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란 아마도 연기자에게 꼭 필요한 명칭일 것이다. 그래서 특정 캐릭터로 호평을 받았던 배우들이 후속작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전혀 다른 작품이나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은 정답이다. 특정 캐릭터에 발목 잡혀서는 결코 좋은 배우라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과서 같은 질문을 적용키 힘든 경우도 흔치 않지만 존재한다. 바로 샐러리맨 초한지의 유방 이범수가 그렇다.
연초부터 웃음폭탄을 무차별로 던져대는 샐러리맨 초한지는 아주 많은 배우가 등장하지만 초반 분위기는 거의 이범수에 의존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범수의 캐릭터가 이 드라마의 성격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헌데 이범수의 캐릭터 유방은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팔색조 그 자체의 다양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코믹스러움은 기본이고, 그 사투리 연기에는 촌놈의 슬픔과 끈기 그리고 선함이 동시에 묻어나고 있다.
이범수가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만들어가는 캐릭터는 다소 모자라고 뻔뻔한 인물이다. 또한 인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신약테스트에 응시할 정도로 절박한 인생이기도 하다. 또 그런가 하면 정의로운 면도 있으며 효자이기도 하다. 보통은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주인공의 성격이 매우 선명해야 한다. 그러나 샐러리맨 초한지 이범수의 유방 안에는 혼자가 아니라 다른 몇 명의 이범수가 있기라도 하는 양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성격을 연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알딸딸한 부분이 변태 유방의 모습이다.
일상에서 실수로 누군가의 니트 원피스를 잡아당겨서 허벅지가 노출될 정도로 올을 풀어낸다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 문틈에 끼인 자투리 천에다 굳이 구두를 닦으려는 것도 생각하기 힘든 문제다. 이 두 번의 변태신의 최대 관건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슬랩스틱 연기가 가능하냐에 달려있다. 상황의 개연성이 부족한 것은 코미디의 장점으로 커버될 수 있는 문제다. 그 부자연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절정의 능청스러움이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다. 배우가 조금이라도 어색해 하면 시청자는 금세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샐러리맨 초한지를 기다렸던 이유 중 큰 하나인 홍수현의 굴욕신이 더해지고 있다. 2회 끝부분부터 등장한 홍수현은 정겨운의 짧은 시간을 통해서 지적인 연구팀장의 모습 대신 푼수를 풍겼다. 과음을 한데다가 정겨운이 약까지 탄 술을 마시고 떡실신한 홍수현은 다음날 벗은 자신을 보고 당연히 원나잇스탠드로 착각하게 된다. 실수라고 얼버무리려 하지만 근육질의 미남 정겨운이 싫지 않은지 활짝 웃으며 샤워하는 모습이 예고로 등장했다.
이렇듯 중심을 잡아가야 할 주연들에게서 연기력 걱정 없는 탄탄한 드라마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거기다가 샐러리맨 초한지는 조연진이 눈부시게 화려하다. 하다못해 단역마저도 송경철 같은 베테랑이 등장할 정도로 드라마 속에서 입을 여는 사람들 누구에게도 어색한 연기는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대단히 큰 장점이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월요일과 화요일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될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