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이생망, 모쏠, 코인충, 삼포세대, 금수저‧흙수저 등. 거리에서 만난 청년들에게 이런 단어에 대해 물었다. 취업도 어렵고 결혼도 어려운 세상 ‘삼포세대’가 공감이 간다고 한다. 혹은 흙수저가 자신인 것 같다고 한다. 팀장까지 됐지만 코로나로 실직해 '코인충'이 되었다고도 한다. 결혼할 수 있을까?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집은 살 수 있을까? 비관적 현실 인식으로 가득 찬 단어들이 우리 시대 청년들을 대변한다.

지난 6월 20일 ‘불평등 사회가 586에게’ 편을 통해 기성세대가 된 50대를 해부했던 KBS 1TV <시사기획 창>이 7월 18일 ‘이.생.망. : 이십대 생존 비망록’ 편에서 2021년을 사는 20대 청년에게 주목한다. 특히 36살의 젊은 당대표가 등장하는가 하면,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청년'을 앞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청년담론'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이.생.망. : 이십대 생존 비망록’ 편

KBS는 한국 리서치와 함께 18세 이상 남녀 2000명(18~34세 1000명, 35세 이상 1000명 대상, 표본 오차 95%, 신뢰 수준± 2.2%, 웹조사 방식, 응답률 24.4%)을 대상으로 청년 세대의 인식과 계층에 대해 조사했다. MZ세대, 이대남, 이대녀, 90년대생 등은 이 시대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SNS나 각종 커뮤니티의 극단적인 목소리들이 청년의 목소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언론은 이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상황에서 진정한 청년의 목소리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거리의 청년들처럼 많은 이들이 앞서 '삼포세대(49.5%), 이생망(50.2%)’을 자신들을 대변하는 단어로 받아들였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현실은 노력한다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경쟁에서 이기려면 부모의 지원이 필수라고 생각하며(70.1%) 금수저-흙수저의 불공정이 심하다고 생각했다(82.3%).

이십대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 계층 구조

1. 나는 생계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2. 우리 집에는 내가 공부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3. 나는 필요한 경우 독서실이나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4. 나는 정기적으로 부모님한테서 용돈을 받았다.
5. 부모님은 나의 대학 진학을 원하셨다.
6. 부모님은 나의 학업을 지원해주셨다.

청소년기 공부 환경에 대한 질문 6개의 응답에 따라 상중하 '공부방 세 그룹'으로 청년층을 분류했다. 이 공부방 세 그룹의 공부 환경은 고스란히 이들의 진학 결과로 드러난다. 즉 가정환경이나 경제적 능력, 문화적인 자본의 크기가 그대로 자식들의 진학률, 직업적 성취도, 미래 전망으로까지 대물림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이.생.망. : 이십대 생존 비망록’ 편

사법농단을 폭로한 판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그가 2017년 근무했던 법원행정처 36명의 판사들 중 30명이 서울대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부모들 대부분이 판사나 검사, 변호사 그게 아니라도 서울대 출신이었다고 한다.

반면 경남 창원에서 일하는 29살 용접노동자 천현우 씨의 동료들 중 상당수는 50대 이상이라고 한다. 그들 중 상당수는 노후에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층과 함께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많은 50대. 이 지수는 결국 우리 시대 청년층의 극과 극의 계층적 현실로 이어지게 된다.

대학 입시는 자기 노력과 재능에 달렸다거나, 대학 입시 이후의 결과는 자기 책임이라는 한국 사회의 주류적 사고가 '허상'이라는 것을 이 조사 결과는 보여준다.

삶의 조건이 다른 만큼 청년층이 갖는 생각도 다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사회 이슈에 대한 의견도 세대 내부적으로 갈라지고 있다. 경제 수준에 따라, 성별에 따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이.생.망. : 이십대 생존 비망록’ 편

조사에서 공부방 ‘상층’ 그룹에 속하는 청년 중 71%가 어려운 과정을 통해 얻은 정규직은 월급이 더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사기획 창>은 이런 상층 그룹의 주장에 대해 '시험을 통한 공정’은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사람끼리의 공정, 즉 청년층 10~15 % ‘그들만의 리그’라고 주장한다.

앞서 창원의 천현우 씨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에 맞춰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월 200은 받는다고 해서 용접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직장 생활 10년 차, 11번째 직장을 옮겼다. 직업의 특성상 몸 곳곳이 상처다.

26살 대구의 공의정 씨는 지방대를 나왔다. 졸업할 때까지 카페 알바부터 전단지 돌리는 일, 연예인 경호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오로지 취업 준비만 하고 싶어 울컥하기도 했었다는데, 그런 의정 씨가 서러운 건 자신들에게 '눈이 높다'고 말하는 세간의 시선들이다. 최저임금을 맞추는 건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서이지 그게 우리 사회 삶의 기준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정 씨는 연봉 3000이 허황되냐고 반문한다.

의정 씨 눈에는 '서울'에 태어난 것 자체가 스펙이다. 지방대 교수님들조차 서울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독려하는 세상. 하지만 서울에서 뭘 해보려 해도 집부터 구해야 하는 등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청년 정치? 당연히 낯설다.

청년담론? 괜찮은 일자리부터!

KBS 1TV <시사기획 창> ‘이.생.망. : 이십대 생존 비망록’ 편

우리 사회에서 '청년' 계층의 문제를 담론화시킨 건 무려 10여 년 전이다. 2010년 청년층을 노동 약자로 규정하고 세대별 노동조합을 주창했던 '청년유니온'이 그 시초이다. 신체 건강한 청년들에게 무슨 지원이 필요하냐는 지배적 편견에 맞서 '매번 취업하고 매번 해고되는 우리 청년은 부활하는 예수인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통해 '아르바이트도 노동'이라는 등 청년 노동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다.

그에 따라 아르바이트 주휴 수당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당시 정책기획팀장은 실제 싸워서 바꾸고자 했던 것보다 더 사회가 빨리 나빠졌다며 안타까워한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이.생.망. : 이십대 생존 비망록’ 편

<시사기획 창>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대남' 논쟁 등 청년담론이 '청년팔이'로 흐르는 것을 우려한다. 무엇보다 다큐에서 접근하듯이 청년이라는 세대의 정체성 자체가 너무도 이질적이라는 점을 들어 정치가 청년의 온전한 얼굴을 수용할 수 있는가에 회의한다.

특히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공정 담론에 대해 '그 성안의 30%'도 안 되는 이들을 위한 담론이 아닌가 질문한다. 즉 진정한 청년담론이라면 우리 청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고졸 이하, 괜찮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지역에서 나고 자란, 비정규직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이.생.망. : 이십대 생존 비망록’ 편

정치는 ‘청년’을 말하고 청년들은 '절망'을 외친다. 공정 담론 논란은 결국 우리 사회 청년층 전체가 '경쟁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조사에 응한 청년층 과반수가 경쟁이 한국 사회를 더 나빠지게 만들었다고 답했으며, 스스로 경쟁에 패할까 불안하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청년들이 희망하는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않는 사회, 최소한의 생계도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가 우리 시대 청년들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정치의 계절, 공정 운운하며 청년을 '정치'로 활용하기 전에 청년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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