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김원웅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가 화제이다. 내용을 보면 전형적인 친일파 반대 서사다. 친일청산은 이제 역사적 평가의 문제로 남겨야 한다. 문제는 이 서사가 자꾸 등장하는 맥락이 현실정치의 차원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친일청산 요구는 뒤늦게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다. 해방 직후에도 친일 청산 요구는 있었다. 다만 이 요구가 정파적으로 조직된 정도는 지금보다는 덜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정부 수립에 참여할만한 기반을 갖춘 엘리트 계층에서 친일 논란과 무관한 인물을 찾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친일은 지배계층이 근대화를 위해 민족을 버린 것처럼 묘사되지만 적어도 해방 직후 정국에선 이 문제가 그런 개념으로만 여겨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친일 청산을 요구한 반일 논리도 근대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식민지 조선의 낙후성은 일제의 수탈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해 남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된 자기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친일청산은 왕조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돼서는 안 되고 제대로 된 서구식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에 분명히 있었다.

이런 주장을 앞장서서 했던 사상계 그룹 등이 보기에 이승만 정권은 단지 친일청산을 하지 않은 것을 넘어 독재를 선택한 게 문제였다. 이들이 볼 때 민주주의는 근대화와 한쌍이었으므로 이승만 정권은 근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마찬가지로 당시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장면 정권에서 사상계 그룹이 경제개발계획의 실무를 맡았던 것은 그 결과가 근대화와 민주주의 구현으로 이어질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사상계 그룹이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서도 초기 불분명한 입장을 취했던 것 역시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친일과 반일의 논리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정파화 된 계기는 1965년 한일수교이다. 박정희 정권은 반공을 앞세워 일본에 대한 긍정을 근대화와 결합했다. 이에 맞서는 반 박정희 세력은 반일을 위해 독재인 북한 체제에 대한 일부 포용을 전제로 하는 민족주의적 세계관을 형성했다. 이 결과로 박정희 정권은 자신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용공’으로 규정하고, 반 박정희 세력은 박정희 정권 반대를 ‘친일독재’로 규정하는 정파적 조직화 논리가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 논리가 박정희 정권 이전 시기 역사의 성격 역시 재규정했다.

오늘날의 친일청산 서사도 이 공식을 따르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 역시 정확히 이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즉, 이 서사의 정치적 핵심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나 친일청산의 당위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 반대’에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주장은 박정희 정권과 그 후신에 대한 반대를 표명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원웅 광복회장 (연합뉴스)

문제는 이러한 형태의 친일서사에 반대하는 쪽도 마찬가지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김원웅 광복회장의 주장을 ‘NL민족주의’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주장을 보자. ‘NL민족주의’는 결국 북한식 세계관을 말하는 것인데 앞서도 논했듯 김원웅 광복회장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친일청산 서사는 오직 그 틀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항일운동가의 후손을 자처하고 있고 한일기본조약 체결을 반대한 6.3항쟁에 참여한 이력을 갖고 있지만 ‘NL민족주의’와의 접점은 없다. 그럼에도 ‘NL민족주의’가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이것도 반대를 위해 동원된 논리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맹점은 야권의 대권주자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윤석열 전 총장이 내세우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란 개념은 어떤가? 문재인 정권의 어떤 부분, 예를 들면 조국 전 장관 문제나 검찰개혁 이슈 등에서 비자유주의적 통치의 문제가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적법절차 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의 ‘자유민주주의’론은 들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전 총장의 주장은 그게 아니다. 역사나 안보 이슈에 대해 표명한 입장이나 최근 ‘망언’으로 드러난 주장 등을 보면 결국 반공주의와 시장지상주의의 결합이라는 고전적 모델로 가고 있다. 정부의 역할 자체가 규제라는 식의 주장까지 내놓고 있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보수의 구원투수로 새롭게 등장한 이 두 사람이 철학적 차원에서 반공주의와 시장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인물들인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넘어 캠페인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들은 보수의 혁신을 뒷받침하는 이슈파이팅을 하면서 확장력을 증명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보수정치인보다 더 보수정치인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보수 혁신을 상징한다는(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준석 대표와 대립하고 있다. 이 상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결국 문재인 정권을 ‘용공-전체주의-운동권 귀족’으로 규정하고 그 반대의 한계점으로 달려가는 정치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박정희 정권과 그 반대자들이 대립한 구도의 또 다른 버전인데, 뒤집어 말하면 이들은 자기 정치를 스스로의 말로 표현할 철학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식의 ‘반대의 정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런 식의 정치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일반화 되어 있다. 가령 여당 대권주자들이 정경심 교수 2심 판결에 대해 하나 같이 내놓는 입장을 보라. 방송인 김어준 씨는 정권을 재창출하면 조국의 시간이 올 거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다. 조국 전 장관이 예수와 같은 인물로 묘사되는 것은 ‘검찰의 피해자’로 정치적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반대해야 할 존재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것, 그 자체가 반대의 정당성을 증명한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통치자는 권력을 상실할 때에야 ‘재평가’된다. 그렇다면 조국 전 장관의 부활은 정권을 잃어야 가능할 것이다. 김어준 씨를 위해서는, 그런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조국 전 장관이 부활하느냐 마느냐는 대다수 시민들의 삶과는 별 관계가 없는 문제다. 그것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반대하는, 쳇바퀴만을 반복하는 정치를 끝낼 수 있는 수단을 시민이 직접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번 대선판에서 그런 얘기들은 실종되었다. 냉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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