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아는 척하면 안 되는 세상입니다. 해당분야의 전문가인 실제 업무 당사자들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치열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득세하는, 그래서 어떤 사안이나 문제에 대해 저마다 자신의 식견을 자랑하고,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시대. 지금은 모두가 전문가인 시대이니까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섣부르게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모른다고 깔끔하게 승복하는 것이 미덕입니다. 괜스레 겉포장만 요란하게 한다고 해서 통하는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가 버렸어요.

<뿌리깊은 나무>의 엄청난 성공을 이어받을 책무를 가지고 시작한 SBS의 새로운 수목드라마 <부탁해요 캡틴>이 저지르고 있는 최악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미 다양한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고,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직 드라마를 만들면서 너무나 안이하게, 혹은 굉장히 순진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죠. 자료를 수집하고 구현하기 위한 사전 준비가 미흡했거나, 아니면 그거 배경만을 빌려올 뿐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식의 꼼수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말이죠.

이전에도 파일럿을 다룬 드라마도 없지 않았습니다.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했던 작품들도 많았었죠. 그리고 이런 류의 드라마들은, 그것이 법정 드라마가 되었건, 의료진들의 삶을 다룬 것이었건, 형사, 복서,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특정 직업에 접근하는 것이었건 간에 대부분의 경우 실제 그런 특수한 생활의 방식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그런 배경 안에서 두 남녀 주인공들이 어떻게 엮이고 얽힌 애정관계를 만들어 나가는가에 더 큰 관심이 있었죠. 전문직을 명분으로 하는 애정극. 이것이 한국에서 이런 유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었으니까요.

선배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부탁해요 캡틴> 역시도 마찬가지의 노선을 걸을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구혜선이나 한 사람의 파일럿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개인의 성장사나 해당 직업만이 느낄 수 있는 고뇌에 집중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저 제복을 입은 선남선녀들이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가 내용의 전부처럼 보일 뿐이거든요. 왜 벌써부터 이런 의심을 하느냐구요? 작가나 제작진 모두가 실제 그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지식과 깊이 있는 접근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얄팍함을 단 1회 만에 들켜버렸거든요.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소통이 이루어져야 할 관제탑 내의 대화는 세종대왕의 뜻을 이어받으려는 듯 자연스럽게 한글로 의사소통을 주고받습니다. 아무리 신입이라고는 하지만 지진희는 훈련받은 파일럿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부적절하게 사용된 항공 용어들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세심한 관리를 요하는 임산부보다 유명 배우에게 혹하다 승객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승무원에 대한 묘사는 해당 종사자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부른다 해도 변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용이라도 흡입력 있게 구성이 되어야 할 텐데 그도 녹록치 않습니다. 극의 무게를 잡아주어야 할 중량감 있는 중년 배우인 이휘향과 김창완은 맥락 없는 줄초상을 당하고, 그런 죽음을 밑자락에 깔고 내용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어붙인 인물관계의 흐름은 막장 드라마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목소리 톤조차 조절이 안 되는 여주인공 구혜선이나 오열과 짜증, 냉정을 괴상하게 오가는 지진희의 과장스러움은 집중을 가로막습니다. 간간히 흐름을 막는 CG의 완성도는 B급 SF물로 장르를 바꾸어버리고, 도통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저 그럴듯한 직업을 내세우며 조금의 굴곡을 곁들인 러브라인을 만들면 되겠지 하는, 그런 안이하고 호기어린 과욕이 만든 안타까운 완성도. 벌써부터 이 드라마가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그야말로 대형사고입니다. 왜,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여버린거죠?

물론 이제 겨우 첫 회입니다. 아직 많은 것들이 준비되었을 것이고,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점점 촬영과 방송 사이의 간격이 짧아지며 생방송처럼 진행되는 한국 드라마의 작업 환경에서 본래 드라마의 완성도는 첫 회가 가장 빼어나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첫인상이 드라마 성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나 이 드라마의 첫인상은 뿌리 깊은 나무의 좋은 흐름을 단번에 깨버릴 만큼 몹시나 실망스럽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 이정도 깊이의 전문 지식으로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할 수도, 불안한 배우들의 연기에 기대어 절절한 사랑 이야기도 만들기 난감한 한계. 아주 가끔씩 이긴 하지만, 갈수록 개선되며 재미있어지는 드라마도 있다지만 <부탁해요 캡틴>의 미래는 그리 긍정적일 것 같지 않네요. 그냥, 세종대왕이 그리울 따름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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