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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프라임] 노동이 춤이 되는 순간, 예술의 쓸모가 증명된 순간[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8.10 11:35

[미디어스=이정희] 나이 70쯤 돼서 먹고사니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머리에 꽃을 꽂고 한복을 나풀거리며 추는' 고전무용을 배워보고 싶다. 그런데 나의 로망을 일찌감치 실현한 이들이 있다. 내 또래의 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다. 그들의 삶, 그들의 노동이 '춤'이라는 예술로 구현되었다. 

EBS 다큐프라임은 8월 9일부터 3부작으로 <예술의 쓸모>를 방영한다. 옛날에 예술을 한다고 하면 어르신들이 '밥 굶는다' 걱정하셨듯, 우리에게 예술은 도무지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장르로 여겨진다. 그런데도 선사시대 동굴벽화 이래 예술은 꿋꿋이 인류와 함께 존재해왔다. 오죽하면 문화사학자인 J. 하위징아는 인류를 ‘유희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라 정의 내렸을까?

EBS 다큐프라임 <예술의 쓸모> 1부 ‘춤, 바람입니다’ 편

그런데 정말 예술은 삶의 현장에서 이반된 존재일까? 다큐프라임은 예술의 쓸모를 찾기 위해 삶의 현장에 눈을 돌린다. 지난 5월 <지하철 차차차>란 10여 분의 공연이 있었다. 9명의 무용수들이 10개월간 준비한 공연이 지인들 앞에서 펼쳐졌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날의 감동을 길어 올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2020년 10월, 지하철 1~4호선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 등 9명이 현대무용가 예효승 씨와 만났다. 춤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모은다 하여 지루박이나 탱고를 배울 줄 알고 왔다는 평균 연령 61세의 사람들. 그런데 안무가는 그들에게 자신의 몸으로 이름을 써보라는 것으로 춤을 시작했다. 

저마다의 삶이, 노동이 춤으로 

EBS 다큐프라임 <예술의 쓸모> 1부 ‘춤, 바람입니다’ 편

의도하는 게 뭘까? 하면서도 팔꿈치로, 몸짓으로 원을 그리며 이름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 이렇게 힘들게 이름을 써본 적이 없다는 나이 지긋한 이들의 몸속에서 '춤'이 열려져 나온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돼 함께 모여 연습하는 게 힘들어지며 연습은 1;1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씩 하는 연습 시간은 그저 동작을 외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일상에서의 움직임 모두가 춤이라는 안무가의 신념에 의거, 그들의 삶이, 그들이 지난 시간 해온 노동이 그대로 안무가 되었다. 

동대입구역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배남이 씨는 처음엔 누가 알아볼까봐 코로나 시절이 아니었는데도 마스크를 쓰고 근무했었다고 한다. 내 인생이 어쩌다 쓰레기통을 뒤지면서까지 살게 되었나 싶어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시간을 견뎌내고 당당하게 쓰레기를 줍고 비누칠을 하고 지저분한 것들을 물로 씻어내는 그녀의 '작업'이 그대로 춤이 된다. 

EBS 다큐프라임 <예술의 쓸모> 1부 ‘춤, 바람입니다’ 편

수신호 춤은 어떨까? 63세 공상만 씨는 역장으로 10년이나 근무하고 퇴임한 후 다시 지하철 경비로 취업을 했다. 지위가 완전히 달라진 현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후배들한테 인사하는 것으로 경비원 업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는 정년퇴임을 앞둔 친구의 고민을 들어줄 정도의 내공이 생긴 상만 씨. 역장으로 일하던 시절, '수신호'로 열차를 운행했던 그 경험을 춤으로 형상화 해보고자 한다. 

16년 동안 마을버스도 끊어진 시간에 홀로 산속의 집에서 걸어 내려와 야간근무를 했던 김건순 씨는 홀로 아이를 책임지며 살아내야 했던 그 암울했던 시간을 바닥을 하염없이 기는 듯한 동작으로 승화시켜낸다. 

이름이 같은 김순자 씨와 임순자 씨는 같은 지하철역에서 근무하는 선후배 동료이다. 처음 청소 일을 시작했을 때 따뜻하게 일을 가르쳐 주고 다독여 준 선배 임순자 씨는 여전히 김순자 씨의 어깨에 파스를 붙여주며 ‘아직 젊은 데 이렇게 아파서 어쩌냐’며 걱정해준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언니와 동생이 된 두 사람의 동지애도 서로를 따스하게 품어주는 ‘이인무’로 재탄생되었다.

EBS 다큐프라임 <예술의 쓸모> 1부 ‘춤, 바람입니다’ 편

한때는 동양화가였던 강문수 씨의 캐리커처로 완성된 <지하철 차차차> 포스터 속 9명의 '춤꾼'들은 장소를 불문하고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연습했다. 그들의 노동현장 속 땀방울 어린 연습은 지하철을 타고 오늘도 삶의 현장을 향해 가는 모든 이들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집단 군무가 되었다. 

공연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각자의 소회를 전한다. 이제 정년을 2년 앞둔 홍혜경 씨는 '청소하는 아줌마들 멋지네'라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이 배남이라는 걸 잊고 살았다는 배남이 씨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해준 이 시간이 벅차다고 했다. 강문수 씨는 내 동료들이 말하지 못한 것을 대신 표현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공상만 씨는 새삼 지난 30년 동안 잘 버텨온 자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안무가 예효승 씨는 말한다. 60년 세월을 살아온 9명 저마다의 표정이 그대로 '예술'이라고. 그들이 무대에 서서 보여준 건, 10여 분의 연습된 안무가 아니라 그 안무 속에 녹아든 그들의 삶과 노동이라고. '예술의 쓸모'는 이렇게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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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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