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1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 소식을 전하는 언론의 온도 차가 극명하게 갈렸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경영성과를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한겨레, 경향신문은 “촛불 정부가 무색해졌다”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9일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을 허가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은 이후 7개월 동안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10일자 주요 신문사 사설 제목

경향신문은 1, 2, 3면을 통해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맞춤형 특혜’라고 비판했다. 사설 <‘법 앞의 평등’ 원칙 뒤흔든 이재용 가석방>에서 “이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은 여러모로 타당하지 않다”며 “이 부회장은 지금까지 혐의를 제대로 인정한 적도 없고 분명한 사과의 입장을 밝히지도 않았다. 가석방심사위가 적격 여부를 심사할 때 이를 충분히 따져봤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또한 “현행법상 가석방은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채우면 가능하지만, 실무상으로는 형기의 80% 이상 복역해야 심사 대상이 돼왔다”며 “그런데 지난달 법무부가 예비심사에 오를 수 있는 형집행률 최소 기준을 50%로 낮췄고 이 부회장이 7월 말 60%를 채우면서 ‘이재용 맞춤형 완화’라는 비판이 불거졌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이 부회장 가석방은 과거 재벌 총수들에 대한 무원칙한 사면과 마찬가지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일”이라며 “사법제도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훼손한 책임은 정부에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도 1, 2, 3면에서 ‘변칙’, “이게 공정인가”, ‘특혜’, ‘이재용 맞춤’ 등의 표현으로 가석방 결정을 비판했다. 사설 <이재용 가석방, ‘촛불’을 들었던 손이 부끄러워진다>에서 “국정농단을 심판한 ‘촛불 민심’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가 국정농단의 주요 가담자에게 가석방의 특혜를 베푼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여전히 ‘법 위에 삼성’이 있고, ‘촛불 정부’라는 이름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게 됐다”고 했다.

2018년 2월 5일 '국정농단' 항소심 선고 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나는 이재용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이 부회장이 경영일선에 복귀해야 한다는데 방점을 찍었다. 조선일보는 10일 사설 <5년 공백끝 복귀 李부회장, 경영 성과로 ‘억울함’ 입증하길>에서 “이 부회장이 뇌물 공여 범죄자가 된 과정에서 문 정권은 고비마다 재판에 개입했다”며 “문 정권이 이 부회장을 감옥에 보내려 작심했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총수가 사법 리스크에 휘말린 사이 삼성전자의 경영은 복합 위기에 처했다”며 삼성전자의 낮아진 시장 점유율, 글로벌 판매량, 인수합병 중단 등을 근거로 나열했다. 조선일보는 “뒤늦게나마 경영에 복귀하게 된 이 부회장으로선 무거운 책무를 짊어지게 됐다”며 “초스피드로 펼쳐지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중앙일보는 정부에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했다. <이재용 ‘반도체 코리아’ 위기 탈출에 전력 투구해야> 사설에서 “비상 상황을 돌파하려면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가 필수적”이라며 “대규모 장치산업이나 다름없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수십조원의 투자 결정을 내리려면 기업의 전략을 결정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것으로는 급한 불을 끄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라며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해 리더십을 정상화하기 위해 정부는 가석방을 넘어 사면을 조속히 결단하기 바란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재용 가석방…초일류 경영으로 국민 기대에 답해야> 사설에서 “가석방 사유에 언급된 것처럼 글로벌 경제의 격변기에 처해있는 한국은 지금 이 부회장의 역할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이 부회장이 우리 사회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삼성을 지금보다 더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고부가가치형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경제단체들의 반응을 빌려 “사면이 아닌 가석방 방식으로 복귀하게 된 점이 아쉽다”고 밝혔다. 법무부 장관이 가석방자의 취업 등을 허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시행령 조항을 활용해 이 부회장의 경영 활동 제약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부회장이 가석방 심사 대상에 오른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일부 언론을 향해 ‘가석방 군불때기’를 멈추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민실위는 “‘국민 다수가 이재용 가석방에 찬성하는 듯하다’, ‘정상 경영 위해 이재용 사면 필요하다’는 등의 풀 바르는 소리가 들린다”며 “형기 60퍼센트를 채웠으니 이쯤에서 놓아줘도 되지 않겠느냐는 호도. 그래야 삼상전자가 제대로 움직이고 국민에게도 좋을 거라는 꼬드김. 그리해 둬야 정치 후원금 늘고, 사업 협력할 길 트이며, 광고 협찬 늘어날 거라 기대하는가”라고 비판했다.

민실위는 “신문과 방송은 민주 언론 실천을 향한 나침반이 '가석방' 따위를 가리킬 일 없음을 깊이 새기라”며 “이재용은 몸에 프로포폴을 불법으로 넣은 혐의 때문에 거듭 법정에 서야 한다. 이 부회장이 형기를 꽉 채우고 감옥에 나서는 날 손뼉 쳐줄 용의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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