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최근 일부 언론들의 일자리 정책에 대한 보도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민간 일자리는 세금을 내는 ‘좋은 일자리’지만, 공공일자리는 세금을 먹는 ‘나쁜 일자리’라는 프레임입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공공일자리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건가요?

이런 보도는 기업을 옥죄는 규제와 친노동정책 때문에 민간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회피한다는 얘기로 이어집니다. 기업의 투자와 채용을 늘리려면 유연한 인력 운영이 가능하도록 노동시장을 개편해야 하는데, 강성 노조에 밀려 민간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는 주장과 최재형 후보의 ‘노동 공약’은 이런 언론의 보도와 동일합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대기업은 ‘반기업 규제’와 ‘친노동정책’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겁니다. ‘기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리고 영업이익에 비례해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겨야 합니다.

조선일보 20일자 기사 '영업이익 220% 늘때, 고용은 1%도 안 늘어'

오늘 조선일보는 <영업이익 220% 늘때, 고용은 1%도 안늘어> 기사에서 "국내 매출 상위 30대 기업의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 상반기 이들 기업의 총매출액은 381조 974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늘고 영업이익은 220% 증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매출이 19% 늘었는데, 영업이익은 무려 220% 성장한 겁니다. 상반기 이들 기업의 근로자는 1년 새 0.96%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조선일보는 그 이유를 ‘고용 경직성’과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대체근로’를 꺼냈습니다. 조선일보는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의 인터뷰를 인용해 “한국은 사실상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노조가 파업을 할 때 기업이 대체 근로자를 투입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 규제가 심한 국가”라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캐나다는 연방 노동법에서 파업시 노조 대표성을 와해할 목적으로 근로자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대체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프랑스는 기간제와 파견근로자에 의한 대체근로를 금지하고 있으며 이탈리아는 기간제와 파견근로자의 대체근로를 금지하면서, 외부인력에 의한 일시적·영구적 대체근로를 반조합적 차별행위로 규정해 형사처벌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성문법으로 파견근로자로 대체근로를 금지하며 판례를 통해 민간사용자는 파업이 실시되고 있는 일자리에 근무 지시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스페인도 국왕법규명령으로 외부대체를 금지하고 있으며 그리스, 오스트리아, 체코 등도 대체근로 금지 규정이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보도는 ‘가짜뉴스’인 셈입니다.

조선일보는 우리가 노동규제가 심해 ‘노동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뒤늦은 지난해 ILO 3개 기본협약을 비준한 노동권 후진국입니다. 올해 7월 온라인으로 개최된 제109차 ILO총회에서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취약계층을 위한 결의문’이 채택됐는데 코로나19를 빌미로 기본 노동권에 대한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습니다. 적정 최저임금, 노동시간 상한선 등과 관련된 국제노동기준의 비준・이행・감독 노력을 배가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세계적으로 ’노동권’ 강화가 ‘포스트 코로나’의 핵심 의제입니다.

조선일보 20일자 기사 '평균연봉 1억 받는 기업 3곳 중 2곳 고용 줄었다'

또 조선일보는 “일단 입사하면 일을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정년까지 보장해야 하는데 어떻게 신규 인력을 뽑겠느냐”고 하지만 이것도 실제 우리 고용 현실과는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지난 7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5월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평균 근속 기간은 15.2년으로 짧아지고, 49세에 주된 일자리를 그만 두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을 그만둔 사유는 권고사직, 명예퇴직, 정리해고 등 실직 비중이 44.2%에 달했습니다. 정년 퇴직 비율은 7.5%에 불과했습니다. ‘평생 직장’은 옛말인 것이죠.

조선일보는 ‘반기업 규제’와 ‘친노동 정책’으로 민간의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다른 보도에서는 상반되는 내용을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의 고용은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인터넷・게임 대기업과 벤처・스타트업 계통에서는 비교적 큰 폭으로 고용이 늘었다는 겁니다. 네이버는 상반기 490명, 다음은 305명, 카카오뱅크는 225명, 엔씨소프트는 481명, 크래프톤은 2배로 직원이 늘었는데 이들 다섯 기업의 고용 인원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8%가 늘었습니다. 그럼 이들 기업에 적용되는 법, 제도는 다른걸까요?

한국 제조업의 경우 250인 이상 기업의 일자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치(40%)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독일, 스웨덴과 같은 제조 강국은 그 비중이 50%에 이른다고 합니다. 민간 일자리가 일자리의 해답이라고 말하지만, 한국 민간의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은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그리고 대기업의 경우 R&B 투자 비중이 높고 자동화에 따라 노동생산성과 고용은 더이상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정책을 통해 고용 시장에 개입해야 합니다. 공공 일자리를 무조건 ‘세금 먹는 나쁜 일자리’로 몰아세우는 보도는 공공일자리에 의존해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비하하는 보도입니다.

우리 언론은 ‘노동’ 이슈에 대해서 선택적 통계를 통해 ‘현실’을 왜곡하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특정 목적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것으로 저널리즘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언론의 왜곡 보도는 ‘대기업 자본’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왜곡하는 보도는 문제해결을 막고 ‘자본의 이익’조차 훼손할 뿐 아니라 국가 경제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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