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의 표류가 끝나지 않고 있다. 13회까지 방영했지만 도대체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스토리가 실종된 그 자리에 신하균의 열연만 남아 고독한 사투를 벌일 뿐이다. 그렇다고 주변에 다른 캐릭터들을 충실히 살려줘서 그 관계의 미학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브레인은 주야장천 신하균만 파고 있을 따름이다. 드라마가 이렇게도 되나 싶을 정돈데 시청률이 잘 나오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없다.

드라마 보는 재미에 배우의 열연은 빠뜨릴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금껏 브레인 리뷰에 신하균의 연기력 칭찬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가끔씩 등장하는 의학적 모티브들은 대부분 미국 의학드라마에서 본 듯한 사건들이다. 심지어 임상실험 중인 시약을 투약하는 것은 유명한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등장한 이슈였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이 사건을 통해서 의사가 겪는 윤리와 인간적 도리 사이의 갈등을 심도 깊게 파고들었지만 브레인은 그저 이강훈에 이어 김상철까지 위기에 빠뜨리는 단선적인 모티브로 채택했을 뿐이다. 물론 이를 계기로 김상철이 오래전의 봉인된 기억을 떠올리게 되게 한다는 것을 암시하지만 그 개연성이 납득하기에 충분치는 않다.

그렇다고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여주인공인 윤지혜는 가끔씩 러브라인 요소만 살짝 건드릴 뿐 레지던트 3년차의 모습은 물론이고, 그 개인사까지도 시청자는 아는 바가 없다. 오히려 누리꾼들 사이에 날개녀로 불리는 재벌의 의붓딸이 훨씬 더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이미 그의 아버지 재벌회장이 등장한 것은 물론이고 이제 딸까지 등장했다. 딸을 등장시켰다는 것은 이강훈과의 관계에 있어 장애물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이강훈과 떨어뜨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엮겠다는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물론 키스신도 했고, 뇌사진 프로포즈도 했으니 나름 달콤함을 선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명색이 여주인공인데 예쁘고 착한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여주인공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주 흔한 선악의 구도 역시도 미약하다. 이강훈을 괴롭히는 고재학, 서준석이 나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이고 싶도록 나쁜 것도 아니다. 악역에도 그 나름의 미학과 매력이 있기 마련인데 브레인의 악역은 뭔가 허술하다. 배우들 탓이 아니라 이들에게 주어지는 캐릭터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3회나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하균의 미친 듯한 연기력이나 보게 된다. 불법투약과 재수술에도 불구하고 강훈의 어머니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대한 아들 강훈은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자식으로서의 회한과 애증의 감정이 폭발했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울기를 반복하는 신하균의 연기는 역시 일품이었다. 그뿐이었다. 작가가 신하균밖에는 보지 못하는 외눈박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정진영이다. 김상철은 과거의 의료사고를 자신의 기억 속에 봉인시켜 두었다. 그래서 오래 전 어린 이강훈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말 불리한 기억을 완전히 지우거나 혹은 왜곡시켜 기억하기도 한다. 그런 김상철의 기억이 깨어나고 그로 인해 어떤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 변화가 신하균 모노드라마가 돼버린 브레인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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