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서울이 역대 최고기온을 갱신했다는 몇 년 전 여름. 정오의 거리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찾기는 어려웠다. 다만 그림자에서 사람을 발견할 수는 있었다. 뽀글머리에 몸빼바지, 늘어난 러닝셔츠를 똑같이 차려입은 할머니 서너 분이 대화 한마디 없이 한 뼘이나 될까 싶은 담벼락 그늘 밑에서 대화 없이 부채질하고 있었다. 할머니 사이를 가득 채운 적막함 속에는 부채질과 아지랑이 피어나는 소리만 남았다. 다가올 가을의 풍요를 약속하는 8월의 햇살이 죽음의 그림자도 함께 드리운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그 여름날처럼 햇살과 그림자가 함께하며 <8월의 크리스마스>가 시작된다. 병원에서 시한부를 선고 받았지만 평소처럼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사 정원(한석규). 친구의 전화를 받고 장례식을 다녀오며 8월의 무더위에 지친 어느 오후. 이제 막 사진관을 열려고 하는데 주차 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이 달려와 사진을 인화해달라고 재촉한다. 조금만 이따 다시 오면 안 되냐는 말에도 빨리해야 한다는 다림. 온화한 성격의 정원이지만 땀도 식기 전에 들이닥친 다림에겐 약간 짜증이 난다.

다림은 사진관에서 기다리는 게 어색한 듯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사진관 앞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서 서성이며 현상을 기다린다. 이래저래 서로 민망해지는 순간. 정원은 아이스크림을 사다 다림에 건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까는 너무 더워서 그랬다고. 아이스크림을 깨문 다림은 괜찮다며 살포시 미소 짓는다. 사진 인화 때문에 매일 초원사진관을 찾아오는 생기발랄한 다림과 그녀의 불평불만을 묵묵히 들어주는 정원의 수줍은 만남은 그날을 계기로 계속 이어진다. 물론 서로에 대한 호감도 8월의 햇살을 받으며 함께 자라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 이미지

삶의 연장선으로 죽음을 바라보기

1998년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이하 8월)>는 허진호 감독의 첫 작품이다. 가수 김광석의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에서 모티브를 얻어 본인의 영정사진을 찍는 사진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한부 환자가 소재이지만 끈적하고 축축한 이전의 충무로 멜로들과는 다르게 특유의 담담한 터치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이 정서는 차기작 <봄날은 간다>까지 이어져 지금까지도 한국 멜로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 역시 이 놀라운 데뷔작에 이런 한줄평을 남겼다. “지난 20년간 한국 멜로는 허진호였다.”

20년간 한국 멜로를 자신의 자장에 둔 <8월>의 장점 중 한 가지는 죽음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한다는 사실이다. <8월>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정원도 이미 치료는 포기한 듯 덤덤하게 알약만 삼킨다. 이 영화를 돋보이게 만드는 지점은 그림자를 만드는 빛에도 동시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오프닝에서 낮잠을 자는 정원의 모습이 보인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초등학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잠을 죽음의 은유라고 본다면 정원을 깨우는 건 초등학교에서 뿜어나오는 생명력을 담아내는 빛이다.

빛처럼 다가온 다림과 첫 데이트를 하던 날. 정원은 다림에게 군대에서 보초를 서며 겪었던 사건을 들려준다. 후임병과 둘만 있던 초소에서 누구도 뀐 적 없는 방구 냄새를 맡았는데 알고 보니 방구를 많이 뀌던 병사가 자살한 곳이었다는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라며 깔아놓은 밑밥에 비해 시시한 이 이야기에도 무서워하며 살며시 팔짱을 끼는 다림은 정원에게 묻는다. 아저씨도 귀신이 무섭죠. 정원은 대답한다.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는 것 아니니. 다림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8월>은 두려움과 공포로만 그치지 않고 삶의 연장선으로 죽음을 바라본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 이미지

지독할 정도의 절제된 연출은 되려 여운의 꼬리를 길게 늘인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은 정원의 병명도, 얼마나 살 수 있는지도 모른다. 멜로 영화지만 흔한 키스신도 없고 심지어 후반에는 약 15분 간 대사도 나오지 않는다. 홀로 남겨질 아버지에 대한 걱정은 구구절절한 당부나 절절한 눈물 잔치가 아니라 VCR 작동법을 가르쳐주다가 화나서 방문을 쾅 닫고 나가는 모습으로 대체된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해서 이 절제의 미학을 바꾸지 않는다. 비가 오는 어느 날. 화면 중간에서부터 시작해 카메라를 지날 때까지 하나의 우산을 쓰고 걷는 롱테이크는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정원과 다림의 설렘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하지만 다림이 들고 있던 우산을 대신 드는 정원, 젖은 얼굴을 닦으라고 주는 손수건, 잔잔하게 깔리는 테마음악 정도만 양념으로 살짝살짝 곁들여질 뿐이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 이미지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는 <8월>의 또 다른 모티브였다고 한다. 극중 다림의 성은 김 씨로 알려져 있다. 김다림.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름도 아니다. 어쩌면 허진호 감독은 김에서 ‘ㅁ’을 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강력한 의심이 드는 이름. 황 시인이 사랑을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 행복한 기다림은 정원에게만 오지 않았던 것 같다. <8월>을 처음 본 건 개봉한 지 15년이 흐른 2013년 봄이었다. 돌이켜보며 단언컨대 이보다 조금만 더 빨랐어도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이 <8월>을 인생 영화 중 한 편으로 꼽는다. 나 역시 그렇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경험이 쌓여야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살면서 어느 순간은 멈추고 절제하며 기다렸어야 했다는 경험을 쌓는 것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한 기억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걸 곱씹으며 반성을 할 수 있던 내 가장 젊은 순간 <8월>과 기적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나 역시 정원의 내레이션처럼 기억 속에 무수한 영화들이 추억으로만 그치고는 한다. 하지만 <8월>을 만나면 이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이 영화만은 추억으로 남지 않고 간직할 수 있어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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