤러리 1층에서 이수지 작가의 첫 그림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우리는 ‘이수지 월드’에 입문하게 된다. 영국에 유학한 작가의 하숙집 거실에 있던 빅토리아풍의 벽난로를 모티브로 하여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 구조를 도입시킨 그림책은 그 자체로 중층의 무대로서 보는 이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수지 작가의 어린 시절로 연상되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루이스 캐럴의 원작처럼 토끼를 쫓다 그 관계가 역전되고, 루이스 캐럴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 대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코의 <채찍질 당하는 예수 그리스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르네 마그리트의 <개인적 가치> 등 그 자체가 '퍼즐'이 되는 작품 속으로 빨려들며 그림이 더해진 이야기책이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파격적으로 펼쳐 보인다. 

이수지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서 능수능란하게 펼쳐 보이는 무대는 신작 그림책 <여름이 온다>를 통해 한껏 만개한다. 전시회 2층 전체에 울려 퍼지는 비발디의 '여름'을 모티브로 한 그림책은 음악을 매개로 한 작품답게 연주회의 무대에서 시작된다. 

책 '여름이 온다' (사진 = 비룡소)

하지만 무대는 ‘연주회’라는 공간을 넘어 '여름'이라는 시간적 장소로 이동한다. 여름의 정원 아이들이 햇살 아래서 뛰놀고, 아이들은 이수지 작가가 애용하는 ‘물’을 이용하여 놀이 삼매경에 빠져든다. 

이수지 작가 특유의 물빛이 낭자한 가운데 콜라주, 물감 뿌리기 그리고 실을 활용한 다양한 기법이 여름이라는 공간 안에서 한껏 뛰노는 아이들의 역동성을 제대로 드러낸다. 또한 비발디의 여름이라는 ‘음악’이 매개임을 드러내는 악보라는 공간 속에 '여름 놀이'가 한창인 아이들이 음표처럼 펼쳐지며 음률을 시각화시키는 지점에 이르면 저절로 작가의 상상력에 탄성이 올라온다. 

음악이 연주되는 무대와 여름이란 계절의 무대가 교차되며 비발디의 '여름'이 펼쳐내는 클라이막스는 여름의 소나기로 맞물리고, 연주가들과 들판에서 놀던 아이들이 잇달아 무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림책은 마무리된다. 

전시된 대부분의 그림책은 '그림'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그림들 속에 그 어떤 글책보다 풍성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대를 통해 펼쳐진 이수지 작가의 세계는 그림책이라는 장르를 예술적인 경지로 한 발 더 들이민다. 묘하게도 전시회를 보고 나면 내 방의 서가에 이수지 그림책을 소장하고픈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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