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LG는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의 불명예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5년 임기로 계약했던 박종훈 감독은 2년 만에 중도 사퇴하고 김기태 수석 코치가 신임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훌륭한 프로야구 감독이 되기 위한 자질을 손꼽으면 다양한 요건이 제시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원칙에 충실하고 단기적으로는 임기응변에 능한 것이 필수 요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선발 로테이션, 계투진 운영, 부상 선수 관리 등에 있어 원칙을 고수하며 단기적으로는 매 경기, 매 이닝마다 다양한 작전과 적재적소의 선수기용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5년 간 LG의 사령탑이었던 김재박 감독과 박종훈 감독은 장기적으로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단기적으로는 답답하리만치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우선 장기적인 투수진 운영에 있어 무원칙했습니다. 이를테면 김재박 감독은 2009년 장기적인 원칙하에 운영되어야 할 필승 계투진의 정재복과 정찬헌을 패하는 경기에도 투입하는 과욕을 부리다 팀은 팀대로 연패를 거듭하고 선수는 선수대로 부상으로 신음하게 만들었습니다. 박종훈 감독은 2011년 제1선발 박현준의 선발 로테이션을 앞당기는 것도 모자라 마무리로도 투입하며 장기적 투수 운영의 원칙을 파괴했습니다. 박현준은 시즌 후반 건초염으로 1군에서 이탈했습니다. 주키치와 리즈 두 외국인 선발 투수 역시 마무리로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 김기태 LG트윈스 감독, 그가 '조급증'에 휘말렸던 전임 박종훈 감독의 전철을 피할 것인지 주목됩니다. ⓒ연합뉴스
반면 단기적으로는 답답하리만치 원칙을 고집했습니다. 1회부터 희생 번트에 의존하는 스몰 볼과 ‘좌투수는 좌타자에 강하다’는 소위 ‘좌좌우우’ 이론을 신봉해 LG의 상대팀 감독으로 하여금 예측 가능한 손쉬운 야구를 반복했습니다. 당혹스러운 것은 김재박 감독이 실패한 스몰 볼을 박종훈 감독이 아무런 학습 효과 없이 고스란히 반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무원칙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고집스런 야구를 반복하는 이유는 ‘조급증’ 때문입니다. 조급증이란 133경기를 반 년 동안 치르는 페넌트 레이스를 멀리 내다보다는 것이 아니라 당장 오늘의 1승에 집착해 목매다는 태도를 말합니다. 박종훈 감독은 시즌 중에만 조급증에 시달린 것이 아니라 휴식을 통해 재충전이 필요한 오프 시즌에도 유례없는 긴 훈련으로 선수단을 내모는 오버 페이스로 2011 시즌을 망쳤습니다. 돌이켜 보면 박종훈 감독이 기나긴 훈련 기간을 설정한 것은 페넌트 레이스에서 성적이 부진할 경우에도 ‘훈련을 길게 했으니 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라는 변명거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프로야구 감독은 코치, 선수, 프런트, 팬들 사이에 끼인 외로운 존재입니다. 대한민국에 9명밖에 없는 프로야구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라 표현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게다가 LG가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상황에서 경력도 일천하며 프랜차이즈 스타도 아니기에 팬들의 냉랭한 시선 속에서 취임해야 했던 김기태 감독의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전 포수와 마무리 투수, 그리고 주전 1루수가 FA로 이탈한 LG는 객관적으로 올 시즌 4강 진출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주축 타자들 또한 서서히 노쇠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태 감독은 외부 FA 영입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보상 선수에 유망주를 선정하고 마무리 훈련 기간을 짧게 가져가며 선수들에게 자율 훈련과 휴식 시간을 충분히 부여했습니다. 외부 FA 영입 포기가 모기업의 어려운 상황을 감지한 김기태 감독의 ‘총대메기’인지 알 수 없으나 자칫 의욕만 앞설 수 있는 초짜 감독이 보상 선수로 유망주를 선정하고 선수들에게 자율 훈련과 휴식을 부여한 것은 인상적입니다.

김기태 감독이 올 시즌에 LG를 어떻게 이끌어갈지는 알 수 없으나 전임 감독들과 달리 당장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의외로 빠른 시간 내에 좋은 결과를 담보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1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를 막는다는 명분보다는 LG의 앞으로의 10년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김기태 감독이 성적에 대한 압박에서 비롯되는 ‘조급증’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주목되는 2012년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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