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이 한겨레 기자를 사자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밝혀 시계가 과거에 맞춰지는 모양새다.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성희롱인지 성폭력인지, 여기에 더해 피해 입증 책임까지 재논의될 처지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측은 지난달 31일 “박 시장의 성폭력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라며 “이미 입증된 사실을 기각시키고 싶다면 유가족 측이 서둘러 가져간 박 시장 업무폰을 공개해 피해자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면 될 일”이라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날 논평은 전날 박 전 시장 유족 측 법률대리인 정철승 변호사가 자신의 SNS에서 밝힌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정철승 변호사는 “박원순 시장이 사망한 이상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질 수 없고, 어떤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증거로써 입증할 수 없다”고 했다.

정철승 변호사가 지적한 한겨레 기사

여성정치네트워크는 “피해자의 피해 사실이 이미 입증됐다”며 1월 14일 '피해자가 박원순 성추행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는 서울중앙지법의 판단을 근거로 들었다. 여성정치네트워크는 “성희롱도 성폭력이며 박원순 전 시장이 저지른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성폭력처벌법상 범죄로 규정되는 성폭력”이라고 강조했다.

또 ‘무엇(성폭력 행위)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는 정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피해자는 이미 피해 사실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시했다. 피해자의 정신과 진료기록이 존재하고 피해 사실을 목격한 증인들의 증언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미 입증된 피해 사실을 기각시키고 싶다면 유가족 측이 서둘러 가져간 박 시장의 업무폰을 공개해 박 시장이 음란 문자와 사진을 보낸 사실이 없고, 피해자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지난해 7월 14일 박 전 시장의 공용 휴대폰 1대와 개인명의 휴대폰 2대에 대한 통신기록 영장을 청구했으나 서울북부지법은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경찰은 유가족의 입회하에 공용폰에 한정해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같은 달 24일 유족 측은 법원에 준항고를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경찰은 다시 디지털 포렌식 수사 영장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논란이 재소환된 배경에 한겨레 기사가 있었다. 정철승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SNS를 통해 한겨레 기자를 상대로 명예훼손죄 소송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7월 25일 자 <박원순 쪽 변호사 “여성 비서 두지 말라”...비판엔 “멍청한 사람들”> 기사 중 “박 전 시장은 비서실 직원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러 이 사실이 공개될 위기에 처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가해자가 명백하게 밝혀졌고,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 알려진 상황”이라는 내용을 문제 삼았다.

또 정 변호사는 29일 한겨레 기자를 고소하는 이유와 관련해 “피해자 여성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박 시장은 강간이나 강제추행 같은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이 없다. 대개 성희롱 여부가 문제되는 행위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이유로 “박 시장의 사망으로 피해자 여성의 고소는 수사가 중단되고 종결되었고 당사자 일방이 없는 상태에서는 실체 진실을 파악할 수 없음에도 박 기자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허위보도 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30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새아침’에서 “성폭력이라고 하면 성폭력처벌법상에 열거된 범죄행위를 말한다. 형사처벌을 받는 강간, 강제추행, 기타 이런 죄들을 성폭력이라고 하는데 피해자의 주장 자체만으로 놓고 보더라도 그런 범죄를 주장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자가 주장한 내용은 손을 만지거나, 음란 문자를 보내거나 사진 등으로 “성희롱 여부가 문제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자가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썼기에 허위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는 또한 “형사소송법상 수사받는 사람이 죽으면 실체진실이 더이상 밝혀질 수 없어 종결돼,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끝나버렸다”며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조차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태인데 마치 객관적으로 확인되고 확정됐다는 듯이 밝혀졌다고 써버렸으니 그것도 허위”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기자가 근거로 든 인권위 판단 결정문에 대해 “피해자의 주장이 대부분은 확인 안 됐다고 나와 있다”며 “이를 허위왜곡해서 성폭력을 저지른 사실이 밝혀졌다고 기사화하는 건 중대한 개인의 인권침해이자 심각한 사실 왜곡이고 허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전 시장 아내는 지난 4월 인권위의 시정권고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여성정치네트워크는 29일 논평을 통해 “피해자의 진술을 입증한 인권위의 직권조사 결과와 그 결과를 사실로 받아들인 기자를 공격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가리기 위한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성정치네트워크는 “기자가 채택한 ‘성폭력’이라는 용어의 개념을 협소하게 해석하여 고의로 트집 잡은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의 직권조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진술을 확보하기 어려운 조건을 일찍 인식하고 중복진술로 교차 확인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서만 사실로 인정한 결과만으로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유가족과 정철승 변호사는 직접 가지고 있는 박 전 시장의 휴대폰을 공개해 반론을 입증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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