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의 대표곡 중 하나인 고해의 실제 작곡자 논란이 벌어졌다. 공동작곡자로 등록된 송재준이 나는 가수다 방송 내용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때문인데, 그의 주장대로라면 임재범은 남의 노력을 훔친 사람이다. 게다가 나는 가수다 측에 명예훼손에 대한 경고까지 하고 나섰으니 속사정을 모르는 제3자의 시각에서는 임재범의 허세에 희생당한 피해자로 보이기 십상이었다.

그것은 임재범에게 폭력에 이어 남의 권리를 강탈해버리는 파렴치함이라는 혐의가 더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다고 해서 임재범이 크게 개의치 않을 것도 같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감정의 흔들림이 없을 거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당시 음반제작자, 작사가 등이 송재준의 주장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것이 보다 못한 개입인지 아니면 임재범 편들기인지는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헌데 그런 반박에 당장 송사라도 벌일 듯한 기세였던 송재준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진 것을 보면, 송재준 자신도 논란이 됐던 내용에 대한 진실의 지분이 그다지 많아보이지는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이 문제의 발단은 고해가 공동작곡자로 등록된 데 있다. 방송에서 임재범은 별 생각 없이 대작으로 손꼽히는 고해를 순식간에 뚝딱 작곡했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이건, 과장이건 작곡자가 임재범 혼자라면 논란이 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방의 주장에 무턱대고 임재범에게 유죄를 단정 지을 것이 아니라 먼저 임재범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부터 가졌어야 했고, 당연히 최근 방영된 임재범의 음악여행 바람에 실려를 참고했어야 했다. 거기서 작곡가 하광훈이 리듬만 만들어놓은 것에 임재범이 즉흥으로 멜로디를 싣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곡 하나가 완성되려면 그 후에도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멜로디를 리듬에 맞게 자르고 붙이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며, 최종적으로 편곡을 통해 합주가 가능한 형태로의 악보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임재범에게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음은 알 수 있다.

임재범은 가수가 아니라 소리꾼으로 불리고 싶다는 말을 한다. 아마도 국악에 애정이 깊은 절친 김도균의 영향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케 되는데, 소리꾼이라면 흔히 판소리를 하는 사람을 떠오르게 한다. 그 소리광대가 꾼이 되기 위해서는 단지 노래만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창적인 ‘더늠’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더늠이란 기존의 노래에 자기만의 가사와 멜로디를 덧붙이는 것을 말한다. 작곡과 가수가 구분되지 않았던 전통음악에서의 소리꾼은 자기가 부를 노래를 직접 만들 수 있어야 했다. 임재범에게는 이 더늠이 풍부했다.

가수가 노래 부르는 기계가 아닌 이상 흥이 오르면 자기 스스로 변주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만큼 가수 내면에는 풍부한 멜로디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많은 멜로디가 갑자기 떠오르면 그것을 작곡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문가에게 채보와 편곡을 맞기면 당당히 단독 작곡가로 등재할 수 있다. 멜로디가 노래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멜로디를 만든 사람은 얼마든지 외주작업을 통해 작곡을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임재범은 송재준과 공동작곡이라는 타이틀로 만족했다. 물론 송재준의 역할은 선비 옆에서 먹을 간 정도는 아닐 것이다. 먹을 갈았다고 한 작사가의 말은 좀 지나쳤다.

어쨌든 오래 전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상상에 의존해 누가 어떻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임재범이 작곡가로서의 욕심이 크지 않다는 정도는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논란에 대해서 적어도 임재범을 허세꾼으로 몰아세울 일은 아니라는 협의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임재범 주변사람들이 거들고 나서 사태가 조기에 진화되어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 전에 쏟아져 나온 일방적인 비난은 시간차로 임재범을 강타하고 말았다.

인터넷은 소란해야 제 맛이다. 그것이 익명이건 아니건 중요치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해가 상충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양쪽의 말을 모두 들을 때까지 기다리는 아주 작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세상에 원고 말만 듣고 피고를 벌하는 재판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임재범 고해 작곡 논란을 통해서 여전히 말도 안 되게 한쪽의 주장만 듣고 무작정 임재범을 죽일 놈으로 만드는 일을 목격해야만 했다. 이런 경솔한 사태를 막을 간단한 방법이 그저 잠시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더욱 크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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