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한민국의 국민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징 중 하나로 조기축구문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업사이드 규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그저 공이 있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쏠림을 비꼬는 표현이죠. (물론 요즘 조기축구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잘나가는 것, 대세라고 주목 받는 것이 생기면 곧바로 이와 유사한 짝퉁이 생겨나면서 슬며시 무임승차하는 것들로 도배가 되는 현상을 꼬집고 싶은 거예요. 2011년도 예외가 아니었죠. 꼬꼬면과 함께 시작된 하얀 국물 라면의 전성시대, 나는 가수다의 히트 이후 생긴 아류 방송과 각종 특집 프로그램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창조적인 재해석이란 명분으로 뻔뻔함을 가리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도둑질이나 다름없는 아이디어 훔치기와 다를 바 없어요.

슈퍼스타K의 엄청난 성공 이후, (몰론 이 '원조' 프로그램 역시도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국형이기는 합니다만) 공중파 방송 3사들은 공히 유사한 형식의 프로그램 기획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그 적용 방식은 살짝 비틈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침체된 락밴드를 발굴하려는 KBS의 TOP 밴드, 멘토제라는 교육과 사사의 의미를 담은 MBC의 위대한 탄생처럼 차별화를 두려는 후발 주자들의 노력과 고민이 담겨 있죠.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선을 보이고 있는 SBS의 K팝스타 역시 그들만의 장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국내 거대 기획사로 손꼽히는 SM, JYP, YG의 수장들과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 제목 그대로 새로운 K pop의 기수를 찾아내겠다는 시도이죠.

이런 기획의 방향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문제를 넘어서는 장치입니다. 바로 선발된 방송사를 제외한 타방송사에 진입하는 것이 몹시도 어렵다는, 보이지 않는 장벽과 배타성을 쉽게 뚫어버릴 수 있다 것. 그리고 막상 선발된 이후의 성장과 관리 면에서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장점이죠. 물론 지금은 예전의 악동클럽 같이 타방송사의 무조건적인 무시나 외면으로 재능을 매장시켜 버린다거나, 초대 우승자 서인국을 비롯한 슈퍼스타K 시즌1 사람들이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에 비하면 그 힘겨움이 많이 완화된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된 것도 역시 아니죠. 백청강을 비롯한 위대한 탄생 시즌1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K팝스타는 이런 우려를 가볍게 넘어설 수 있습니다. 어떤 방송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거대 기획사에서 선발한 이들, 그리고 그들이 책임지고 성장시킨 재능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없으니까요. 게다가 재능을 개발시키는 데에 있어서 이들 기획사들은 자신들만의 체계적인 성장 방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그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선발된 이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연속성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어요. 적어도 오디션이 끝나고 잠깐 반짝거리다 사라지는 일회용 스타들은 K팝스타에선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스타가 되길 원한다면 K팝스타야말로 가장 강력한 등용문일 거에요.

하지만 이런 강력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K팝스타는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하자마자 엄청난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죠. 많은 시청자들이 오디션을 통해 새롭게 발견된 이들에게 열광하고 그 프로그램들이 많은 화제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아이돌 천하로 도배가 되어버린 획일화된 가요계에 대한 불만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잘 기획된 상품처럼 꾸며진 10대 후반, 많아야 20대 초반의 미소년, 미소녀들의 노래에 지친 눈과 귀를 위로해주었기 때문이에요. 불우한 배경 속에 살아온 평범남의 인생 반전 스토리. 절대 아이돌 기획사에서는 발탁될 수 없는 많은 나이, 떨어지는 외모나 몸치 수준의 몸동작으로도 오직 목소리 하나만으로 승부하는 참신함. 다소 거칠고 부족해보이더라도 사람냄새 나는 이들의 노래가 아이돌과는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준 것이죠.

그런데 K팝스타가 서있는 위치는 이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아이돌을 만들기 위해 열린 거대 기획 3사의 통합 연습생 선발 대회에 불과합니다. 심사위원들은 자기 회사 연습생을 선발하는 기준으로 도전자들을 평가하고, 같은 재능을 보고도 당연히 서로 충돌하거나 다른 평가를 내리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뽑힌 이들의 결과물은 결국 또 다른 아이돌의 탄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미 반짝거리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이에게, 박진영처럼 JYP식의 밀고 당기는 호흡 조절이나 연주 방식을 지적하는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우린 이미 이와 유사한 것들을 각 기획사가 보유한 자체 오디션 영상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고, 그 완성품들은 매주 각종 가요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굳이 또 다른 소녀시대, 2PM, 빅뱅을 보기 위해 이 프로그램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아이돌 천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오디션 열풍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결국 또 다른 아이돌을 발굴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는 것처럼 웃기는 결과는 없어요.

물론 이것 자체도 무척이나 흥미 있는 접근이고, 이런 새로운 강력한 아이돌의 탄생 과정을 보고자 하는 시청자층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SBS의 접근 역시도 일요일 오후의 전쟁터에서 틈새시장을 노리고자 하는 것이었겠죠. 10대 후반의 반짝거리는 재능을 소개받는 즐거움은 확실히 강력합니다. 서서히 안정화를 넘어서는 지루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나가수의 시청률도 차분하지만 확실하게 잠식하고 있구요. 하지만 과연 이 프로그램이 자신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돌을 주제로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고, K팝스타의 포인트는 다양한 연령층을 공략할 여지가 있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달리 사실상 아이돌 후보들의 연령대 아이들이 재능을 뽐내는 스타킹과 유사한 즐거움이니까요. 실제로 재능 그대로에 대한 관심과 호평보다는 각 소속사에 걸맞은 재능과 관점이 부각되는 심사평들이 점점 쌓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심사위원들의 투정, 혹은 호평을 받는 오디션에 나온 어린 친구들이 정작 그들이 키운 아이돌들보다 훨씬 더 빼어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오히려 그들의 재능이 기획사에 들어가 똑같은 잣대로 다듬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건 기우일까요? 새로운 아이돌이 만들어지는 것이 뭐 그리 문제냐구요? 연말 가요 축제라며 돌아가며 방송한 것들을 보면 이 문제가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차이가 별달리 느껴지지 않는 아이돌들이, 오래 전부터 커버했던 팝송으로 무대를 도배합니다. 그나마도 기획사의 힘에 따른 시간과 무대 분량을 분배받습니다. K팝스타의 과정은 이들 중 또 다른 하나를 키우기 위한 과정에 불과해요.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의 기획은 대형 기획사들의 생명 연장을 위한 도구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원더걸스와 빅뱅의 탄생에서 시작된 아이돌 2세대의 전성시대가 오디션 프로그램과 나가수로 대표되는 가수들의 반격으로 조금씩 끝나가려는 지금, 과연 이런 별종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색깔의 피를 영입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려는 의도가 보이거든요. 그렇기에 이미 대형 마트인 이들이 굳이 이렇게 셔틀버스까지 돌려가면서 별개의 영역에까지 힘을 과시해야 하는지 좀 불편하구요. SM과 JYP, YG이 추구하는 재능의 아이들은 이미 두 시간 전에 같은 채널에서 방송되는 SBS 인기가요에서도 충분히, 훨씬 더 잘 가다듬어진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까지 이들 회사의 가수가 발굴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아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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