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찰나의 여행은 나영석PD의 굴욕으로 끝났다. 강호동이 없어서 그런지 다섯 멤버의 생존능력(?)은 더욱 강해진 듯했다. 실질적으로 미션을 완벽하게 성공한 것은 두루미 4가족을 찍은 김종민뿐이었지만 형들을 대신해서 무지개, 운해까지 보험을 든 이승기 덕분에 나영석 PD는 얼떨결에 4점을 인정하고 말았다. 비록 수백억 원의 부상이 걸린 5점은 아니었지만 호텔 스위트룸에 스파, 뷔페 그리고 나PD 사비로 옷사주기까지 걸렸으니 나PD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나영석PD를 결정적으로 현혹시킨 사건은 배꼽 잡을 식바산 운해였다. 소녀시대와 분무기 무지개를 촬영한 이승기는 이후 뮤직뱅크 무대에 드라이아이스를 뿌리고 촬영을 했다. 그 배경의 뮤직뱅크의 일부분을 크롭해서 식바라는 글자가 됐는데, 그것을 식바산이라고 우긴 것. 이쯤 되자 나PD도 정신을 못 차리고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인지 멤버들의 유도에 넘어가 얼결에 4점을 인정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PD는 그 4점 인정이 가져온 엄청난 결과에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PD는 하릴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주 공손한 말투로 준비도 못한 호텔 대신 호텔급산장과 그에 준하는 저녁식사로 만족해주길 간청했다. 어차피 멤버들도 부상 자체보다도 4점이 됐을 때 나PD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더 바랐기 때문에 못 이기는 척 협상을 해주었다. 4년간 생존의 달인이 된 멤버들을 무시했거나 아니면 식바산에 넋을 빼앗긴 나PD의 굴욕이었다.

그리고 나PD의 판단력을 잃게 한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이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승기가 다소 찜찜하게 성공한 가창오리 미션을 1박2일과의 계약관계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재도전을 하겠다고 선언한 데 있었다. 무보수 재촬영을 대가로 0,5점을 더 달라는 이승기에 말에 미션평가에 칼 같은 나PD도 망설이다가 결국 이승기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만 것이다. 이것도 나름 나PD의 레임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2011년 예능에서 재도전은 일종의 금기어였지만 이승기의 재도전은 달랐다. 물론 가창오리 군무는 방송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제대로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PD를 보조로 다시 가창오리를 찾은 날 역시도 첫날처럼 날씨가 흐려 있었다. 뭔가 불안한 조짐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오리가 날지 않았다면 아마도 승기는 또 한 번 그곳을 찾았을 것이지만 바쁜 연예인 사정을 알아준 가창오리는 두 번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감동이었다.

사진의 미학도 뛰어나지만 음악과 함께 조화를 이룬 영상 안에 들어온 가창오리의 군무는 시청자 모두를 김종민으로 만들어버렸다. 도무지 아,오 하는 감탄사 외에는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들뜨고 감격한 것은 이승기와 나PD 역시 마찬가지였다. 흥분한 승기는 퓰리쳐상에 도전하자며 흥분한 듯 소리를 쳤고, 옆에서 구경이나 하던 나PD 역시 UFO라고 소리를 지르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한 번 헛걸음 시킨 것이 미안했던지 가창오리들은 예비비행으로 몸을 풀고는 본격 비행을 시작해 그들의 커다란 몸짓을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20만 마리 날짐승이 아무 말도 없이 빚어내는 웅장한 군무는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남극이나 북극의 밤에 나타난다는 오로라 같기도 하고, 지구를 찾은 미지의 외계함대 같기도 한 가창오리들은 자유롭고 평화롭게 금강과 주변 평야를 오가며 화려한 군무를 펼쳤다. 이승기의 재도전은 2011년 1박2일이 준 가장 아름다운 영상을 담게 했다. 이번 찰나의 여행은 승기 혼자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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