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부터 이어오는 드라마의 전반적인 색깔은 무겁거나 혹은 무섭다. 그 무거움을 일거에 씻어버릴 드라마가 왔다. 일단 웃기다. 그것도 무진장 웃기다. 개그 콘서트보다 웃기다. 예고를 통해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웃기다. 잘 해야 피식 웃고 마는 사람이라도 이 드라마를 보면 소리 내서 웃게 된다. 자이언트 팀이 거의 그대로 헤쳐 모였지만 분위기는 처절할 정도로 웃기다.

새해부터 새로 시작된 SBS 월화드라마 샐러리맨 초한지는 모든 연기파 배우들의 진지한 얼굴들을 전부 뒤집어쓰게 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중무장한 이범수의 폭발적인 능청연기와 겉은 청순가련하지만 실제로는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정려원은 이 반전을 이끄는 주역들이다. 게다가 비극의 주인공 경혜공주로 눈물을 달고 살았던 홍수현은 아주 대놓고 슬랩스틱이라도 할 기세다. 이범수가 홍수현이 씹던 껌을 억지로 꺼내서 자기 입으로 넣을 때 장면은 알면서도 놀랍고 웃겼으며, 눈물의 경혜공주와 영영 이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웃다가 끝낼 것이 아님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주된 배경이 굴지의 재벌회사지만 주인공의 출생배경으로부터 오는 짠한 동기는 끝도 없는 웃음 뒤에 숨겨진 소시민의 페이소스를 감추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터닝 포인트가 언제쯤인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지만 일단 방영 첫 회는 유감없이 웃어제낄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기에 적당한 가벼움과 즐거움을 장착한 드라마다.

천하그룹과 장초그룹은 서로 생명신약 개발을 놓고 산업스파이전을 벌일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야기는 스산한 호화별장에 박상면이 숨진 채 발견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범수가 숨진 박상면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숨어있던 정려원을 발견한다. 이어지는 장례식장에서 이범수와 정려원이 체포된다. 그 순간 드라마는 숨 가쁘게 3개월 전으로 되돌아간다.

3개월 전. 막바지에 다다른 천하그룹의 마지막 임상테스트 현장에 장초그룹의 정겨운과 천하그룹의 밀려난 후계자 박상면이 투입한 이범수가 서로 신약을 빼돌리기 위해 산 속의 비밀 실험장으로 들어간다. 정겨운은 천하그룹의 라이벌 장초그룹의 산업스파이로 왔지만, 이범수는 자식이 번듯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평생소원인 아버지와 엄마의 병원비가 시급한 지방대 출신으로 신약을 빼돌리면 천하그룹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박상면의 말을 믿고 겁도 없이 산업스파이 노릇을 하고자 들어온 것부터가 입장 차이를 보인다.

한편, 장차 이 드라마의 주 무대가 될 천하그룹은 후계구도가 혼란한 상태다. 유일한 아들은 여색에 빠져 회장(이덕화)의 신임을 얻지 못했고, 이덕화는 대놓고 손녀인 정려원에게 후계자 수업을 받게 하라고 공언한 상태. 그러나 정려원도 후계자 코스를 밟기에는 더 불안한 존재다. 청순가련한 외모와는 달리 안하무인, 천방지축의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사치와 낭비에는 선수라도 회사일에는 손톱만치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외삼촌 박상면마저 의문의 죽음으로 유일한 후계자가 됐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이 상황이 되면 정려원 주변에는 남자가 등장하게 되는 것은 드라마의 필연이다. 경영에는 무관심한 미모의 유일 후계자라면 누구나 목숨 걸고 싶기 마련이다. 정려원을 향한 장기 레이스 출발선에 이범수와 정겨운이 섰다. 일단은 수려한 외모의 정겨운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은 분명하지만 초한지 자체가 스포일러인지라 유방 이범수가 항우 정겨운을 이길 것이다. 거기에 변수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여인이 바로 내숭 백단 차우희 역의 홍수현이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유명한 항우의 사면초가라는 고사가 떠오르는 것과 비슷한 상황에서 시작하고 있다. KBS 연예대상에 빛나는 신하균의 브레인과 만만치 않은 안재욱의 빛과 그림자와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면초가의 포위망을 탄탄한 연기자들의 혼신을 다한 코믹함으로 뚫어낼지가 초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