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가디슈>, <군함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모가디슈>는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여름 대작이다. 관객들이 블록버스터에 기대하는 조건들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클리셰의 함정으로 빠지지 않는다. 동시에 잔잔한 감정의 여운을 남기는 완성도까지 고려한 수작이기도 하다.

일단 모로코에서 100% 촬영한 끝에 얻어낸 이국적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991년의 소말리아를 재현하기 위해 수십 명의 스텝이 해외로 나가고, 수백 명의 현지 배우들을 모집해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그럴싸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본격적으로 내전이 발발하며 혼란이 휩싸인 모가디슈 시내를 실감나게 구현한 것은 탄탄한 기획력과 현장에서 쌓인 노하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박진감 넘치고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칠 때 치고 빠질 때 빠지는 타이밍 좋은 유머. 긴장감 넘치는 카체이싱과 더불어 묵직하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밀고 가는 류승완 감독의 유려한 연출. 탄탄한 연기로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하고 몰입감을 키우는 충무로 대표 배우들의 치열한 연기대결도 볼거리다.

그러나 <모가디슈>의 진짜 매력은 중첩된 갈등을 군더더기 없이 설득력 있게 봉합하는 깔끔한 서사에 있다. 특히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탈출극이라는 점에서 <모가디슈>는 여러모로 류 감독의 전작인 <군함도>와 닮은 꼴이다. 하지만 관객과 평단에 적지 않은 쓴소리를 들었던 <군함도>와의 비교로 <모가디슈>의 장점을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영화 모가디슈

<모가디슈>와 <군함도>의 진짜 적은 누구?

역사적 배경은 두 영화에서 표면적 갈등이자 탈출의 무대가 된다. <모가디슈>는 22년간의 장기독재에 반발해 내전이 벌어진 1991년의 소말리아가 배경이다.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치안이 마비된 상황에서 남한의 한신성 대사(김윤석)는 소말리아 정규군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와 직원들은 반군에게 약탈당한 대사관을 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된다.

<군함도>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 하시마섬(군함도)이 배경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던 강제징용자들의 사연을 다룬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이 지옥섬에서 탈출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때 소말리아의 반군과 하시마섬의 일본군은 인격화된 악이라기보다 배경으로 존재하는 위협에 가깝다. 자연재해처럼 지옥의 풍경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의 탈출을 가로막는 실체적 위협이 되는 건 피해자들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다. 남과 북은 상대보다 빠르게 UN에 가입하기 위해 아프리카국가의 지지를 얻으려 외교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때로는 함정을 파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내전 발발 이후에도 모가디슈 탈출을 위해 협력해야 하지만 서로를 의심하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짜 전향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안기부에서 파견 나온 강대진 참사관(조인성)과 북한 정보국의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이 벌이는 격투는 갈등이 극에 달한 사건이다. 어쩔 수 없이 적과의 동침을 하게 된 상황에서 마음을 여는 건 쉽지 않다.

<군함도>에서 주인공들의 현실적인 적은 조선인이다. 강제 징용된 조선인을 몽둥이로 두드려 패며 툭하면 가스가 누출되고 언제 무너질지 모를 해저 1,100m 아래의 갱도로 몰아넣는 건 눈곱만한 이권을 지키려 일본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조선인 앞잡이. 쥐꼬리만 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어먹고 뒤통수를 치는 건 명망 있는 독립운동가를 가장한 변절자였다.

영화 모가디슈

찝찝함을 남기지 않는 프로들의 일처리

지옥 같은 악을 배경으로 두고 내부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두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군함도>는 해결책으로 단죄와 처단을 택한다. 앞잡이는 처절하게 응징을 당하고 변절자는 모두에게 정체가 탄로 나며 손가락질을 당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군함도>의 문제는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통쾌함에 집중했다는 데 있다. 최후의 전투에서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일본군과 직접적 대규모의 전투를 벌이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마는데, 마치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맞서 총질을 하는듯한 어색함이 감돈다.

‘조선놈은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라는 메시지만 남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도 이런 어색함에서 비롯된다. 내부갈등의 원인이자 공들여 처리했어야 할 실체적, 인격화된 적이 너무 쉽게 단죄되니 탈출 과정에서 보여줄 건 물량은 쏟아부었으나 지루하고 잔인할 뿐인 총격전이다. 소위 말하는 ‘국뽕’을 피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서사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워 이도 저도 아닌 고통 전시 역사박물관을 보고 나왔다는 찝찝함을 지울 수 없다.

<모가디슈>는 다행히 <군함도>에서 보인 패착을 반복하지 않았다. 내부갈등의 해소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며 서서히 서사를 쌓아나간다. 우선 남북은 생존이라는 지상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정보망을 이용해 서방과 공산권 대사관에 연락을 돌리고 탈출 루트를 개척한다. 제한된 자원과 시간을 두고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념 대립과 체제 경쟁이 들어설 틈은 없다.

불편한 감정의 찌꺼기도 남기지 않는다. 총성이 들리는 위태로운 대문 밖에서 대사관 진입을 요청하는 림 대사에게 고민하던 한 대사가 묻는다. ‘아이들 저녁은 먹였냐고’. 이어지는 모두의 첫 번째 식사 시간. 남북 대사 부인이 조용한 젓가락질만으로 소말리아에 유일한 듯 보이는 깻잎절임을 나눠 먹고, 당뇨를 앓는 림 대사에게 인슐린을 나눠준다. 갈등은 있었지만, 이성과 감성이 자연스럽게 봉합되는 과정을 거친 후 이어지는 본격적인 탈출 과정에서 관객들이 숨 막히는 카체이싱에 몰입하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영화 모가디슈

아직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내부갈등의 해결방법은 ‘탈출 이후 무엇을 말할 것이냐’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군함도>에서 조선인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지만 어쨌든 탈출에 성공한다. 군함도를 떠나는 석탄 운반함에서 조선인들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는 장면을 본다. 흑백화면에서 원폭이 만들어낸 거대한 버섯구름만 붉은색으로 처리가 되고 살아남은 주인공은 갑자기 시선을 돌려 스크린을 뚫어지라 응시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던 걸까. 조선인끼리 다투지 말라? 외세의 침략을 경계하라?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에는 질문이 가득하지만 어떤 메시지를 담았는지 해독하기 어렵다. 2시간 10분이라는 넉넉한 러닝타임에도 주인공들이 극복해야 할 고난의 핵심은 무엇인지, 갈등을 해소해야 할 주체가 누구인지 끝까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탓이다.

<모가디슈>는 다르다. 탈출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명확하다. 남북 대사관 사람들은 결국 이탈리아 대사관을 통해 모가디슈를 탈출하고 적십자의 비행기를 타고 케냐 몸바사 공항에 도착한다. 활주로에는 양국에서 준비한 차량과 정보국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군사정권과 독재의 그늘이 짙은 시대. 두 대사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서로를 모른 척하자며 마지막 인사를 미리 나눈다. 지옥에서는 탈출했지만, 사실은 더 큰 지옥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양측 사람들은 준비된 차량에 탑승한다. 왼쪽에 주차된 남측의 차량은 우회전하고, 오른쪽에 주차된 북측의 차량은 좌회전해서 공항을 빠져나간다. 차량이 출발하자 한 대사는 우측, 림 대사는 좌측으로 시선이 향해있다. 그들이 탄 자동차는 계속 달린다. 화면이 어두워지지만 우리는 그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지구는 둥그니까 마주 보는 두 사람이 언젠가 만나 진정한 탈출의 마침표를 찍으리라는 사실을. 자동차를 멈추지 않는 노력이 있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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