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웃는다. 아니 힘들어서 웃는다는 것이 지난 4년여의 예능 전성시대를 설명해주는 말입니다. 그 어느 시기를 비교해 보아도 예능 프로그램의 빈도가 높아졌고, 수많은 화제와 영향력을 발생시킨 시간이었죠. 웃을 일이 없고, 즐길 여유도 부족해지는 궁핍함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무한하게 도전하고, 여행을 떠나고, 술래잡기를 하거나 노래경쟁을 하는 이들의 모습으로 대리 체험하며 빼어난 광대들이 선물해준 웃음을 소통시키며 위로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조금은 벗어난, 아니면 외면한 기존 웃음의 방향은 2011년 후반부터 조금씩 우리를 돌아보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끼리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점점 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위안을 주려는 시도가 늘어갔고, 함께 또 같이의 의도가 묻어나는 프로젝트들이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꼼수다의 열풍, 개그콘서트의 몇몇 코너들의 히트는 보다 직접적인 표현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가장 웃기는 소재들은 바로 우리의 삶 속에 쌓여 있다는 발견이죠.

그만큼 웃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리들. 권위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들. 보다 길게 보기보다는 사소한 눈앞의 일들을 해결하기에 급급해야 하는 숨 막힘. 이 모든 것들은 조금만 비틀고, 약간만 멀리 바라보아도 폭발적인 웃음으로 바뀌어 버리는 반전으로 가득합니다.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냐는 비정상이 만드는 실소. 이것이 새해를 지배하는 웃음 코드가 될 것이란 말이죠.

최효종을 필두로 하는 개콘의 현실 풍자는 그 용기 자체만으로도 속이 다 후련합니다. 시청률 20%를 넘기는 인기 프로그램에서 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의 그 파급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직접적이지만 다소 거칠었던 동혁이 형의 일성은 후배들이 만든 사마귀 유치원으로 이행되며 훨씬 더 세련되고 은유적인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코너 곳곳에는 일상의 고달픔을 체념하고 인정하기보단 긍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다며 위로해주는 코드들로 가득합니다. 개콘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은 바로 이런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있어요.

각 방송사에서 부활하기 시작한 공개 코미디, 케이블까지 가세한 개그맨들의 부활 시도 역시 이런 시도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현실 풍자는 이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나는 꼼수다를 패러디한 나는 하수다는 그 소재 선택에서부터 파격입니다. SNL 코리아는 보다 날카로운 칼날로 현실에 대해 말합니다. 풍자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고, 그 대상 역시 보다 직접적으로 언급합니다. 불량스러운 폭주족, 쪽방에서 사는 가난한 가족, 잊혀지고 있는 과거의 추억처럼 외면받거나 무시받았던 이들이 캐릭터로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쫄기보다는 차라리 웃어버리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먼저 대변하는 흐름이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점점 더 대세가 되고 있다는 말이죠.

이런 흐름은 가면 갈수록 더욱 강렬해 질 것입니다. 2012년은 정치의 계절, 시사 풍자의 대목인 선거의 시간입니다.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캐릭터들이 쏟아질 4월의 총선, 12월의 대선은 이토록 선거를 기다린 적이 없다는 젊은 세대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레임덕의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동안 통제되었던 말하고자 하는 욕구는 점점 더 강렬해지며 그동안의 침묵을 강요받았던 것을 넘어서며 보다 강한 표현, 비꼼으로 이슈를 주도할 것입니다. 세상을 비웃고, 비극을 노래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리얼 버라이어티는 여전히 프로그램의 강고한 축을 감당할 것이고, 출연하는 이들의 면면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 흐름과 방향은 예전과는 다를 것이에요. 본래 광대의 역할은 대중의 울분을 웃음으로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그 역할에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구요. 비극이 만드는 웃음. 가장 원초적인 웃음을 향한 욕망이 지배하는 한 해. 이것이 제가 예상하는 2012년의 첫 번째 예능 트렌드입니다. 우리에겐 지금 웃음이 필요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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